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평전 3. 병길 丙吉

by 남재준

병길(丙吉, ?~B.C.55)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발휘하고, 어려운 때 옳은 행동을 선택하고, 이를 자랑하지 않으며, 또한 권력자로서 전횡하지 않고 자신의 직분과 분수를 알고 그 한계를 잘 지킨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억할만한 인물이다.


병길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고의 화(巫蠱-禍, B.C.91) 때였다.


무고(巫蠱)란 없는 죄를 지어내어 고소/고발하는 무고(誣告)와는 다른 개념인데, 인형/침/부적 등을 써서 남을 저주하는 주술이다.


전형적인 예는 나무나 진흙으로 만든 인형에 바늘을 꽂는 방식이다.


이 사건은 전한 세종 무제 유철 치세에 발생했는데, 황태자가 모함을 받은 끝에 반격하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이 핵심이었다.


무제의 치세 말년에는 장기간 이어진 전쟁, 그로 인한 재정 압박, 재해 등으로 사주나 점복 같은 것이 유행했다.


무제 본인도 일정 부분 그런 것들을 믿고 또 이용하기도 했다.


그 당시 정국은 무사황후 위자부 소생의 여태자 유거를 따르는 세력과 강충 등 환관 및 무제의 측근 세력이 대립 중이었다.


B.C.91년(무제 50년)에 누군가가 태자궁을 포함한 궁중에 무고가 있다고 고발하여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에 강충 등이 대대적인 수색과 고문을 주도했고 곳곳에서 인형과 부적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태자 측 인물들에 대해 체포와 자백을 강요했다.


태자 유거는 결국 모반 세력의 역모 진압을 명분으로 강충을 살해하는 등 장안에서 무력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으나, 이는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여겨져 민심을 얻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태자 유거와 무사황후 위자부가 자살하고 이에 연좌되어 수만 명이 처형된다.


태자 사후에 무제가 뒤늦게 사건의 조작과 과잉 처벌을 알고 관련자들을 숙청토록 하고 생존자에 대한 감경 조치를 하였으며 자책 조서를 내려 전쟁 자제와 사치 억제 등 통치 패러다임/기조의 완화를 지시했다.


이로부터 4년 뒤에 무제가 붕어하고 소제 유불릉이 후계자가 되면서 곽광의 외척보정이 시작된다.


무고의 화 때 태자 유거의 손자, 그러니까 무제의 증손자가 되는 유병이(劉病已)는 생후 몇 달 된 갓난아기였다.


이때 병길이 유병이를 구명(救命)하게 된다.


병길은 본래 율령 정확히는 형법을 익혀 노(제후국)의 옥리(형벌에 관한 일을 심사하는 관리)를 지내고, 점차 승진해 정위부(한의 최고사법기관)에 소속되었다가 위법행위를 한 죄로 고향에 돌아가 주의 종사(지방관 보좌관)를 지내고 있었다.


무고의 화가 발생하고 대규모 국문(鞫問)과 옥사가 개막되자 병길은 예전에 정위부의 관리를 지냈다는 이유로 군저(지방의 각 군에서 수도에 두는 사무처)의 옥사를 맡아보게 되었다.


유병이가 이때 황증손으로서 할아버지 유거의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어 있었다.


병길은 내심 태자가 무죄이므로 황증손은 억울하고, 또한 갓난아기인데 옥에 갇혀 있는 것을 가엾게 생각했다.


이에 그는 유병이를 따로 조용한 곳에서 돌봄을 받도록 하였고, 해를 거듭해 몇 년이 지나도록 병길이 담당한 사건은 처리되지 않았다.


무제가 병이 들었을 때 기후관이 아뢰기를 ‘장안의 옥중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 하여, 무제가 중도관(황실 내무부)의 조옥(황제의 직접 처벌을 위한 감옥)에 있는 자들을 구분해 경중을 가리지 말고 모조리 죽이라고 명하였다.


황명에 따라 곽양이라는 사람이 밤에 병길이 관장하는 군저의 옥사에 이르렀으나, 병길은 그를 들이지 않으면서 ‘황증손이 안에 있다. 남들이 죄 없이 죽는 것도 오히려 옳지 않은데, 하물며 황실의 증손이랴!’ 하였고 날이 새도록 대치가 풀리지 않았다.


곽양은 돌아가 이를 아뢰고 병길을 탄핵하였으나, 무제는 문득 깨닫고는 ‘하늘이 그리하게 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으며 옥사에 갇힌 이들은 병길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병길은 유병이를 민간에서 극진히 돌보도록 하였다.


무제 사후 집권한 곽광은 병길을 중용하였고, 소제 사후 창읍왕 유하를 옹립할 때 병길로 하여금 맞아 오도록 하기도 했다.


