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생활의 보수로

개발ㆍ안보보수, 개혁보수를 넘어

by 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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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조경태 의원이 문재인 대표를 비판하다가 끝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으로 이적했을 때, 개인적으로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확고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보수 진영에 대한 경멸이나 확대 재정이나 복지국가 같은 것도 강하게 지지했었다. 어찌 되었건 문재인 대표를 감정적으로도 지지하던 때였기 때문에 조경태 의원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잊고 살다가 간혹 그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거나 계엄/탄핵 정국에서 당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정도의 소식을 들었다. 이재명 체제로 완벽하게 재편되고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조차 하지 못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에게 크게 실망했다. 또 무엇보다도 살면서 민주당의 진보적 인식이나 진보적 구상이 현실에 부딪히면 최종적으로는 민간에 있는 한 명의 개인에게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들도 보았다.
시간이 지나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기울어진 운동장’ 비유의 기득권 타파 프레임에 갇혀 있고,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는 이상일 뿐 사고가 너무 달라 현실적으로 어렵고,
지방분권은 자칫 지역 간 불균등을 심화하고 사민(徙民)정책이 될 수도 있으며,
로스쿨 제도는 사실상 음서제 비스무리하게 전락했고,
집은 사는(living) 곳’이라는 당위적 인식이 집은 자산을 겸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비합리적인 시장 규제로 나아갔으며,
재정건전성이나 시장의 자율을 무시하는 케인지안적 확장 정책으로는 경제를 지탱할 수 없고,
검찰의 정치적 요소를 없애겠다고 형사개혁의 본질이 되어야 하는 합리적인 형사사법체계 운용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무시하고,
내셔널리즘적 정서의 유화적 대북/대중 정책은 진영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신냉전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등의 여러 정책 영역에서의 인식과 생각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민주당과 민주당을 거드는 언론의 부적절한 프레이밍이 조경태 의원에게도 씌워졌다.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025년 11월 27일 본회의에서 재석 256인 중 255인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는데, 부산 사하구가 지역구인 조경태 의원은 이 표결에 불참했다. 그 법안의 가결에 대해 성과 홍보를 한 현수막을 조 의원과 국민의힘 측에서 게시했는데, 민주당 지역위원장과 부산 MBC가 조 의원의 표결 불참에 맹공격을 퍼부었다. 조경태 의원이 표결에 불참했으면서도 부산해양수도특별법 가결에 자기가 공이 있다는 것처럼 선전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부산 MBC 보도에서는 조경태 의원의 페이스북 해명 내용을 핵심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국회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배경은 설명하지 않은 채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라고 했다.

조경태 의원의 해명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그 법안은 본회의에서 반드시 가결될 법안이었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입법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해양수산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해양수도’ 문구 삭제 저지 등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절차에서는 본회의 표결은 그냥 형식적인 최종 확인 같은 것이고, 사전에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맥락도 있다. 물론 도의적으로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 관련 법안 표결에 불참한 것은 비판받는 게 맞다. 조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고의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내 통과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마음이 아쉽다. (특별법 표결까지) 대기시간이 길다고 보고 민원인을 만나고 온 사이 표결이 진행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자리를 지키지 않고 어차피 가결될 법안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민원인을 만난 과실은 문제가 있는 것도 맞다.

문제는 민주당과 부산MBC 보도는 그런 차원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마치 조 의원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성과로 포장한다는 듯한 뉘앙스로 공격하고 보도를 했다는 점이다.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조 의원은 상징적 자리에만 불참한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모든 노력을 다한 것이 맞아 보인다. 또 상식적으로 지역구 의원이 자기 지역구 관련 법안에 대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요즘 민주당은 이 사안에서 보듯이 감정적/상징적 레토릭만 가지고 과하게 공격한다. 구체적 사정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이런 짓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최근 조 의원은 계속해서 보수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아쉽게도 당내 소장파와 마찬가지로 ‘보수의 합리화’ 이상의 대안적 보수주의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명확히 ‘정당이나 정파보다는 국민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을 고평가하고 싶다. 이 말은 상식적인 것처럼 들리고 그냥 정치인이 형식적으로 하는 멘트처럼 들리지만 요즘 정치권 분위기로는 이런 말을 하기 쉽지 않다. 은근슬쩍 양당이 모두 당심을 본위로 거기에 민심을 일치시키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말은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국민을 거론하지만 정작 실제로는 당원과 당심과 상대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이 본질이 되어 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윤어게인 등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라. 장동혁 지도부는 가야 할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보수정당의 명운이 정말 끝장날 수도 있다.

