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에 이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
1. 지방행정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다
이재명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그래도 지방자치단체장 경험자로서 역대 민주당계 대통령들보다 실제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했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지미 카터나 빌 클린턴처럼 주지사를 지낸 대통령들이 있고 그들이 형편없는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재명을 그들에 비교했던 것은 잘못이었고, 또 그 지방행정 경험 자체가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단일제이지 미국처럼 연방제가 아니다.
미국은 고도로 분권화된 국가이기 때문에 주라는 것이 과장 좀 보태 하나의 나라와 비슷하다.
여러 이해와 신념과 영역 등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거대한 구조이고 장이다.
연방제 하의 주와 단일제 하의 지방은 천지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단일제 하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강한 통제력 안에 놓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대외적으로는 중앙정부보다 약하다고 하지만 대내적으로 보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크게 좌우된다.
지방자치는 생활 행정이고 상대적으로는 주민 수가 적기 때문에 주민들의 뜻을 최대한 직접 반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기도 하다.
더하여 이재명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냈던 성남은 기본적으로 재정적 기반이 다른 지역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민의를 직접 받들어 강한 추진력으로 체감하는 성과를 만드는 리더'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2. 더불어민주당과 대한민국은 성남이 아니다
문제는 (전국 단위 정치조직으로서)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대한민국은 성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일 때 지자체장으로서 쓰던 문법을 그대로 가져왔다.
민의=당원의 뜻, 리더를 중심으로 하는 강한 리더십, 실용=이슈 by 이슈 대응 중심, 그리고 공격적 복지와 팽창 재정.
설령 정당이 당원의 뜻에 따라 돌아가야 한다손 치더라도, 그걸 국가 차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심이 곧 민심인 게 아니니까.
더구나 이재명 체제 하의 민주당은 당원 결집과 대여 투쟁에 열중했지 국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윤석열 개인이 이명박-박근혜보다 최악이었을지는 몰라도, 반대로 구도상으로는 이명박-박근혜 때보다 국회 원내외로 민주당이 더 유리하다고 볼 여지도 많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윤석열 재임기가 무슨 전두환 재임기라도 된 양 행동했다.
민주당이 정말 비주류였을 때의 선배들도 그런 식으로 하진 않았다.
국가 차원 리더는 이슈 단위 대응이 아니라 전체 차원에서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단지 추진만이 아니라 대화와 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소위 '당원민주주의'의 본질과 해악
다시 당내 문제로 돌아와서, 나는 정확히 말해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이지만, 대의원제를 보스정치라고 비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당원들은 기본적으로 동원되는 강성들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당원투표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민주당 지도부가 그냥 형식적으로라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실시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부산 재보궐선거 무공천을 파기할 때나, 선거제도개혁을 뒤집어 엎으려고 들었을 때나.
대의원들은 경제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당에 깊이 관여해 온 사람들이다.
고위 당직이나 공천 등의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당원들의 뜻이 아니라 누가 더 고위 당직이나 국회의원 후보로서 합당하고 또한 무엇보다 제대로 이길 수 있느냐이다.
제22대 총선 때 민주당이 압승한 건 당원의 뜻을 잘 받들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너무 심각하게 못했기 때문에 국민이 이이제이를 한 것에 가깝다.
당원들이 민의를 잘 반영해서도 아니고, 이재명의 영도력 덕분에 이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당대표 방탄도 모자라서 그 방탄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비명횡사의 메커니즘은 중국 공산당이나 통합러시아의 지배 하에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천관리자들을 당대표가 임명하고, 친명계 의원들이 동료 평가에서 린치를 가하고, 당원들이 투표로 '처리'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예전에 보수정당에서 대통령이 고권적으로 당무에 개입하던 것보다 훨씬 더 지능적이고 어떤 면에선 더 사악하다.
적어도 민주성 측면에서는 시비를 걸 수 없는 메커니즘이니까.
하지만 당내의 기조나 당의 정무적 행보에 대한 성찰이나 정책 기조에 대한 숙의나 이런 것들은 전혀 없다.
종래에 참여민주주의가 지향해 온 것이 바로 이런 지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결국 더는 민주주의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닌 시점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개인의 영역, 다양성, 의견의 자유, 소수 보호 이런 것들을 보장하는 게 아닌 것이다.
게다가 중앙정치와 행정 차원의 민의라는 것은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며 또한 당심은 민심이 결코 될 수 없다.
중앙정치와 국가란 결국 어느 한 의지가 우선할 수 없는 다층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더욱 국회의원의 자유위임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정당이 마치 교회처럼 그냥 생활화되어서 드나드는 곳이라고 볼 수 없다.
아직도 당원이라고 하면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따로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10년대까지 진행되어 온 국민참여경선제에 관한 논의가 완전히 후퇴하고 당원 중심주의라는 퇴행적인 이데올로기가 양당을 지배하고 있다.
4. 계엄에 이은, 포퓰리즘이라는 정반대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의 위기
입당이라는 것은 여러 정치참여 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무엇보다 자발적인 것이다.
당원이 된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의사결정에서 더 큰 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가 크다.
특히나 대형/수권 정당의 경우, 당원 중심으로 가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에게 열린 정당이 아니라 자기들 진영의 논리만을 더 비이성적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위야 어찌 되었건 윤석열 정권이 끝장난 판국에, 범민주당계가 250석을 차지할 때까지 국민들이 그들을 봐줘야 하는 걸까?
그런 세상이 '양질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윤석열이나 그 이전의 보수 대통령/정당들과 정반대의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것은 권위주의보다 훨씬 비가시적이고 제어하기도 힘들다.
극우정당이냐 우리냐를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과연 민주주의 정당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일까?
다음 총선부터는 이 모든 후과에 대한 책임을 민주당이 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예전의 보수정당이 그런 존재였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당을 타도할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