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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Post)성장과 지속가능한 사회경제로

어느 모델을 모방할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다

by 남재준

다음 글은 이 게시물(https://www.facebook.com/share/p/14P4nrh5fvi/)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반드시 참고하기를 바란다.


[현장영상] “한국 경제를 왜 걱정해요?”…‘노벨경제’ 수상자의 조언 / KBS 2025.10.14.


*개별 정책은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패러다임은 문제다


현실적으로 보면, 민주당계 정당이 제시해 온 모델은 구체적 정책 차원에서는 일리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패러다임의 논리가 경제학적으로 이단적이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정책이라는 것이 그것을 추진하고 방어하는 정무적 맥락이 중요하다.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추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초될 수 있다.


이런 경우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만이 아니라 혁신성장도 내세워서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규제샌드박스 도입 등 시장, 기업과 공급/생산 측면도 상당히 많이 고려했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의 논리 자체는 문제가 있어도 그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정책에는 일리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사회보장 증진 등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제고하는 것은 5년 안에 펼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중 하나이다. 중산층이 계속 감소하고 계층 대물림 현상이 고착화/심화되며 고용 없는 성장이 만성화된 상황에서 가계 지원 정책은 필요하다.


다만 공공 주도로 일자리 창출을 하면 민간도 따라온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성장세가 계속되면 전체 GDP가 증가하므로 거기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구축효과가 발생하는 것만은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저성장이 만성화된 상태에서는 구축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그리고 공공이 토건 산업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부 주도 고용 창출은 시대에 맞지 않고 효과도 거의 없다.


또 내수 주도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다. 소비를 증진해봐야 소비재 위주로 수요가 증가할 텐데 그것으로 경제성장까지 떠받친다는 것은 좀 과도한 비약이다. 기본적으로 성장 전략은 기업, 산업과 기술, 투자 등을 움직여 생산/수출을 제고하는 공급 측면의 정책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므로 소득/소비 등의 제고를 곧바로 성장으로 갖다 붙이는 듯한 패러다임은 문제가 있다.


차라리 저성장-고용 없는 성장이 이미 만성화되었고, 이제는 지속적 고성장으로 되돌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며 앞으로는 자동화 등으로 인하여 더욱 이러한 현상들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재정을 생활보장과 구조개혁 등에 집중해야 하고 산업이나 금융 등은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 말하자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경제정책 노선으로의 복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참여정부 때에도 지극히 선진적인 경제정책 기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위적인 토건 중심 경기부양을 하지 않고, 복지를 사회투자로 보아 가계경제를 지원하고 노동 역량을 향상한다는 등의 정책은 주류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발국가에 비해 시장 중심을 강하게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경제기획 중심의 체계적인 개발 계획에 익숙했고 노무현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정서 때문에 경제를 포기했다느니 하는 궤변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유럽 모델을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


우리나라는 유럽과 근본적 현실이 다르므로 유럽 모델을 수용하려면 정책을 있는 그대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 모델이 완전히 유효기간이 만료했다거나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이 되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과거에 진보정당이 노동운동과 복지국가를 강조한 건 물론 유럽 모델을 의식한 게 있긴 했겠지만, 우리나라 현실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서민들은 개발국가 시절 정부가 기업을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기업이 노동을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조합주의 국가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집단주의, 과로사회, 속물 근성 등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복지 지출도 이제 막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작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상태에의 도달을 지향하느냐는 둘째 문제고, 일단 유럽 모델과 유사하게 노동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복지국가를 강화해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유럽 모델도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지배적인 대세가 된 8-90년대부터 이미 노조에의 가입과 노조의 영향력이 점점 하락세에 들어갔으며, 북유럽 국가들에서조차 중도우파 정당들이 집권하면서 긴축과 친시장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 모델에 대한 지적대로 사회적으로 관대하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늘어져 있다는 지적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20년대의 유럽을 보면 꼭 이민/난민 문제가 아니더라도 서민을 사지로 내모는 결과가 되어 버린 복지 축소나 노동시장 유연화 그리고 경제사회적 상층부에게만 이득이 되는 감세 등에 대한 분노가 이미 폭발하고 있다. 미국에도 진즉부터 그러한 맥락이 있었고 현재에도 이는 이어지고 있다. 이건 단순한 좌우의 문제나 어느 한 모델에 관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이다.


