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평전 1. 소하 蕭何

by 남재준

세상만사에는 균형이 있다.


영이 있으면 욕이 있고, 흥이 있으면 망이 있으며, 성이 있으면 쇠가 있다.


소하(蕭何, B.C.257~B.C.193(향년 64세))의 삶은 이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하는 전략이나 군무(軍務)와 같은 극적인 역량을 보여준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한신이나 장량에 비하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행정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그의 공은 대업의 외양과 내실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개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하의 인생은 한편으로는 가장 영광을 받은 공신의 제일이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 주군인 태조 고제 유방의 의심 속에 살아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이는 「사기」의 <소상국세가>와 「한서」의 <소하조참전>에서 모두 확인된다.


대개 사마천(사기의 저자)과 반고(한서의 저자)의 소하에 대한 대한 평은 비슷하다.


소하의 공을 핵심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고제가 한왕일 적에 항우와 싸울 때 후방에서 관중을 지킴

2. 고제가 초한쟁패 과정에서 패배할 때마다 군사와 군량을 보충해줌

3. 민심을 안무하고 새 법령을 시행하며 새로이 호구조사를 단행하고 종묘사직과 장안의 미앙궁을 짓는 등 왕조의 기틀을 다짐

4. 함양 입성 시 도서와 호적 등을 입수하여 이것들을 초와의 대전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함


소하는 승상으로서 고제의 재상이 되어 2인자로서 각종 행정사무를 총괄했다.

그의 관료적 역량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그는 문서 담당 하급관리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는데, 중앙에서 내려온 어사가 여러 관리들에게 업무 능력을 경쟁하게 하여 보니 소하가 제일이어서 그를 중앙에 추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소하가 사양하여 불발되었다.


양중석 교수(중앙대 아시아문화학부 중국어문학전공)는 이에 관하여 안분지족하려는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진의 멸망을 일찍부터 예견하여 그런 것일수도 있는데 전자라면 뒤의 숙청에서 피해 가는 그의 처세술을 알만 한 것이고 후자라면 정세에 관한 그의 통찰력을 알 수 있다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둘 모두일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난세에는 시류와 정세를 읽는 능력이 자신의 생존을 정하는 결정적인 역량이 된다.


'시류를 읽는 능력'은 '민심을 읽는 능력'이기도 하다.


양 교수는 후에 고제가 함양에 입성해 제정/시행한 약법삼장도 소하가 실질적으로 시행을 맡아 보았다고 본다.


이 내용의 요체는 민심에 따라 어질게(仁) 통치하며 동시에 과도한 법을 삼가 자연스럽게 통치한다(無爲之治)는 원리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유가적 요소와 도가적 요소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류를 잘 읽는다'라는 말은 '자기 처신에는 유능하지만 무언가 영웅적인 일은 해내지 못했다'라는 데 부연해 사용되기도 한다.


시류를 읽는다는 점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나 사기에서 사마천이 소하를 평하면서


상국 소하는 진의 도필리(문서 담당 하급관리)였는데, 녹록하고 기절이 없었다.


라고 하였다.

'녹록하다'라는 말은 '평범하다'라는 의미이고, '기절'이란 '남들과 다른 특이한 절조'이므로 '기절이 없다'라는 말은 '특이한 절조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는 전통 시대에는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많은 선비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만나 웅대한 의지를 펴고 대업을 성취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고 또 그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고 행정이나 처세는 자잘한 능력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소하가 세운 공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하가 대업을 이루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한신이나 장량에 비해 절조가 뒤진다는 의미이지 업적 자체를 놓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소하의 행적에 관한 기록에서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소하가 이룬 개별적인 업적보다는 그의 처세술이다.


이를 보면, 고제의 의심은 이미 천하통일을 이루고 황제에 즉위하기 전부터도 있었다.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매력을 끄는 인간적인 리더십, 동시에 사람의 심리와 역량을 잘 꿰뚫어 보고 그를 쓰는 용인술이 고제 유방의 무기였고 천하통일을 이루게 해 준 핵심적 역량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사람의 심리에 대해 그만큼 복잡하게 생각하고 의심도 많았을 수 있다는 의미였고, 실제로 그랬던 것 같다.


고제가 아직 항우와 싸우고 있을 때 여러 번 사자를 보내 소하의 안부를 물었는데 이를 두고 포생이 이는 의심이 있다는 뜻이므로 소하의 자제와 형제 가운데 군을 거느릴 만한 사람들을 모두 고제에게 보내라 조언하여 소하가 이를 따르자 고제가 기뻐했다.


