["우리는 보수당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보수적인 나라를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돌아올 겁니다(We will be back)."
_ 존 메이저(John Major, 1943, 영국 총리 1990-1997), 1997.10.20. 역사적 총선 참패 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예상대로 자민-유신 간 연정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다카이치 내각이 들어설 예정으로 보인다.
일단 그들이 더 강경한 우파인 건 사실이고, 따라서 나름의 정책 드라이브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에서는 기시다-이시바 시기의 '답답한' 통치를 끝내고 좀 '시원한' 드라이브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류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방향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시바 시게루가 총리가 되었을 때 내세운 모토는 '납득과 공감'이었다.
지금 일본을 비롯해 세계에 필요한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납득과 공감을 위한 노력이다.
이건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제도나 관성만으로는 더는 오래 버티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국가 부흥이니 하는 거창하고 존재하지 않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펼치는 지속 불가능한 정치가 아니다.
많은 경우 그런 정치는 보수주의의 외피를 둘러싸고 있지만 실은 이는 급진적 진보주의와 반대 의미에서 보수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신중하게 판단하는 지혜와 변화에 대한 신중한 적응을 요구한다.
이시바 총리의 퇴장과 세계적으로 계속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익과 좌익에서의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의 부상을 보면서 내향적이면서 소통하는 신중한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계속 굳어져 가고 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은 희희낙락하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예컨대 유신회는 그간 야당으로서 비판자의 역할에만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그 '뼈를 깎는 개혁'이 과연 여당일 때 얼마나 실천 가능한 지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권력을 잡는다는 건 기회이지만 위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제 더는 비판자가 아니라 방어자의 입장에 있어야 하니까.
이 드라이브가 지속가능하게 갈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종국에는 자민-유신은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 만큼 대가도 함께 치러야 할 것이다.
야당 입장에선 '우익 둘을 한 번에 보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론.)
어느 시점이건, 언젠가는 정말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그 때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시점에는 이보다는 나은 길을 향해 세계가 생각을 바꾸고 발길을 돌리기를 바란다.
(<더 크라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시계가 째깍거린다. 여왕이 존 메이저와 마지막으로 마주 앉아 있다.)
메이저 : 인간의 자기 기만 능력은 ... 참 묘합니다. 그 모든 여론조사를 보고도, 아직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었죠. 대신에, 저희 당은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네요.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왕이 온정적 태도로 듣고 있다.)
메이저 : 역사책에서라도 유권자들보다는 제 총리 재임기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길 바라야겠죠.
여왕 :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평하건, 당신은 항상 내가 가장 훌륭하게 생각하는 총리 중 한 사람일 거예요. 아주 상위로요. 당신의 침착하고, 솔직하며,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잊지 못할 거예요. 특히 웨일스 공 부부의 문제에 도움을 주어서 각별히 고마워요.
메이저 : 왕실 요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노동당은 강하게 퇴역을 주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왕 : 그래요.
메이저 : (망설임) 대승을 거둔 만큼, 블레어 씨가 관대해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물밑으로 접촉해서 요트를 계속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득해 보겠습니다.
여왕 : 그러면 더 바랄 게 없죠.
(여왕과 메이저가 미소를 주고받는다. 버저를 향해 가던 중, 여왕이 그에게로 돌아선다.)
여왕 : 그를 어떻게 보나요?
메이저 : 블레어 씨요?
여왕 : 오, 괜한 질문이었네요.
메이저 : 음, 블레어 당수가 자주 받는 비판은 그의 리더십 스타일이 내용 없는 이미지 정치라는 겁니다. 젊은 나이도 많은 관심을 받았죠.
여왕 : 43살이더군요. 1812년 리버풀 경 이후 최연소 총리죠.
메이저 : 비판이 어떻든, 그의 성취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노동당을 장악한 노동조합의 통제를 끊어 내고 노동당을 다시 수권정당으로 만들었는데 괄목할만한 성과죠. 그리고 나라의 분위기도 잘 읽어냈고요. 저는 명백히 실패한 일이죠.
여왕 : 두고 봅시다. 진정한 정치인의 능력은 공직에서만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당신도 아직 젊은 사람이고요.
(그녀가 버저를 누른다. 메이저가 여왕의 손을 잡고 경의를 표한다.)
메이저 : 폐하.
(여왕이 애정과 유감이 담긴 시선으로 떠나는 그를 바라본다.)
(메이저가 궁의 문으로 나올 때, 블레어 부부가 탄 차가 언론인들에 둘러싸여 출입구로 들어온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던 메이저가 이미 자동차에 타 있는 아내를 향해 아래로 허리를 굽힌다.)
메이저 : 잠시만, 여보.
(노마(아내)가 어깨 너머로 신임 총리 부부가 탄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녀의 차가 천천히 떠나간다.)
(메이저가 궁 계단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린다. 궁 문지기가 차 문을 열고 메이저가 신임 총리와 악수를 한다.)
메이저 : 축하합니다.
블레어 : 고마워요, 존.
메이저 : 참 우스운 일이에요. 하루는 총리가 돼서 누구보다도.. 아니, 이 나라의 이인자가 되지만 어느 순간 일자리도, 차도 잃고 집에서도 나가게 되죠. 모두 순식간에 일어나요.
(메이저가 그의 책상에 앉아 메모를 쓰고 있다. 재킷을 입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몇 시간 전까지 그의 집무실이었던 공간을 힐끗 본다.)
메이저 : 당신을 위해 쪽지를 남겨 놨어요.
(또 한 번의 악수. 블레어가 그의 새 집무실에 들어서며 재킷을 소파에 던져둔다. 그 옆에는 ‘블레어가 압승하다’라는 헤드라인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이 놓여 있다. 그가 쪽지를 집어 든다. ‘멋진 일입니다, 즐겨요.’라는 말과 존 메이저라는 서명이 남겨져 있다. 그는 메모를 남긴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은 차에 오른 채 마지막으로 버킹엄 궁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