한편, 우리나라 민주당계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중소기업 중심 경제까지 생각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대기업은 한국경제에 양날의 검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자본과 노동을 집약해서 생산과 수출을 열심히 해서 성공한 나라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에도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요 공업들은 대기업에 의해 주도된다. 그리고 이는 이미 구조화되어 있어서 민주당이라고 하더라도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를 더 강하게 주장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경우 민주당이 충분히 강하게 경제민주화에 대해 주장하지 않는 것을 두고 문제가 있다고 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지원의 근거는 억강부약의 논리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쏠림 구조가 과하게 심하다. 시장이 경쟁보다 원-하청 등의 구조에 사로잡혀 있다. 또 특정 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운영되다 보면 공공이 그러한 기업들의 볼모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공과 시장이 적정한 거리를 두고 공공이 규제나 지원 등을 하고 시장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투명화된 경영 등을 지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대기업을 밀어주어야 한다는 경제적 내셔널리즘 정서를 바탕으로 대기업에 대한 관치금융과 유사한 것들을 해 왔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의 구조개혁은 회계와 경영 투명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치금융 완화 등 컴플라이언스의 확대를 통한 선진적인 경영 환경 조성 등에 목표가 있었다고 본다. 또 고용이나 투자 측면에서도 대기업에 의존해야 하므로 대기업이 무노조 경영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막기가 힘들다.


대기업 중심 경제는 불가피하지만 대기업은 너무 큰 권력과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한쪽으로 너무 쏠리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이미 이를 1997년에 어느 정도 확인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수십 년간 형성되어 온 시장 구조를 완전경쟁 지향으로 급진적으로 바꾼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공공의 입장에선 앞서 언급했듯 새로운 도전과 시장 창출을 더 지원해야 하며, 또 많은 국민들이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는데 대체로 고용 환경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규제나 지원이 집중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중심이라는 패러다임은 이런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본래 탈성장(Post-growth)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환경 담론에서 나온 말이지만, 나는 사회경제적 비전의 차원에서 이 개념들을 쓰고 싶다. 현대 사회경제는 가속화되는 자동화, 노동의 불안정성, 극심해지는 사회적 갈등, 사회적 고립과 회복력 저하,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인한 재정과 사회보장의 지속불가능 문제 등을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과로사회, 집단주의 등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간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은 사실상 미국 모델을 따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고용/노동 관행이 다른데 미국인들에게는 이직이 커리어 축적이 될지 모르지만 연공제와 안정 중심이었던 우리나라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사실상 서민들만 사지로 내모는 것이었다. 거기에 우리나라는 만연한 저성장 추세로 고용이 저조해졌으므로 더욱 사회이동이 감소하고 취업난이 심해졌다.


유럽 모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북유럽도 있지만 독일식도 있고 영국식(미국식과 북유럽식 사이 어딘가가 아닐까 싶다)도 있고 그렇다. 북유럽은 삶의 질이 높지만, 우리와는 자연환경이나 역사적 궤적 등이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 북유럽 국가들도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긴축 등을 단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사회적 안전망의 증진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점점 더 가계는 사지로 내몰리게 된다. 다만 재정 여력도 생각해야 한다. 중산층까지 증세를 감당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사회서비스 제공의 효율성-효과성을 균형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와야 한다. 산업과 금융은 이제 시장의 영역으로 두고 정부는 생활보장과 교육/노동 등에서의 구조개혁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한편 연금개혁을 위한 정년 연장 등에의 사회적 합의라던가 불안정노동의 포괄적 보호를 위해서도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폴더 모델은 여기에서 매우 크게 참고할만하다.


GDP가 높은 것이 가계경제에 저절로 순편익을 제공하는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엘 모키어를 포함해 많은 세계적 석학들은 한국은 성장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저출산 등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현재의 기성세대조차 벗어나지 못한 성장 신화에서 이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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