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번째 글을 쓰며
어느새 사백 번째 글에 이르렀다. 나는 살면서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생각은 없다. 그런데 '취미'라고 선뜻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왜일까?
그간 썼던 글들을 돌아보니 대개는 내 생각을 쓴 것이지 경험이나 감정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이것도 뒤늦게 느낀 것이지만, 경험이나 감정은 어떻게든 눌러 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은 그럴 수 없었다. 마치 흘러 넘치는 물의 수도꼭지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다만 그것을 받을 그릇만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생각은 감정이나 경험보다는 드러내기 덜 부끄러웠고.
삶에 자의 반 인과 반으로 정지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게 되고 혼자 두문불출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내 마음은 아마도 (왜 굳이 이런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쪽지가 달린 죽간들이 쌓인 서가가 끝도 없이 놓인 또는 영화 <소울>에 나왔던 끝도 없는 자료 창고 같을 듯 하다. 주인인 나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쪽지의 키워드는 알 수 있고 그것을 매개로 구체적인 기억들에 가 닿을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짧은 내 인생에 대한 기억이 없다. 뭔가 키워드가 있으면 하나 둘씩 구체적으로 경험과 감정이 돌아온다. 개중엔 느끼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불행하게도.. 낙관에는 자기최면이 필요하지만 비관은 디폴트값이다. 그러다 보면 과거에 대해서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감정과 엮인 경험들 중 좋은 게 거의 기억나지 않다 보니 결국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후회할까 두려워 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살면서 내 인생의 목표는 돌고 돌아 한 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아등바등한다고 능률이 오르는 것도 일이 성취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계속 쫓기고 있었고 조건에 맞추고 닥쳐온 일들을 넘기느라 그리고 그 상황을 감당하느라 많은 것들을 눌러놓았다. 설마 그래도 안 되는 경우의 수를 하늘이건 운명이건 선사할까 싶었는데, 일단 지금까지는 안 되는 결과를 선사했다.
대개?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하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취미건 사랑이건 사는 이유를 마련해놓지 않나 생각한다.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던지. 뭐 사실 사는 이유라기 보다 사는 낙?에 가까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옷을 산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던가..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맛에 산다 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목표가 무너지는 순간 나라는 사람의 인격도 함께 무너졌다.
한 가지는 또렷했던 것 같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잘 하거나 잘못하거나가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수지타산을 해본다면 이런 상태에 이를만큼 잘못 살진 않았는데. 왜 나보다 최소한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그러나 이런 감정도 저변에 있었을 뿐이다. 어차피 일은 이미 이렇게 됐고, 그 감정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내가 나 중심으로만 생각한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또 나아갈 뿐이다.
글쓰기는 생각이 감정을 가리는 것을 더 확실히 해 주는 버팀목이면서 동시에 삶의 마지막 끈이었다. 뭐 이게 아니면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만 살아 있긴 했겠지. 글쓰기는 내가 살아있음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 관심의 주제들은 너무나 고자극이고 삶과 큰 연관이 없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약간은 더 변주를 주려고 한다. 내 삶의 주변에 관한 작은 성찰을 더 해보려고 한다. 나는 내가 사는 이야기를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찾아보지 않고 한 생각인 듯 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가 마지막 끈이 아닌 동앗줄이 되어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500번째 글에까지 닿을까, 그리고 500번째 글의 나는 어떤 상황일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