곽광이 유하를 폐위한 후 후사에 관한 논의가 있었으나 결정되지 못하였다.


병길이 글을 올려 곽광에게 말하기를 ‘유조(遺詔)에 따라 길러오던 무제의 증손이 있으니, 이름은 병이로 민간에 있습니다. 그가 이제 열여덟아홉이 되어 적절한 자질을 지녔으니 그를 불러들여야 합니다.’ 라는 취지였다.


곽광은 이를 수용해 유병이를 옹립하기로 결정하고 병길로 하여금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병길은 기본적으로 점잖고 눈에 띄지 않지만 동시에 시비를 스스로 가리고 힘든 상황에서도 옳음과 선함을 택하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지 않았다면 대규모 역모 사건의 진행 중에 반역자가 된 태자의 손자를 구명하는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또 유병이를 20여 년 동안 민간에서 티 나지 않게 조용히 기르도록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병길은 유병이의 옹립을 건의하는 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그간 유병이를 보호해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이에 조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새로 즉위한 중종 선제 유병이(유순)조차 자신을 구명하고 후원해 온 이가 병길임을 알지 못했다.


선제의 친정과 곽씨의 주멸 후에 한 궁녀가 민간에 있다가 ‘자신이 일찍이 아기를 돌본 공이 있었다’라고 아뢰어 조정에서 조사토록 하였는데 궁녀가 병길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조사자들이 궁녀를 데리고 병길에게 갔는데 병길이 그를 알아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예전 황증손을 기를 때 엄정히 감독하지 못해 곤장을 맞은 바가 있는데, 무슨 공이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선제가 친히 병길을 불러 물어보고 나서야 병길에게 자신이 살아남도록 구명해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 무탈하게 자라도록 후원해 온 공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병길은 끝내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


선제는 병길을 박양후에 봉하고 승상으로 임명한다.


재상으로서의 병길은 진평과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재상은 개별적인 행정사무에 대해 일일이 개입하지 않으며, 각 관리와 관서의 직분과 소임을 다하도록 한다는 것에는 그 관리와 관서의 재량과 역할을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병길은 승상직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에게 관대했는데, 승상부 소속 아전이 죄나 장물(贓物, 범죄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물건. 대표적으로 절도한 물건.)이 있어 직무에 부적합하면 즉시 장기 휴가를 주고 끝내 문책하거나 수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를 병길에게 지적하니 병길이 말하기를 ‘삼공(승상-태위-사도)의 관부에서 아전을 수사하는 부처라는 세평을 듣게 하는 것은 비루하다.’라고 말하였다.


이를 선례 삼아 이후에도 삼공의 관부에선 아전을 수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현대행정의 관점에서 볼 때 감사나 수사의 권한이 국무총리에게 있지 않으므로 국무총리 산하 공무원의 범죄를 총리가 직접 어떻게 할 수는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다.


그러나 고대에는 위로 갈수록 고위직이 훨씬 포괄적으로 담당 행정부처의 상위에서 명을 내릴 수 있었던 구조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형사를 담당하는 관서가 있더라도, 결국 재상의 명령 나아가 황명이 그 위에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담당 관서의 재량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여 운영의 합리성과 타당성이 저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병길이 부정이나 비리조차도 몰랐느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황을 알아야 더 수사하라거나 그러지 말라거나 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견 관부 소속 관리들의 부정과 비리를 재상이 직접 수사하고 문책하지 않은 병길의 조치는 관대하다는 그의 세평과 더불어 무능하고 아랫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취약한 리더십을 가진 재상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병길이라는 사람의 행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그의 성격과 기질을 본다면 본인이 아랫사람일 때에도 윗사람의 눈치만 보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하물며 윗사람이 되어 아랫사람의 눈치를 볼 성격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나아가 병길은 작은 허물을 하나씩 들추어 내치기 시작하면 도리어 그 인물의 장점을 가려 쓰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병길의 마부인 아전이 술을 좋아해서 병길을 수행해 나갔다가 승상의 수레에 토를 하였다.


이에 그를 파면시키라는 취지로 담당 관리가 보고하니, 병길이 말하기를 ‘취하고 배부른 상태의 잘못 때문에 이 사람을 내치면, 장차 이 사람이 어디에 다시 설 수 있겠는가? 이를 참아주라. 이는 승상 수레의 자리 깔개를 더럽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 아전은 변방 출신으로 긴급 동원/경비 사무에 밝았다.


어느 날 이민족이 침입했다는 파발이 들어왔는데, 아전이 병길에게 아뢰기를 ‘오랑캐가 침입한 변경군 중 노병으로 병마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되니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병길이 그 말을 좋게 여겨 변방의 관리들을 아주 세세하게 점검토록 하였다.


