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교와 국방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건 현실적으로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내정이다. 그래서 해외원조나 개발도상국 인권 문제 등에도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큰 관심은 없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서는 아니다. 난이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가계의 고용난이나 자산 형성의 어려움과 북한이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독재/인권 박해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다층적, 문화적 문제라는 점은 같다.
그런데 어차피 똑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고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조건을 인정한다면, 일단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동감은 하지만 솔직히 관심은 별로 없다. 국내에서 우리가 그나마 손을 댈 수 있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판국에 폐쇄되어 있거나 아예 우리 법권의 밖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있겠는가?
물론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 삶의 방식으로서의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중요하다. 그렇지만 보통 북한인권이나 세계적 차원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하는 쪽은 보수 진영인데, 그 사람들은 국내 인권문제에 대해 거의 퇴행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단지 기성세대 보수만 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개혁'보수니 '합리적' 보수니 하는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소수자나 장애인 등에 관한 통상적 인권 의제에 대해 이준석 의원은 그다지 노력한 적이 없다. 정체성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그건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인 데다 본래 인권이라는 건 소수와 비주류를 보호한다는 데 현실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의제에 관심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덜 위선적이다. 예를 들어 전장연 시위의 경우를 보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불편해하는 시민들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도 서울의 아침 지하철을 계속 탈 일이 많았는데, 아침엔 가뜩이나 피곤해서 날카로운데 사람도 많아서 서서 타야 한다. 그런 마당에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그런 데서 시위를 한다는 건 법치고 뭐고를 떠나서 불편하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의 문제의 취지도 이해한다. 누구나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도 같은 인간으로서 이동권을 보장 받아야 하고 이동권을 보장 받으려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가 보다 배리어 프리하게 완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준석 의원의 경우에는 배리어 프리와 이동권 보장이나 차별금지법 등에 관하여 '취지를 이해한다'라고는 말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에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말한다. 심지어 구체적으로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주문하거나 인권문제를 대북 레버리지로 써야 한다(도대체 어떤 인과나 메커니즘으로 북한인권이 레버리지가 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군사 행동의 촉매제라면 몰라도.)는 말도 했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부터 이준석 의원에 이르기까지, 보수 진영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 담론을 도통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자국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구체적/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공직자된 도리가 아닐까 싶다. 인권보장의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해선 별 생각도 없고 실현 방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엽적으로 시비를 거는 식으로 나온다면, 자기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민주당의 위선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무관심과 위선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차이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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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통일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게 헌법이 부여한 사명이기도 하고, 다른 무엇보다 어떤 형태로건 북한의 존재를 머리 맡에 두고는 안보 차원에서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통일을 할 수 있는 여지나 명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언제 어떻게 실현될지는 몰라도 하기는 해야 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북한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생각을 좀 해 봐야 될 것 같다. 우리가 북한을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히 없다. 예를 들어, 요즘 북한을 움직이는 데 있어 원조나 경제협력 같은 건 그다지 유인이 안 되는 것 같다. 체제 보장 조건부의 비핵화 노력도 잘 안 되었다. 인권문제를 들먹이는 건 북한의 역린을 건드는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구태여 군사 행동을 자극하는 행위를 우리 스스로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인권 문제도 비슷하게 접근한다. 평화통일이건 북한인권이건 간에, 대북정책 자체의 차원에서 우리가 실효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꼭 해야 하는 말이 아닌 한 구태여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떤 보수 진영의 기성세대 분이 '전쟁을 너무 두려워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는데, 속으로 경악을 했다. 당장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면,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부터 국민의 심리와 국가의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하물며 전쟁을 해도 된다고?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그런 표현을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에 한국전쟁을 성인 입장에서 겪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작은 땅 안에서 이렇게 볼륨이 높은 발전 수준을 가진 문명 하나를 완전히 결단을 내자고? 뭘 위해서?
우리가 북한과 전쟁을 한다는 건 영국이 이라크에 레짐 체인지를 위해 파병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김정은을 침략자라는 맥락에서 히틀러에 비유한다손 치더라도, 2차 대전 직전 영국의 정부수반이 처칠이었다고 해도 독일을 선제공격한다거나 이런 발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무장과 동맹 강화가 현실적 처방이었고 우리나라도 우리 국방을 다지고 한미동맹을 공고하게 지속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대외정책에 이념이 무관할 순 없지만 그건 최종적, 궁극적 목표 같은 것이고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등에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이념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7세기 병자호란의 참화를 당하기 전에 최명길은 '그러면 청에 적대를 한다고 치자. 구체적으로 우리의 전반적인 병력과 변경 상황 등의 현황을 감안할 때 청이 침공해 들어왔을 때 감당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 대비 전략 같은 것을 조정에서 충분히 논의를 하고 적대론을 말하는가?'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김상헌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맞서면 명이라고 그냥 있겠느냐.' 비슷한 취지로 말을 했다. 황당하고 소설에나 나올법한 발상이다. 당시에 명군은 점점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었는데. 물론 미국은 명이 아니고 북한은 청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요지는 그게 아니라는 건 알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쟁에 처하면 미국이 구원해주긴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우리의 전쟁은 모든 외국에게는 외국의 전쟁이다. 휴전이 이루어진 동기 자체가 미국이 더는 외국의 전쟁에 우리 장병의 생명과 자원을 쏟아붓지 못하겠다는 취지도 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십중팔구는 확전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중국 입장에선 북한이 없으면 순망치한 비슷하게 될 테니. 그런 모든 상황들을 우리가 진지하게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내게 전쟁을 너무 두려워한다고 말한 그 사람은 정말 이런 것들을 제대로 생각하고 말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