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쉽게 문화나 질의 문제를 간과한 채 제도나 구조만 바꾸면 그 모델 그대로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잘해야 중진국이다. 모든 제도와 구조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그리고 보다 정확히는 제도와 구조의 영향 하에 있는 개별 행위자들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제도개혁은 기본적으로 결과와 수단 그리고 그 국가의 맥락만 놓고 결정할 수 없고, 제일 중요하게는 실제로 우리 맥락과 해당 제도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의 +/- 수지를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이 점에서 입학사정관제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도 실패했고 실패할 정책들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들의 법조인 양성/선발 제도를 일차적/우선적으로 참고하고, 영미법계라 하더라도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제도들도 복합적으로 참고했어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식 로스쿨 제도는 오직 미국이 세계의 패권자이자 역동적 시장으로서 변호사가 사법이라는 견고한 제도적 틀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유의미한 것이었다. 로스쿨 제도는 1990년대 탈냉전 이후 정점을 찍은 미국을 본받아 도입된 것이지만, 독일법의 영향을 주로 받은 일본과 다시 일본법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와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개별 행위자 특히 세계화니 경쟁력이니 하는 말과 유관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은 변호사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기업과 시장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기술자나 혁신적 기업가를 원한다. 그러나 애초에 변호사라는 직업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분쟁을 법적으로 보조하거나 컴플라이언스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역할이 있다. 취업난과 비합리적인 인적자원 운용ㆍ변호사에 대한 과잉 보상 등은 변호사보다 다른 직업에서 더 활약할 수 있는 이들조차 로스쿨로 몰리게 하고 정작 변호사의 자질이 있는 이들을 배제한다.
실무 수습이나 소크라테스식 산파술 중심의 교육도 우리나라나 일본의 법체계/법문화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견고한 성문법 중심의 국가이기 때문에, 법조인 개인의 언변 같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따라서 토론이니 하는 것이 입법자가 아닌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활동해야 하는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측면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제일 큰 문제는 아마도 결국 로스쿨, 특히 한국의 로스쿨은 이해관계자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경제에도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변시사관학원이 된 로스쿨은 사교육 시장의 새로운 개척지를 넓혀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고, 기본7법 이외에 전문법 영역은 로스쿨의 본 취지와 달리 교육과정에서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아예 변호사시험 과목으로도 폐지하자는 논의가 나온다.
변호사는 기업가가 아니다. 따라서 기업가적 정신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실제 법의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의 문제는 실무적 경험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맞다. 그리고 이것이 변호사시험을 기본적인 자격시험화하겠다는 기본 취지에도 맞다.
사실상 법학적성시험과 같은 (본래 절대적으로 중요해서는 안 되는) 인적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버렸고, 어지간한 스펙으로는 로스쿨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계층적으로 중상층 이상에 집중되어가는 법조계의 구성과 어떤 의미에서 이전보다 훨씬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 로스쿨 중심 변호사 양성 체계는 사회적 약자나 사회인들에게는 전혀 유리하지 않다. 그렇다고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당초 예상했던 7-80%를 유지하느냐 하면 모두가 알듯이 전혀 그렇지 않고 50% 수준에 머무른다.
결과적으로 변호사 수를 약간 증가시키는 것 말고는 로스쿨 제도는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사법고시 시절보다 더 나쁜 환경을 만들었다. 그런 결과는 그냥 고시-사법연수와 학부법학 시절에서 약간 더 개선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과도한 정치적 개입으로 현실과 매우 부정합한 제도를 억지로 이식했고, 그 후과에 대해 개선할 생각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은 처음에 종래의 체제와 로스쿨 체제를 병존시켰다가 로스쿨 체제가 유명무실해지는 수순으로 나아간 반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로스쿨 체제로 일원화하고서는 그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구조적 문제들에 전혀 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일본처럼 예비시험제도라도 도입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대학에도 법학과를 부활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통대 로스쿨 설치도 하나의 단기적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