점검과 조사가 끝나기 전에 선제가 병길과 어사대부(관리 감찰관)를 함께 불러 변경의 관리들에 관하여 물었는데, 어사대부는 갑자기 불려 와 알지 못하여 문책을 받았다.


그런데 병길은 모두 답할 수 있었고, 선제는 병길이 변경을 걱정하며 직분을 생각하였다 하여 칭찬을 하였다.


이는 마부 아전의 힘이었으므로 병길이 탄식하기를 ‘선비를 받아주지 못하면 저마다 장점이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승상(병길 자신)이 먼저 이 마부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내가 어찌 이렇게 노고와 권면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하여 속관 아전들은 병길을 더욱 어질게 여겼다.


고대나 현대나 보통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복잡한 조직 체계라던가 화이트칼라 범죄가 많은데 이는 입증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범죄, 예컨대 사기나 절도 같은 것들은 물증을 확보하기가 비교적 용이하고 이에 입증도 비교적 쉽다.


이러한 이유로 결과적으로 세간에서 보기에는 ‘유전(권)무죄, 무전(권)유죄’로 보이는 측면이 있게 된다.


하지만 병길과 같이 아랫사람의 허물을 어느 정도 덮어준다면 오히려 후에 그의 재능과 같은 장점들이 더 살 수 있게 된다.


물론 범죄와 재상의 수레에 토하는 행위는 도덕윤리적, 법적 차원이 다르긴 하나 큰 틀에서 보면 아랫사람에게 적절히 관대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부분에는 변함이 없다.


병길 본인이 옥리 출신이기도 한데, 보통 현대의 경우에도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검사 출신들은 조금 독해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그 이유는 형사 업무라는 것이 사회에서 가장 용납되지 않아 가벌성이 있는 행위, 즉 단순한 일탈행위 정도가 아니라 범죄행위를 모두 맡아 처리해야 하는 것이므로 인간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없어진 탓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의 부정적인 면만 볼 일이 압도적으로 많을 옥리 출신인 병길이 사람에게 관대하고 억울함을 가려 자제하려 했다고 하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또 기본적으로 뇌물을 받고 판결을 부당하게 하는 경우도 말할 필요 없이 성행했을 것이었으므로 이에 비추어 보면 병길의 행보는 더욱 빛을 발한다.


앞서 병길의 재상에 관한 철학이 진평과 비슷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다음 사례에서 확인된다.


어느 날 병길이 나가다가 길목에서 무리 지어 싸워 죽고 다친 자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묻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좌우에서 모시던 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조금 더 가니 어떤 사람이 소를 몰아가는데 소가 헐떡이며 혀를 내밀고 있자 병길이 멈춰서 기병 서리에게 ‘저 소를 얼마나 먼 길을 몰아왔는지 물어보라.’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떼 지어 싸우다 죽고 다친 것보다 소가 괜찮은지를 신경 쓰는 이러한 행동에 좌우의 이들이 ‘승상께서 앞뒤로 물을 것이 엇갈리셨다’ 하였다.


그러나 병길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싸워 서로 죽고 다치는 일은 장안령과 경조윤(장안의 지방행정 등 담당 관리들)의 직분으로 금지하고 대비하며 추포해야 할 일이다. 해가 바뀌면 승상은 그 성적을 평가해 상벌만 시행하면 된다. 재상이 잔일을 몸소 도로에서 묻고 다닐 바가 아니다. 지금은 봄이라 아직 크게 덥지 않아야 하는데 소를 바로 몰고 다녀 더위에 가까이 노출되어 헐떡이는 것이 염려된다. 이때 기후의 절도가 어그러지면 해로움이 생길까 두렵다. 음양을 고르게 조절하는 일을 맡았으니 이것이 곧 내가 염려해야 할 직분이다. 그러므로 물은 것이다.’ 하니 좌우의 이들이 탄복하며 병길이 대체(大體, 어떤 일의 기본)를 아는 사람임을 인정하였다.


물론 개별 사건 자체로만 보면, 사람의 사상(死傷)보다 기후의 고르지 못함을 염려하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병길의 요지는 그것을 재상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을 담당하는 관리의 기능과 권한을 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고대 재상의 직무에서 기후라는 것은 비유의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의 관점에서 사회의 갈등과 같은 큰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고위 정무직이 맡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고위직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매우 절제한 병길은 모범적이다.


병길의 임종 때 선제가 곁을 지키며 뒤를 이을 사람들을 물으니 병길이 두연년, 우정국, 진만년을 추천하였는데 병길 사후 그들이 직무를 잘 수행하여 세간에서 병길을 ‘사람을 알아보는 자’라고 칭하였다.


반고는 찬할 때 위상과 더불어 병길을 소하와 조참에 비견하며 그를 ‘으뜸의 재상’이었다고 평하였다.


참서) <한서> 위상병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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