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겐 여의도 문법을 이해할 의무가 없다

by 남재준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정치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국민에게로 가야 한다.


국민들은 여의도 문법을 이해해줄 의무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여의도 문법은 어떤 형태로든 '박살'내야 한다.


정치인들이 실제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건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그러한 외관을 현출한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또 당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민주정치에서 국민은 정작 소외되는데, 그러면서 사실상 '그렇게 불만이면 입당을 하라'는 식으로 가고 있다.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오면서 정당은 점차 계급이나 이념으로 견고하게 뭉친 당원 중심 정당에서 국민에게 열린 플랫폼 정당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완전한 퇴행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당인, 국회 보좌관, 지방의회 의원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아지는 것은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과잉인 현재만큼 경계의 대상이 된다.


정치도 '업계'로서의 성격이 강해지면 결국 국민에게 업계의 논리를 오해하지 말라는 식으로 시나브로 가는 경향이 생긴다.


만약 우리나라가 영국과 같이 장기의 의회주의 전통과 정치의 생활화가 이루어져 있으면 모를까,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과 권력투쟁이라는 날 것의 정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의도 문법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했지만, 적어도 국민에게 그것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와 도리가 아니다.


더구나 민심과 민주주의를 참칭해서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밀어 붙인다면 더욱 문제가 크다.


정치인들이 무대 위에서만 으르렁거리고 무대 아래에서는 서로 친하게 지낸다는 점이 사실 측면에서 '오해'라고 하더라도,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싸우거나 싸우지 않거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삶을 둘러싼 환경, 제도, 구조, 문화 등의 개선을 이루어내 실제로 자신의 삶과 생활이 바뀌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우리 국회는 수없이 많은 입법을 내면서도 정작 입법영향평가의 제도화에 대해서나 그 이외에 이러한 입법들이 종합적으로 겨냥하는 종합적인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전혀 내놓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아주 생활 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실, 중앙의 정치인들은 너무 미시적인 생활이나 지역 이슈에만 신경 써서도 안 된다. (이 점 때문에 정치개혁에서 지역구 축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코미치 다카히로 전 일본 중의원 의장(사회당 출신)은 홋카이도지사를 지내며 '혁신도정'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지방자치는 이념과는 상관이 없다'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지극히 옳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선거를 본위로 볼 때, 지방선거는 중앙의 영향을 너무 받고 또 중앙의 국회의원들은 재선을 위해 지역구에 신경을 쓰느라 국가 전체 차원의 정치와 입법을 할 힘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정치인과 정당들은 종합적인 국가의 청사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한 청사진의 일부를 예로 들면 정치개혁이 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극우 궤멸을 외치지만, 오직 그것만 외치는 건 사회운동가나 사회학자, 정치학자가 아닌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하다.


정치인에게는 정치개혁을 통한 정당 구도의 재편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문화를 비롯한 정치 자체의 혁신을 위한 선거제도개혁 등의 구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대한민국의 반을 지지 기반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을 궤멸시키겠다는 건 이토록 예민하고 복잡한 21세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우리는 피와 혁명과 전쟁의 시대였던 20세기를 지나면서, 역사적 거악의 척결을 명분으로 한 혁명이나 숙청은 결코 정확히 환부만 도려낼 수 없음을 배웠다.


어느 나라에나 기득권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만 크게 보아 독재 세력의 후신이 주류 보수정당으로서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코의 독재를 겪었던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조용히 잊는 것을 택한 스페인보다는 훨씬 과감한 숙청을 단행한 편이다.


혁명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억울한 희생을 낳으며, 이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예민하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큰 정치적 행위는 민심을 크게 자극하고 놀라게 한다.


작년 계엄의 밤에 머리 위에서 군용 헬리콥터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내던 공포를 아직도 기억한다.


민심을 자극하고 놀라게 하고 나라의 신용도와 위상에 손상을 입힌 죄는 엄하게 다스려야 맞다.


하지만 이는 검찰과 법원의 역할이고, 교체된 정권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치유와 통합의 기조로 국정에 집중해야 맞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계속해서 그 상처를 과도하게 헤집으면서 갈등에 오히려 부채질을 하고 있다.


더 문제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대변동 이후의 아무런 복안이나 비전 없이 그냥 악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젊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념이나 진영을 두고 다투는 것에 완전히 지쳐 버렸고 또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문제의식마저 사라지진 않았고 정책이나 제도의 개혁을 통해 구조와 문화의 변동을 유도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고해져 있다.


정당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은 동원에 불과하며,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구조의 개혁이나 정책은 정치와 분리되어 그 일부로 전락해 있다.


내 일상과 인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그러한 삶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는 정치에 왜 국민이 관심을 가지겠는가?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국민에게 환멸을 느끼게 한 점에 문제가 있다.


이제 프레임과 이념 놀음에서 벗어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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