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는 글 느린 소가 천 리를 간다 를 읽고
-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른 누구보다 글쓴이인 유신욱 보좌관께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어느 그럴듯한 말도 경험보다 맞을 수는 없다. 현장에서 실제로 정치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본 사람과 그 밖 어딘가에서 자기의 삶만을 두고 분투하는 사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잘 모르고 떠들었다고 느끼셨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 나는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계속 ‘T’와 ‘F’가 교차한다. 한편으로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만 너무 상대를 무시하고 상처를 주거나,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는 걸까?’라고도 느낀다. 비평가나 학자 같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 생전 처음으로 캠프의 명예 직함까지 받고 임명장을 공유할 정도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인 아버지와 나는 매우 크게 충돌했다. 내가 제기한 의문과 비판에 대한 아버지의 답은 ‘그 사람이 그걸 모르고 그랬을까?’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논리 - 정치인은 경험과 지식이 있지만 국민은 그렇지 않으니 판단할 수 없다 - 를 편다고 하면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또 반대로 ‘그 사람이 그걸 알았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지?’라는 생각도 든다.
- 국민은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질문하고 해명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비롯해 공공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설명책임(Accountability)이 있다. 설령 내가 틀렸다 하더라도 나나 누군가는 거기에서 배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또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정책에 대해 반대하지만 개인 이재명에 대해서는 말할 생각이 없다. 이것은 그의 소위 ‘비리’ 관련 논란을 포함해서다. 그 부분은 별로 논의의 가치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담론장은 여전히 감정과 논리가 미묘하게 섞여 있다. 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여론이 빠르게 달아오르고 빠르게 식는다. 그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가능하면 여러 측면에서 생각하고 가급적이면 개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건 삼가는 것이 좋다.
- 개별 사건이 주는 충격ㆍ분노 등에 기초해 일괄적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좀 삼천포로 빠지자면, 최근 진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백래시가 그런 경우이다. 개별적인 사례와 별도로 일반적으로는 교사-학생은 권력적 위계 관계이다. 교권은 직무수행을 위한 권한의 성격이 강하고 학생인권은 보호되어야 할 권리의 성격이 강하다.
- 물론 아이들은 적정한 훈계도 필요하다. 예전에 강사로 있을 때 나는 어지간하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일찍 끝내달라,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이어폰 꽂고 하면 안 되냐 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계속 징징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시험기간인데 학교마다 교과서가 달라 일대일로 왔다갔다 하며 지도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참다 못해 '그러면 하지 마. 이게 지금 나 좋자고 공부하는거니?'라는 취지로 말했다.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 그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성실ㆍ겸손은 별도의 문제이다. 아무리 쉬워도 수업 시간만큼은 참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다른 아이들도 그 쉬운 것을 싫지만 하고 있었다. 더구나 중학교 영어 과목이어서, 어차피 수업 외엔 열심히 안 할 가능성이 높았고 또 국어나 영어는 과목 특성상 음악 같은 것을 들으면서 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나는 어지간하면 감정을 안 드러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엔 분명히 감정을 실어 지적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 그냥 조언하듯 말하면 너무 풀어주게 된다.
- 아동ㆍ청소년과 성인의 위계는 기본적으로 꽤 많은 성인들이 아이들의 말을 제대로 들을 생각을 안 한다는 데에서 부터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창완 가수의 말처럼 어른이 모르는 것을 아이가 먼저 알기도 한다. 아이의 '선한 미성숙함'이 어른의 '악한 성숙함'보다 오히려 귀담아들을 지점인 경우도 많다.
- 정치가 느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규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행정과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변화해야 하는 기업 사이의 어딘가에서, 정치는 양자를 통합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 또 정치는 본질적으로 국가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이고 특히나 현대민주정치는 기본적으로 분권 지향적이므로 필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 동시에 우리 시대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무엇이 가능한가’ 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가상자산은 미래에의 가능성을 규범적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대표적인 경우였다. 가상자산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에 갇혀 있는 사람들’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경제시스템의 운영 안정성이라는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프로젝트가 사실상 실패한 지금도 그것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현실의 탓을 할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타당하지 않다. 현대사회는 역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과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이다.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는 표현으로는 묘사가 안 되고, 아예 근본적으로 인식과 문법이 a, b, c부터 다른 사람들이 병존하고 있다. 이제는 좀 더 ‘공존’으로 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하나의 유효한 방편이 바로 글쓴이가 언급한 거버넌스일 것이다.
- 한편 이 책을 읽은 후 든 큰 생각 중엔 이미 오래 전에 정치는 맞지 않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을 확신한 것도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직전인 2월 28일에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대통령은 이를 승낙했다. 염동연 전 대통령 후보 정무특별보좌관은 문재인 민정수석, 강금실 법무부장관,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 정찬용 인사수석 등이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했는데 위기가 오면 모두 나가 싸워야 한다며 정치권과 당에 있는 사람들은 까마귀고 이들은 백로냐고 주장했다. 염 전 특보는 이어 대통령의 가는 길이 옳지 않으면 보따리를 싸고 나가든지 옳다면 대통령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총선에 나가야 한다며 그 힘은 안정의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 문재인은 그만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민정수석비서관직을 사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다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를 해야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치만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개인적인 인생관 같은 것도 있는 것이니까요.' 백로건 뭐건 간에, 개인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방법에는 꼭 총선 출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과연 정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 이런 것도 중요했다. 문재인이 본 국회는 '내가 몸 담을 공간은 아닌 곳'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변호사는 탄핵심판 피청구인 대리인단(변호인단) 간사,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 내가 감히 그분에 나를 비견하려는 건 아니지만, 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 꼭 악화된 건강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까지 정치에서 계속 거리를 두려고 했는지 아주 약간은 알 것도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간접적으로 생각한 것은, 어떤 식으로건 여의도와는 연관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여의도가 '지저분해서'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냥 나와는 맞지 않는 곳 같았다. 지역구 조기축구회에 인사를 가거나, 정해진 목표에 따라 여론전 전략을 짜거나, 국회의원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하는 일들은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든 생각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