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환단고기’ 논란은 개별 발언 내지 사건만 보아서는 안 되고, 이제까지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 온 워딩의 문제가 결국 계속 터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나아가서는 이재명 통치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우선 기사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한 말의 취지는 환단고기를 사료로서의 문헌으로 볼 수 있다거나 환단고기의 ‘역사 인식’을 하나의 ‘역사관’으로 볼 수 있다는 것(본인이 그것을 옹호하는지와 별개로)을 전제한 것으로 읽혔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역사에 대한 관점은 약간 다른 문제라고 본다. 왜냐하면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역사 인식은 사실 내지 진실에 대한 앎의 문제고, 역사관은 어떤 인식을 바탕으로 한 해석과 분석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현상을 인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차원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최소한의 타당성이 없으면 그 인식은 그러한 관용의 한도를 벗어난다. 환단고기는 이미 벗어난 케이스이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역사관은 물론이고 역사 인식의 차원에서도 논의가 각하되어야 한다.
환단고기는 유물로서도 문헌으로서도 사료로서는 무가치하다.
굳이 사료로 쓴다면 그와 같은 ‘유사역사학의 역사에 대한 이해’라는 차원에서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에 환단고기와 같은 유사역사학에 제대로 대응을 하느냐고 묻고자 했더라도, 그것이 근본적으로 타당성이 완전히 기각된 사서라는 점을 분명히 표현하고 나아갔어야 했다.
재단 측의 설명대로, 증거가 없고 조리(條理)에 어긋나는 주장에 대해 동북아재단이 나서는 경우 환단고기 옹호자들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환단고기 질문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근본적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무 맥락에서나 자기 생각이나 자기가 아는 아무 미시적인 사실 하나를 던져놓고서는 모른다고 난리 치는 패턴이 보인다.
인천국제공항에 대해 질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아주 구체적인 외화 밀반출 수법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인천공항공사는 기본적으로 위해 물품 보안검색 위주로 담당하고, 외화 밀반출은 세관 업무 성격을 지닌다고 한다.
게다가 ‘말이 기시다’, ‘딴 데 가서 노시냐’ 이런 표현은 대통령으로서는 부적절한 언어적 표현이고, 불필요한 인신공격으로 볼 여지도 많다.
집중호우 때 오산 옹벽 붕괴 정도의 구체적인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장이건 대통령이건 간에 비슷한 맥락에서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장을 하는 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사회운동가를 합쳐놓은 정도의 느낌이랄까.
이 대통령은 ‘성과’와 ‘국민의 목소리’를 강조한다.
그런데 국정이란 기본적으로 일반 국민의 시각이나 현장 실무의 수준에 머무를 수 없고 거시적/제도적/구조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재명 대통령처럼 그냥 맥락 없이 아무 말이나 던져놓고서는 모른다고 질책하는 식이 된다.
또 국정은 단기 성과가 나지 않아도 장기적 목적을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성과관리는 합리적 행정의 중요한 지표이긴 하지만 무슨 지방자치단체처럼 성과주의를 앞세우는 건 위험하다.
국민의 입장에서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중요한 역량이다.
하지만 다시 지도자나 행정가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보면, 국민 개인의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는 없다.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시민운동가 출신 자수성가 정치인이었고 반(反)관료주의를 강하게 내세웠다.
‘운동권처럼 국정을 한다’라는 평가가 나왔고 민주당은 어차피 현실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관료제에 대해 각을 세우다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그와 일본 민주당은 ‘정치 주도 행정’이라는 기치 아래 관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무직 공무원 위주로 정책결정을 주도하려는 국정운영 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재명은 관료주의에 대한 거부는 있어도 정치인 주도의 메커니즘이나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시스템 개편은 딱히 없고 그냥 성남시장을 할 때처럼 대통령이 민의를 내세워 강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대한민국은 정부수반의 왕국이 아니다.
이미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편인 통치구조 안에서, 이를 1차적으로 견제하게 되는 국회가 압도적 다수 여당의 손 안에 있는데 그 다수 여당은 직전까지 현직 대통령이 철저하게 장악해 획일화되어 있다.
관료, 검찰, 법원, 언론 등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계속 압박하니 사실상 현재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견제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 치하에서는 대통령과 대통령실 주도가 강하지만, 이는 문제가 크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통치구조는 이미 대통령의 권한이 크고, 정치문화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통령의 권위가 고권적으로 강하다.
그런 상황에서 여당도 대통령이 완벽하게 장악했는데 그 여당이 국회의 압도적 과반이면 보수정권 때의 청와대의 고권적 주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리고 어쩌면 더 심하게 민주적 국정운영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취임 반년이 지나서도 정부나 여당 내부에서의 이견 허용과 피드백 수용, 국정의 맥락과 리더십의 비전 차원 이니셔티브 등이 보이지 않는다.
즉 자기 제약조차 없는 상황이니 운영 체계 개편은 더욱 난망하다.
한편, 이재명 정부에서 활성화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은 좋고 없는 것보다는 낫긴 하지만, 어차피 국민은 모든 것을 온전히 결정할 수 없고 국민이 목소리를 낸 모든 의제나 문제가 주목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정권은 특히나 국민주권을 그토록 강조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한 본질은 종래의 참여 이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 한계를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국민주권, 직접민주주의 이런 레토릭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실제로는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민의’를 해석하고 대리하는 권력이 커지는 직접호소형(Plebiscitary) 통치가 될 공산이 크고 지금 이재명이 하는 통치의 본질이 이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이전의 노무현이 제시한 참여민주주의의 위험한 왜곡 형태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대의제 하에서 시민이 정책결정에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대의의 정당성과 정책의 품질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재명은 그 이상을 할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민의가 1인의 독주의 명분으로 전락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마치 민주정이 중우정이나 참주정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막스 베버도 ‘대중의 선택은 지도자에게 정당성을 주지만 대중에게 실질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했고, 몽테스키외는 ‘국민은 국사를 직접 처리할 능력은 없지만, 그러한 능력을 가진 자를 선출할 능력은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제 민주주의도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재명은 이전에는 ‘당원민주주의’를 말하고 지금은 국민주권을 말한다.
그 ‘당원민주주의’는 국민주권과 상충한다.
왜냐하면 현대정치에서 대형 정당들은 사실상 정치적 충원과 국민의 정치적 의사 집약을 과점하여 이미 권력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데, 우리 정치문화상 당원은 동원되는 정치 고관여층이다.
그러니 당원의 의사는 국민의 의사로 직결되지 않고, 대형정당이 당원의 의사를 국민의 의사보다 앞세우는 경우 결국 국민주권과는 상충하는 귀결이 된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정치의 본질은 ‘직접호소형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 세력이나 전문가(언론, 법원 등), 관료 등을 모두 기득권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불신하고, 민의를 강조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 민의를 앞세워 강한 리더십으로 밀어붙인다.
이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이재명은 사실 상당히 비슷한 편이다.
이념적 방향이 완전히 반대라서 그렇지.
치사한 ‘퀴즈형 질문’을 ‘대통령의 (시원한?) 송곳 지적’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결국에는 전 정권에서 임명한 공기업 사장이나 행정관료들에 대한 근본적 불신과 자신이 국민의 입장에서 말한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통령은 타운홀미팅에 나온 국민이 아니고, 제한된 구성원 규모에 권력이 집중된 지방자치단체장도 아니다.
국정에는 비전, 원리, 이념이 없을 수 없다.
아니, 없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소위 ‘현장형 질문’이라는 건 언뜻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개선보다 그냥 자기편을 제외하고 모두를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대통령 1인에 의한 드라이브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