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정의당 국회의원의 ‘새벽배송’ 관련 토론을 보면서, 후자에게 판정승을 내렸다.
(물론 둘 다 소속 정당이 여당이 아니지만) 한동훈 전 대표보다 장혜영 전 의원이 수권정당에 소속된 듯한 인상이었다.
장혜영 전 의원은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변론을 비교적 잘 해냈고, 한동훈 전 대표는 원론적인 수준의 비판에 대안적 방향도 부재했다.
기본적으로 민주노총 등의 입장은 새벽배송이 있을 때의 편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벽배송을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2021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분류와 배송 업무가 분리되었지만, 여기에 쿠팡은 참여하지 않았고 배송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프레시백 회수 업무 등까지 담당하면서 과로를 하게 되는 문제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0시부터 5시까지는 새벽배송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규제의 원칙적 취지인데, 5시-7시 사이의 배송과 기업의 추가적 고용 부담에 관한 합의 등을 통하여 불편을 완화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더해 장차 가능한 수준에서 소비자들의 소비문화가 변화해 새벽 배송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도 요구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재 수준의 새벽배송 수요가 큰 변동 없이 유지되는데 새벽배송 공급이 0이 되는 경우, 결국 5시-7시 사이에 배송 병목 현상이 발생해 배송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가 새로운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규제가 불가능하다면 부분적으로라도 시범적으로 새벽배송을 금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지점들은 다른 무엇보다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면 조정 및 수정될 수 있다.
한편 한 전 대표의 경우, 우선 다른 무엇보다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것에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여기에 동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과로사 등을 방치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한 전 대표는 그 부분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배송 금지 규제는 최저임금제나 노동조건 규제 등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결과적으로는 저질의 일자리가 양산되고 거기에 취업하는 것을 공적으로 금지하면서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규제가 시행되는 경우 그것이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반대 시위 등 격렬한 반발을 가져올 정도의 일일까?
그정도로 정당성이 없는 규제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간 행위자들은 제도나 문화 등의 구조하에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인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에 관하여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조건과 구조가 바뀌면 그들은 그에 맞추어 다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될 뿐이다.
또 한 전 대표는 요식업이나 운전 등 새벽 노동은 배송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동일한 것을 다르게’ 취급하여 새벽배송만 규제하느냐고 물었다.
여기에 대해 장혜영 전 의원이 적절히 반론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모든 새벽 노동을 포괄적으로 함께 의제 테이블에 놓고 싶지만, 우선 이 과제가 당면 현안이 되었으니 이것부터라도 해결하고 다른 것도 또 해결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한 전 대표의 발언 중 제일 심각했던 것은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이 제안을 민주당이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 등의 문제를 비난한 것이다.
그러나 장혜영 전 의원의 말대로, 민주노총은 제3자가 아닌 당사자에 속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 노조’라는 프레임도 이 경우에는 무의미한 것이, 이 의제는 어디까지나 노동 의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발언할 자격이 있다.
또 민주노총은 민주당과 이념적 거리를 두고 민주당에 입당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의힘이 싫더라도 민주당이 관용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도 당면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싫건 좋건 민주당이나 민주노총과 대화를 해야 한다.
상대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취지로 일관한다면 아무런 진도도 나갈 수 없다.
또 민주당이 이 사안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 게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민주당은 10년 가까이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당 기간 압도적 다수당이었고 무엇보다 현재 압도적 다수 여당이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기업 등으로부터의 정책 로비라던가 노사정 협의체(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주도하며 사회조정을 하는 것은 여당 본연의 역할이다.
민주당이 개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한 전 대표는 정책 자체에 초점을 두기 보다 그가 현재 주로 보고 있는 ‘민주당-국민의힘 간 기득권 프레이밍 전쟁’이라는 틀의 연장선상에서 이 문제를 접근했는데 이는 성숙한 태도가 아니며 부적절하다.
우선 상대였던 장혜영 전 의원은 범민주진보 진영에 속하긴 하더라도 엄연히 민주당 소속이 아니며, 본인은 민주노총과의 연관도 없다.
그리고 선거 때는 ‘이-조 심판론’과 같은 맞불 작전이 황급한 상황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현직도 아니고 그런 힘겨루기 구도의 연장선상에서 정책의제를 프레이밍하는 것은 그릇되다.
이것은 결국 한 전 대표가 현실정치적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으로 정치적 프레이밍과 상징정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 충분하게 만든다.
한 전 대표는 검사 커리어만 있고 정치 커리어는 짧은데, 비상대책위원장 때야 선거운동과 전략 수립으로 경황이 없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당대표 시절에도 정책에 대한 식견을 넓혀 자신의 국정 이니셔티브를 형성해 대권주자로 성장하는 데 활용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정책에 관한 식견이 ‘직업선택의 자유’, ‘자유시장경제’ 등의 추상적이고 체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곤란하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대해 파악하고 세부적인 대책과 보완 대책 등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 전 대표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얼마나 사전 준비를 하고 나왔는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었다.
보수적 논평가에 그칠 거라면 단지 현실이 이러이러하니 그런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고만 하더라도 충분할 수 있지만, 그는 현실정치인이므로 최소한 대책의 방향은 제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지 않고 그냥 반대로만 일관하는 것은, 설령 그의 말대로 ‘노동자들이 죽음을 택하고 있다’라는 등의 구호가 너무 감성팔이라는 주장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미 정슬기 노동자 사망 사건 등 실제로 배송 노동자 과로사가 현안이 된 상태에서는 위정자로서 다소 무책임한 것이다.
이번 토론이 양자의 격렬한 충돌이 되지 않은 이유는 장혜영 전 의원이 한동훈 전 대표의 말을 다시 한동훈과 국민의힘이라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식으로 되받아치지 않은 것과 양자가 실질적으로는 세대적으로나 정당 차원에서나 실질적으로 이해 상충 등 대립을 하고 있지 않은 것 때문일 뿐이다.
아무리 주체에 문제가 있는 대화라도 결과적 문제해결의 여지가 있다면 싸우더라도 최소한 일단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싸우는 것이 맞다.
새벽배송 규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의제이고, 이를 고리로 앞으로 더 많은 사회문제들을 정책의제로 전환하여 처리해 나가면서 민주주의의 본령을 회복하고 국민적 상처와 분열을 치유하는 과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