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폐지는 개혁이 아니다

by 남재준

서울시교육청, 2040년 수능 폐지 공식 제안… 2028·2033 단계별 대입 개편안 발표 < 서울 < 전국 < 기사본문 - 교육플러스


나는 특목고 출신이지만, 정시로 대학을 갔다. 학교에 적응이 극도로 힘들었고 결국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도 사진은커녕 하루빨리 교정을 떠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었다 - 정확히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시에 내가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은 이미 다시는 고칠 수 없게 된 학생부가 아니라 정시 밖에는 남지 않았다. 세상에는 나 같은 경우의 수가 많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은 어떤 식으로건 대학입시로 귀결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와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특목고가 우후죽순 설치된 결과, 상위권을 제외하고 특목고 중하위권은 차라리 일반고를 가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었다.


일반고를 갔으면 내신이 더 좋았을 거고 학생부교과를 지원했을 텐데, 라는 다소 오만한 생각 때문은 아니다. 일반고를 갔다면 자기 현실을 좀 더 빨리 정확하게 알았을 것이고, 정시 대비도 특목고에서 보다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더 안배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교육 생태계는 살아남는 자와 살아남지 못하는 자를 양산한다. 교육개혁이라는 건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시작되어야 한다. 학생부는 한 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못한다. 학생부 중심 전형 즉 수시를 확대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재도전이나 뒤늦은 도전 등은 모두 길이 막히게 된다.


물론 나는 현행 수능을 경멸한다.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판이다. 이미 탐구 영역은 비중이 국어, 수학보다 작은 상황이었는데 이제 2028 수능부터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 재편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통합사회, 통합과학은 없는 게 나은 과목들이다. 말만 통합이지 실상은 이도 저도 아닌 맹탕이다.


그렇지만 만약 현행 시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 없다고 해도, 정시는 최소 40% 이상의 선발 비율이 유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되돌릴 수 없는 학생부가 아닌 기회라는 것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게 더 소중한 기회이다.


또한 이러한 문화와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건 학생부를 보는 대입은 결국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전공적합성도 아니고 그냥 일반적으로 두루 '모범생'이었는지 같은 것을 평가하는 모호한 전형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현재의 수시가 대강 그러한 것처럼.


경쟁을 줄이고 학생의 창의성과 통합적 사고력 등을 기르는 교육으로 바꾼다는 것은 그럴듯한 말이지만 어떤 구체적인 메커니즘으로 실현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바꾸지 않는 것만 못한 귀결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건 뒤늦은 도전, 재도전,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어떻게 최대한 포괄적으로 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육에서 입시는 원칙적으로는 성긴 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재란 다양하고 그것을 포착하는 시험은 본질적으로 조작적 정의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설령 시험에서 잘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선발된 뒤에 학업 수행을 잘할지는 아무리 타당성이 높은 시험 도구라 하더라도 모를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가능한 한 많은 인재가 최소한 이 나라에서 자기 자리가 없다는 걸 절감하지만 않도록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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