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한국정치문화의 주요 개선 과제는 '서사 없는 정치'로의 전환이다.
다시 말해, 개인 서사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을 제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을 택할 때 개인 서사로서 '자수성가' 같은 것을 보는 경우가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자수성가가 과연 좋은 정치인으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너무 과하게 고생을 많이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관도 그만큼 극단적이 될 수 있다.
또 정치, 입법, 정책 등은 일반적/보편적 차원에서의 인식 하에서 - 적당히 고생하고 적당히 고생하지 않고 - 이해할 수 있는 식으로 이루어져야지 극단적인 경우를 겪은 사람이 그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너무 고생을 안 한 사람도 문제지만, 너무 고생을 극단적으로 많이 한 사람은 더 문제다.
미국의 폴 라이언(Paul Ryan) 전 하원의장은 자수성가한 사람인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확하게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준석 의원의 '능력주의'에 대한 관점과 비슷하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개인은 무엇이건 이루어낼 수 있다.
과연 그런가?
그건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또 정치는 그렇게 되지 못한 환경을 시정하는 데 역할을 하는 공감적이고 지지적 존재여야 한다.
자기 경험을 본위로 '내가 할 수 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건 어떤 맥락에서 발화되느냐에 따라 '힘내'가 될 수도 있고 '나약하긴'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경우는 미국식 보수주의/자유지상주의의 경우이고, 반대로 진보/좌파 진영의 정치인 중 자수성가한 이들은 기득권/저항자 프레임으로 재단한 뒤 이를 뒤엎어야 한다는 좌익포퓰리즘으로 가는 경우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