진희의 난(B.C.197~B.C.196) 때 여후와 소하가 더불어 계책을 꾸며 진희가 이미 죽었다고 속이고 소하가 한신에게 들어와 하례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때 기습적으로 한신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그 공으로 고제가 소하를 상국에 봉하고 식읍을 더하며 보병 500인과 도위 1인을 붙여 호위토록 했는데, 모두가 축하하는 가운데 소평만이 홀로 문상하듯 하면서 소하에게 이르기를 지금 소하는 단지 안에서 지킬 뿐이고 전장에 있는 것은 황제인데 구태여 호위를 붙이겠다는 것은 한신의 일로 의심이 생긴 것이라 하였다.


이에 봉작을 사양하고 자제들을 모두 군으로 보내자 고제가 기뻐했다.


영포의 난(B.C.196~B.C.195) 때에도 고제는 또 소하의 근황에 대해 수차 물어 왔는데 이때에도 누군가가 소하에게 이는 소하가 민심을 얻었으므로 관중을 뒤흔들어 엎을까 염려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많은 땅을 저가로 매수하고 저리로 임대하여 스스로를 더럽힌다면 민심이 떠나가면서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어 소하가 그대로 했다.


뒤에 소하가 백성을 위해 장안의 상림원에 빈 들이 많으니 거기에서 백성들이 농사 짓게 해 달라고 고제에게 주청을 올렸는데, 고제가 이는 소하가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아 청탁하는 것이라며 진노해 소하를 잡아 가두었다.


이 역시 고제의 의심병이 도진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왕위위가 왜 소하를 잡아 가두었는지 묻자 고제가 답하기를 진의 재상 이사가 진시황을 보필하며 허물은 자기에게 돌리고 공은 임금에게 돌렸다 하는데 소하는 상인의 금을 받고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을 자기에게로 돌리려 한다 답하였다.


이에 왕위위는 본래 백성에게 이로운 것을 간하는 것이 재상의 소임이며, 소하가 초한쟁패-진희와 영포의 난 등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는데 그 때 자기의 이익을 취하지 않은 소하가 지금 작은 이익을 취하겠느냐고 하였다.


또한 이사는 멸망한 진의 신하인데 진이 허물을 듣지 않다 천하를 잃었는데 폐하께서 어찌 재상을 이리 얕게 의심하느냐 하니 고제가 기분이 상하기는 했으나 소하를 사면토록 했다.


이와 같이 소하는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사심 없음을 가족을 인질로 보내기, 자신의 평판 더럽히기 등으로 보여야만 했다.


또한 소하는 땅과 집을 살 때 반드시 궁벽하고 외진 곳에만 살고 집안이나 담을 꾸미지도 않았는데 이러한 검소함에 대해 후손이 현명하다면 이를 본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다른 권세가에게 침탈당하진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뒤에 조선의 문인 장유(1588~1638, 인선왕후 장씨(효종비)의 아버지)는 이를 두고 임금에 대한 의리가 없는 것이고 진정으로 바른 신하였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간언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앞으로 여러 글에서 언급하게 될 것이지만, 중국과 조선의 문인들은 상당수가 소하와 같은 현실주의적 행정가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행정이란 한낱 작은 일일 뿐이며 모름지기 선비란 의(義)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침에 행(行)하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의리는 상호적인 것이다.


임금이 신하에 대한 의리가 없으면, 신하도 임금에 대한 의리가 있을 수 없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소하는 의리를 매우 잘 지킨 편에 속한다.


끝까지 고제의 눈 밖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주군의 대업 성과인 한(漢)을 끝까지 잘 관리하고 지켜냈으니까 말이다.


그것보다 더 큰 충성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군주가 잘못하면 목숨을 걸고 간하는 것도 신하의 도리이긴 하지만, 군주와 백성 나아가 국가 전체를 위한 궁극적 선택이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좀 섬뜩했던 점 중 하나가, 고제는 대놓고 신하들 정확히는 무관들을 사냥개에 비유했다.


소하를 일등공신의 반열에 놓은 것을 두고 무관들이 불평하자, 고제가 무관들은 사냥개이고 소하는 그 사냥개들을 풀어주고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이라고 언급했다.


그래도 소하는 사람으로 비유했는데 이는 즉 사람은 일반적인 동물과는 달리 지능적 역량이 있으니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무관들은 언제든 자신의 목을 물 수 있는 개로 여겼던 게 아닌가 싶다.


소하에게 사심(私心)이 없었던 점은 죽을 때 자신의 후임으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2위였던 조참을 추천한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소하는 안정 지향적이면서도 동시에 세상을 위해 구체적인 디테일을 설계하고 운용함으로써 복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고되고 세밀한 밤샘 작업이 요구되듯, 천하통일의 얼굴은 고제 유방이었지만 그 뒤에는 소하와 같은 사람들이 한 땀씩 엮어 간 업적들이 있었다.



참고) 양중석. (2025). 녹록하지 않은 공신에 대한 평가: 사기 「소상국세가」의 贊語 읽기. 인문과학연구논총, 46(3), 37-58.

사료) <사기> 소상국세가 / <한서> 소하조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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