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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대로 받으리라

by 남재준

“이재명 정부, 75만 공무원 휴대폰·PC 10개월치 검사”


배운 놈, 가진 놈이 더한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둘 다 법학을 전공한 법조인 출신인데, 그래도 법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규범적인 요소들을 체화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며 이를 제한하는 것은 가능한 한 제한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 같은 것 말이다.


중화민국의 제1야당 대표는 미국에서 법학 석사까지 나온 사람인데 러시아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인 것처럼 말한다.


자유주의와 법치주의 및 인간존엄성과 기본권, 인권이 실천 원리로서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헌법을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려면 헌법이 요청하고 명령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도대체 공무원들의 이메일, 메신저 기록, 심지어 휴대전화를 개인용까지 모두 정부 감찰권 차원에서 압수해 조사하겠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싶다.


개인의 휴대전화 기록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조사가 아닌 수사권조차 영장주의가 적용되는 수준의 기본권 침해-제한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


그러한 행위의 배후에 있는 인식과 세계관은 해괴함을 넘어서 징그럽고 소름이 끼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포함해 현재 정부여당의 주요 공직자 중 상당수가 86세대에 속하는데, 이자들은 신군부 시대의 이원론적 세계관(기득권-저항자)에 속해 있다.


그 세계관이 매우 교조적이고, ‘프락치 색출’과 같은 형태의 행위들로 나타난다.


최민희 의원의 ‘면역’ 발언처럼, 이토록 복잡하고 세밀한 현대사회에서 운동권식 DNA에 근거를 둔 자타/아적(我敵)/시비를 흑백 논리로 재단하여 자기 편이 ‘아닌 것 같으면’ 모두 타자이고, 적이고, 그른 것으로 취급한다.


이건 내가 옳다는 아집이 너무 강해서 반사적으로 타인을 무시하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상대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넘어 ‘자기’라고 생각되었던 것들 안에서도 또 색출을 하려 드니 계속되는 의심과 그에 대한 반향으로서의 경멸과 증오가 축적된다.


이미 친명이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도 아니고) ‘점령’할 때 대규모로 색출과 숙청이 이루어졌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자체를 그렇게 ‘박멸’하려는 모양이다.


더구나 헌법 존중이니 내란 청산이니 하는 것을 내세우는데, 헌법을 무시하면서 헌법을 이용하는 행동은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고 궤멸하고 청산하고 싶어 하는 권위주의적 보수 세력의 행태와 닮아있다.


위무제 조조曹操는 자신을 배신했을지 모를 사람들의 기록까지 모두 공개적으로 태워 일괄적으로 사면하여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다.


이는 전한의 재상 병길丙吉이 자기 부 소속 아랫사람들의 치부를 함부로 조사토록 하기보다 절제된 권한 행사를 통하여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나아가 인재들이 성긴 그물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함과 같은 이치였다.


하나하나 모든 여죄까지 전부 들추어낸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발상이며 또한 그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들도 많이 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 공직사회와 민심을 술렁이게 할 수 있다.


문재인 시대 이후 그 이전과 완전히 단절된 민주당은 이제 간판만 국정 안정, 실용, 헌법 수호 이런 것을 내세우고 실체적으로는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 있는 언행을 서슴없이 하고, 내로남불을 숨기거나 변론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주적으로 삼은 사람들의 핵심적 문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비(非)자유주의, 비(非)이성을 넘어 반(反)자유주의고 나아가 반(反)이성이다.


현재의 민주당을 놓고 보면 과거에 민주당 지지자였던 점이 매우 부끄럽고 어지러움을 넘어서 질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원한이 쌓이고 쌓여 그 응보를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자신이 반드시 당하게 될 것이다.


보수 세력이 집권 내내 소수여당, 계엄으로 인한 탄핵소추 인용 등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워 왔다.


이제 한 10년 가까이 화양연화였던 그리고 매우 변질되어 이전의 모습이 없는 민주당의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괴물을 잡으려다 더한 괴물이 된 자들의 말로는 결코 좋을 수 없다.


거울을 볼 능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자기 얼굴이 얼마나 추한지 제대로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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