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신임 일본 총리를 보는 시선
세계적으로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여성이라는 점이 많이 부각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니고 인권 신장에 있어서도(우리나라보다는 확실히 빠르지만) 더딘 면이 상당한 일본에서 탄생한 첫 여성 총리니까.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은 실질적으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어떤 정치적 바이브로 정국과 국정을 주도하고 어떤 방향으로 일본을 이끌 것이며 어떤 구상과 내용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를 중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일본의 내정에 국한되지 않고, 비교정책적 차원에서 우리나라에도 나름의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으며 한일관계에도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예를 들면 다카이치 총리 스스로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리더십의 롤모델로 삼는다고 언급한 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정책 방향을 보면 대처주의(Thatcherism)와 사나에노믹스는 거의 정반대의 사상과 내용을 지녔다. 대처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통화주의 이론을 합친 것으로서 물가를 적정 수준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며 긴축재정을 지향한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를 이어받은 사나에노믹스는 확대재정과 확대통화(최근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기조에 사실상 부정적인 태도)를 원하며 나아가 방재-방위 등 국가의 개입 정도가 높은 산업을 성장시키고자 한다.
또 정치적 상황과 맥락을 보면, 노동당의 몰락과 보수당의 승리 정확히는 다수 의석을 견인해 출발한 대처 내각과 달리 다카이치 내각은 아슬아슬하게 과반에 미달하며(중의원 의석이 총 465석이고 과반이 233석인데, 자민(196)+유신(35)이 231석이다.), 집권 13년 차인 자민당 내각을 보는 일본 국민들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 못하다(대안이 없어서일 뿐). 유신회가 각외협력(Confidence and Supply)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유신회의 경제정책 방향은 케인스주의적인 자민당과 달리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유신회의 핵심 지역 기반인 오사카를 부(副)수도급으로 만든다는 논의가 자민-유신 간 회담에서 있었다고는 하는데, 이런 지점들에서 자민-유신이 원활하게 보조를 맞추어 갈 수 있을지도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일단 최대한 현재 틀 안에서 정책 드라이브를 걸다가 여차하면 1~2년 내로 과감하게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는 정면돌파라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일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보다는 일본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취임 후 일본에 여러 번 우호적 제스처를 취해 왔고, 이전에 아베 내각 시절의 한일 갈등도 기본적으로는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한 게 아니라 우리 법원의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 측의 일방적인 해석과 공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양국은 정서적, 문화적으로 서로에 대한 깊은 호감과 관심을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강경한 주장을 펴던 정치인이라도 본인이 정부수반이 되면, 더구나 여당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치 지형에서 집권하면 대내외 상황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법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민당 온건파를 달래기 위해 고이즈미 신지로, 모테기 도시미쓰 등을 입각시킬 것 같다는 전망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다카이치 총리의 이념이나 성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우리나라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것은 좋게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 대한 긍정적 발언이건 부정적 발언이건, 과대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고 일본 정부가 취하는 구체적 기조와 조치들을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