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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從)에서 배(背)로

대중 정책의 기조 변환 필요성

by 남재준

1.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한 변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최근 대만 유사시 관련 발언을 일본 자위대가 중국과 실전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중국-대만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는 것은 과잉·오류라고 본다. 일본과 대만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일본은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부당하다고 전제하고 있으므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일본에 안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최고도의 위협이므로 자위대가 일본 방위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취지를 발언한 것뿐이다.


사태대처법 제2조 제4호상 존립위기사태(存立危機事態)란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외국이 무력 공격을 받았고, 그 결과 일본의 존립이 위협되고, 국민의 생명/자유/행복추구권이 근본적으로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를 말한다. 구체적인 조문의 운용은 헌법상 한계와 상황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외국이 무력 공격을 받는다면 일본의 존립이 위협될 개연성이 높겠으나 조문상으로만 보면 일본의 존립이 얼마나 위협되느냐에 따라서 일본의 개입 여부와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상식적으로 직접 참전은 일본국헌법의 해석 한계를 일탈한 것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전면전을 한다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으므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과잉 해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은 일방적으로 과민하고 부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일본 등이 중국의 눈치를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중국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변덕이 있을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중국의 팽창주의적, 신(新)중화질서 야욕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에 빤히 보이는 면종복배(面從腹背)를 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더라도 점점 타당도가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한일과 중국의 서로에 대한 국민 감정은 이미 좋지 않다. 이번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관한 일본 내 반응도 적절(50%)이 부적절(25%)의 2배였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최소한 한국과 일본이 무조건 순순히 중국의 의지대로만 따르지는 않을 거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이번 발언은 단지 그러한 취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한 데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관점은 후진타오 체제까지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라는 기조를 이미 탈피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공세적이고 제국적인 기조가 된 중국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신냉전 질서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소위 ‘균형외교’가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이 한일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한일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


2. 균형외교의 근본적 문제


균형외교는 우리나라 민주당계 정당 특유의 좌익내셔널리즘적 비관주의와 우파반공주의에 대한 반감에 기초한 반사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대북유화정책도 비슷한 맥락에 있으며, 민주당계 정당이 적극적 친북/친중은 아니지만 반사적/결과적 친북/친중 노선을 보임으로써 상당한 수준의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최근에 우리나라의 핵잠수함 도입을 중국에서 사실상 묵인한 것도 실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의 집권 지속에 플러스 요인을 주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일 수 있다. 비록 직접적 의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은 상당하다. 중국이 혐중/반중 정서에 대한 통제를 일전에 우리나라에 주문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재명 정부가 혐중/반중 집회/시위를 실제로 적극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그러한 요구에 응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중국이 민주당에 대해 호의를 가질만하다. 이재명 정부가 어떤 의도였던 간에 적어도 이재명 대통령이 이전부터 일관되게 외국인이나 이민자 등의 혐오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것도 아니므로 결국 중국을 의식한 것은 사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좌파적 비관주의에서는 어차피 힘으로 따지면 우리 입장에서 미중이 뭐가 다르냐, 트럼프 치하의 미국을 보면 서구 진영도 더는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최소한 동맹국의 체면과 자율 등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편이며, 트럼프라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미합중국이라는 지속적 국가/체제에의 신뢰가 중요하다. 근본적으로는 트럼프 치하에서도 종래의 제도화된 동맹이 완전히 파탄나거나 한 바는 없고, 그것이 미국이나 동맹국들 중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트럼프가 바보는 아닐 것이다. 다만 전임자들보다 미국우선주의 성향이 더 강해서 경우에 따라 미국에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중국에 대해서도 모른 척한다던가 하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일 뿐이다.


또 미국도 관타나모 수용소, 동맹국 정상 도청, 친미독재정권 방임 등의 비도덕적 행위를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애초에 인간과 사회는 온전히 일관적이고 선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미국은 내부고발/사법적 통제/의회의 견제/언론의 보도 등 여러 주체와 경로를 통해 피드백/감시/견제가 이루어져 자기 수정과 학습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개별적인 행동 및 체제 모순 등에 대한 비판과 미국 자체에 대한 중국과의 양비론은 과도한 비관주의이다. 또 어떤 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도덕적 인정으로 항상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완전무결하거나 완전타락하거나 하는 것은 존재하지도 유의미하지도 않으며, 선악과 손익 등의 수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정치적 지지 여부가 결정되는 좀 더 스펙트럼적이고 복합적인 메커니즘이 있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좌파적 비관주의는 결국 허무주의 같은 것으로 이어지게 되며 반대로 서구에 대한 반감의 반사적 효과로서 권위주의 체제에의 옹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자기의 존립 기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점진적으로라도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필수라고 본다. 이 지점에서만큼은 안보 논리가 경제 논리보다 우선해야 한다. 사실상 경제적 의존도가 중국의 조공-하사 체제와 비스무리하게 되고, 외교적으로 중국의 요구에 수용적인 흐름이 장기화되면 결국 중국에 목줄이 잡힌 신세로 반강제적으로 신중화질서에 편입되어야 할 수도 있다. 중국을 막을 레버리지가 없으므로 더 큰 위협이 되고 국가/체제 안보를 위해 비용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민주당계 정당이 균형외교니 안미경중이니 하는 것은 실은 중국의 덫으로 걸려 들어가는 순진한 루트/사고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더구나 어떤 면에선 균형외교가 면종복배로 보일 여지도 있으나, 한국이 입장을 좀 더 명확히 하기를 바라는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종(從)의 정황은 많아도 배(背)를 확인할 근거가 부족하다. 특히 민주당계 정당/정권의 경우 더 그러하므로 서구의 의심을 부채질하게 된다.


민주당계 정당은 미묘한 내셔널리즘 정서와 현실적인 동맹관계 유지 사이를 균형외교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접합한 것뿐이다. 많은 민주당계 정당의 정책과 노선은 사실 반(反)보수 성향의 견지에서 반사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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