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속가능성의 위기, 제도와 관성으로만 버티는 대한민국

by 남재준

우리 정치와 사회경제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위기에 있음에도 이에 대해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지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이, 인지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계 정당은 독자적 정체성이라기 보다 반(反)보수만을 존재 이유로 삼아 왔다. 참고로 반보수와 민주주의는 또 다르다. 반보수를 명분으로 반민주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며, 현재의 민주당이 정확히 이러한 흐름에 속한다. '우리가 옳아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옳음의 내용이 없고 그냥 '저들이 틀려서'로만 메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 측면에서도 속 빈 강정인 경우가 많다. 정책 철학의 빈 자리를 정의, 공정, 국민, 자주 등 도덕적 언어로 채워 놓지만 정작 구체적인 정책기조의 제시는 파편적이거나 부재한다. 반사성(Reflectivity), 반응성(Reacitivity)만이 민주당의 정치적 성질이고 본질이다.


결과적으로 이념/명분상으로는 그럴 듯해보이지만 이미지만 남고 정책/실지로는 무능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의 정책설계와 정책집행 등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보다 완성도가 못하게 된다.


이전부터 계속 강조해 왔지만,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 민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보수 세력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일본 자민당과 같이 수권정당을 넘어 유일무이한 국정정당으로 자리 잡는 것 뿐이다. 민주당은 지금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도 상실했으며 반사의 정치가 흑화되어 비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에 근접해가고 있다. 무능하지만 '도덕적'인 진보라는 종래의 생각이 완전히 유효성을 상실했다.


다수당으로서 제도적, 문화적 자제가 없고 정책 기술도 떨어지며 무엇보다 국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내부 결집형 동원과 선동만 난무한다. 양당이 모두 포퓰리즘에 잠식된 상황에서 압도적 다수인 이재명 정권에 대한 잠재적인 국민의 불만이 임계치를 넘으면 결국 국민의힘을 재소환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도 이를 알고 있고 이미 문재인 정부 때 끌어 내리기 전략에 성공했기에 자기 혁신을 할 동인이 더욱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부터 계속해서 혁신의 요구와 압력을 받아 왔지만 결국 끝까지 자신들의 보스정치, 집단주의, 개발국가 등의 DNA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DNA가 저항자('좌파 기득권 타도')라는 정체성과 합쳐지며 더욱 흑화와 폭주를 부채질하고 있다. 부패하지만 '유능'한 보수라는 종래의 생각은 완전히 유효성을 상실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로 자신을 저항자로, 상대를 기득권으로 프레이밍하고 이 양자를 국민이건 제3세력이건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양당이 모두 폭주를 멈추고 합리화/중도화를 할 동기가 없게 된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으로 계엄과 같은 헌정위기를 넘기더라도 보다 본질적/중장기적인 한국의 지속불가능성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와 경제 차원에서 지속불가능성의 특이점이 매우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므로 실질적 구조개혁이 정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지만 정치권은 그냥 현 체제를 보완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가 되어 있다. 청년-노인 동시 빈곤, 저출생-고령화와 사회적 지속불가능성, 세대 간 계층 대물림과 자산 불평등, 노동의 자동화와 불안정성 심화, 고용 없는 저성장의 만성화, 재정건전성의 상실 가속화, 포화 상태에 이른 입시와 전문직 경쟁, 고용난-취업난과 전공 미스매칭 등..


만약 구조개혁에 관한 논의와 실천에 서둘러 돌입하지 않으면, 점점 미래에 치러야 할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정건전성을 보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최악은 증세+예산 삭감일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래도 여러 선진국에 비하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좀 나은 편에 속하지만 슬슬 위험 수준에 도달한 것도 사실이다. 지출 여력이 있을 때 지출의 효율화와 우선순위 지정 등의 예산개혁이 필요하며, 동시에 중산층까지 조세 부담을 감당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엄청난 조세저항이나 사회적 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은 사회자본의 소모를 감수해야 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사회자본은 엉뚱하게 무의미한 껍데기만 남은 진영 대결에 소모되고 있다.


2020년대 한국의 진실은 결국 제도적/문화적 관성 등이 남아 만료되고 소진된 체제가 지속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근본적인 대안적 비전과 구조개혁의 추진을 통한 대한민국의 리부트(Reboot)가 필수적이다. 전체적으로 한국을 종래에 지배해 온 집단주의, 성장지상주의, (선진국에 대한 무조건) '모방주의', 개발도상국적 마인드(e.g. 우리는 국제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적당히 미중 사이에서 이익만 보면 된다), 거시적으로 단순 확대vs긴축 재정, 민주화-산업화 대결 구도 등을 모두 청산하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종(從)에서 배(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