내가 재평가하고 있는 인물에는 조경태 의원만이 아니라 검찰개혁 국면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으로서 소신을 지킨 권은희(1974-) 전 의원도 있다. 본래 그는 친안철수계로서 안철수 의원이 2016년에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 따라갔다가 결국 국민의힘과의 합당 국면에서 결별한 인물이다. 안철수 의원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에게도 호감이 없었는데 국민의당-국민의힘 합당 때 자기 의견을 지킨 것을 보고 무조건 안 의원을 따른 것만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후에 타의적으로 국민의힘에 소속된 셈이 되었는데 주류의 입장과 다른 의견을 지속적으로 냈다. 그러면 정치적 불이익이 따를 것이고 사실 국민의힘이 불리한 호남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라 해도 검찰개혁 관련해 지도부와 충돌한 것이 지역구에서 그렇게 메리트로 작용할지는 모르겠다. 권 전 의원은 최종적으로 국민의힘을 탈당했지만 그래도 그의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옮겨 간 이상민(1958-2025) 전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이상민 의원은 본래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커녕 오히려 처음부터 좋게 생각했었다. 특히 민주당에 있을 때 평등법 발의에 적극적으로 나서 동료 의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했던 점을 말하고 싶다. 또 친문 일변도로 흐르는 당의 흐름을 걱정하면서 비주류적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친명이 점령한 시기에 이르러 더는 견디지 못했다. 사실 이상민 전 의원의 탈당도 민주당의 근본적 수준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현재의 국민의힘에는 희망이 없다. 그런데 너무 꽉 들어차서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지조차 없고 나아가서 자기들끼리 선명도 경쟁을 하기에 이른 민주당보다는, 그래도 정말 진지하게 당의 명운을 걸고 혁신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른 국민의힘이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국민의힘에는 다른 무엇보다 조경태 의원이나 소장파 의원들처럼 자성의 목소리가 아직 유의미하게 있다. 양당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망가진 상황이다. 그래도 그러한 흐름에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제동을 걸 수 있는 목소리가 있는 당과 없는 당에는 천지 차이가 있다.

연초의 민주당 대선 경선을 보면서 민주당 비명계에 대한 마지막 이해도 완전히 접었다. 득표율이 너무 심각하게 처참한 것은 둘째치고, 이재명 후보에 대한 호의나 주류적 흐름에 대한 동의의 뉘앙스를 표하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반대는 아니고, 우리도 잘 되기를 바라는데, 조금 다른 생각도 있다.’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하는 현상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민주당 비명계는 세력을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재명 정부와 그때 가서 거리를 두려는 비겁한 자들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도 포퓰리즘에 상당히 크게 잠식된 건 사실이긴 한데, 장래를 생각하면 나라의 약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보수 진영 전체의 관점에서는 시대적/정치적으로 모두 무주공산이 된 보수의 정체성 자체를 재편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보수의 방향은 ‘안보와 성장’을 내세우는 종래의 보수나 ‘보수의 합리화’를 내세우는 신세대 보수를 넘어, ‘공감과 생활자를 위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켜야 하는 가치 중에는 본질적/상위 가치가 있고, 그보다 비본질적/하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살다 보면 경우에 따라 변화를 택하여 상위 가치를 위해서는 하위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한 경우들이 많이 있다. 상위 가치가 무엇이고 하위 가치가 무엇인지, 변화를 택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는 현실적 조건 등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숙고해 보아야 한다. 또 지켜야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실익(e.g. 민생 안정, 국가안보 등)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러한 신중, 숙고, 유연성, 현실감각, 판단력 등이 보수주의를 규정하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법치행정과 관료제는 중요하나 관료적 인습이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법치가 보장하는 유연성이 관료제의 경직성에 막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법치를 관료제보다 우선할 필요가 있다.

종래 보수주의의 차원은 안보와 경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도 타당하긴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사회문화적 차원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이 많다. 제도나 조직이 자신에게 맞지 않더라도 그에 순응해야 이익을 볼 수 있거나, 둘 다 원치 않는 선택지이지만 그래도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나은 경우나. 그런 어려움들을 경청하여 구조와 제도 차원에서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어려움을 안다고 하더라도 구조와 제도의 변경은 다차원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다시 공적 차원에서 결정할 때도 수지타산을 잘해 볼 필요가 있다. 종래 보수는 안보보수-개발보수였고 신세대 보수는 개혁보수를 말한다. 보수의 합리화 같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감과 생활의 보수’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예를 들어 현재의 대학입시전형이 고통스럽고 자신에게 맞지 않아도 아직은 대학 졸업장이 있는 게 메리트가 되었으면 되었지 디메리트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 또 그 결과로 합격한 대학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집안 사정을 의식해 차악으로 생각하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이는 현재의 대학입시전형에 대한 검토를 비롯한 근본적인 교육제도와 시스템의 재검토를 요한다. 또 전체적으로 가계경제 사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보장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물론 동시에 교육과정과 입시 등에 과도한 예측불가능성을 가져오면 안 되고, 또 사회보장 증진은 재정건전성에의 영향을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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