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이념과 정책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

by 남재준

최근의 혼탁한 한국정치에서 그나마 가장 가깝다고 한다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인 것 같긴 한데, 철학에서건 정책에서건 의문스러운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장혜영 전 의원과의 토론을 보면, 한 전 대표에게는 '안 된다'와 '민주노총과 민주당은 한 편이 아니냐' 등의 대안 없는 반대 및 프레임 전쟁 외에 더 성숙한 거국적 담론이 없었다.


‘민주당에 맞선 정의로운 법무부장관’, '계엄을 막아낸 보수 정치인' 이런 서사는 집어치우고, 그가 2025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낸 공약들이나 그의 ‘보수’관(觀)을 가지고 내가 느꼈던 그의 문제들을 좀 살펴보았다.


1. 보수 = 자유민주주의 + 법치주의 (?) 언제부터?


보수의 핵심 가치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라는 게 어떤 근거로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국정농단이나 계엄까지 가지 않아도, 2010년대까지도 보수 정당과 정권은 민간인 사찰과 퇴행적 인권 의식 등 인권보장에 크게 미진하다는 말이 많았다. 경제적 자유주의만 가지고는 자유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전통 중 어떤 부분에서 자유주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법치주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민주당계와 보수정당은 모두 검찰이나 법원을 압박하거나 이용하려는 모습들이 많았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보수정당이 Rule of Law와 Rule by Law의 경계를 위험하게 줄타기하는 모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반공주의를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한다고 해도, 그건 자유민주주의의 수단적 가치는 될 수 있어도 목적적 가치는 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오직 보수정당 그 자신에 관한 문제이므로, 민주당계의 잘못에 관한 핑계를 댈 수 없다.


2. 보수의 사회적 책임이 ‘강강약약’? 정치인 한동훈의 어떤 정책이?


보수의 사회적 책임을 강강약약이라고 정의하는데, 한동훈의 공약 중 약자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은 나름 알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 강자에게 강하다고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또 복지를 부분적으로 좀 키운다고 해서 약자에게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3. 87년 체제에서 ‘한동훈 버전 개헌’의 방향에 관한 단적인 생각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을 덜어내는 것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분권을 하자는 것(e.g. 국무총리 내정 + 대통령 외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우리 정치문화상 임명 절차나 책임 소재 등의 차원에서 더 꼬이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의원내각제를 하든지 아니면 대통령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고치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


양원제는 비효율적이다. 우리나라가 연방제도 아닌데 대표성 측면에서 양원제를 둔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가뜩이나 국회에 한편으로 필요한 입법은 적체되고 다른 한편으로 과다 입법으로 품질 관리가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입법영향평가제도 강화 등을 통해 입법 절차를 합리화하고 정치문화를 개선하는 게 맞다.


비례대표제 폐지는 안 된다.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의 특정 그것도 왜곡된 유형이 문제가 된 것으로서 오히려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몰각시켰다. 비례대표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양당 특히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전부 지역구로만 두는 경우 사회적 약자나 전문가 등은 국회에 진출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지역구 의원은 통상 지역구 관리와 중앙정치/입법을 병행해야 하는데, 이는 단일제 하에서의 불완전한 지방자치와 재선을 위한 정치적 필연성이 겹친 것이다. 기왕에 지방자치를 했으면 중앙과 지방의 사무를 깔끔하게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의 이해에 갇힐 수도 있고, 공천 과정에서 지금도 중상층 이상과 현역 등이 압도적으로 유리한데 이러한 현상을 계속 심화시키는 것밖에는 되지 않으며 포퓰리즘을 심화할 수도 있다.


4. 중산층 성장은 좋지만...


‘중산층 성장’이라는 정책목표는 좋은데, 감세와 복지를 동시에 가져가면 재정건전성에 타격이 간다.


중산층이 성장하려면 고용 창출을 증가시켜 소득이 커지고 저축이 축적되어 자산 형성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입장에서는 소비의 부담을 낮추면서 저축의 유인을 증가시키고 동시에 자산 특히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증가한다기보다도,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고용 창출과 임금 제고에 투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을 생각할 수 있다. 경제성장 자체는 이제 기업과 시장의 몫이다.


소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면 고정지출이 되는 공과금이나 임대료 등 생활비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또 일-가정 양립 지원 등을 위해 공보육 확대 등을 도모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 노동력의 투입 제고를 통해 실질 성장률을 잠재성장률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고령사회이므로 연금 등과 관련해서 정년 연장이나 수령액 조정 등이 불가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 노인부양비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양질의 고용을 많이 창출할수록 청년, 장년 취약 계층에게 도움이 되고 청년과 중년 중 중하층 정도에 속하는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보육 등 일-가정 양립 지원이 도움이 될 것이다. 출산에 대한 부담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변동지출의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한계소비성향이 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복지를 시행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서민감세라는 건 없다. 1997-2010 영국 노동당 내각에서 소득세율 최하위 10% 세율 구간을 폐지하고 기본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추면서 각종 세액공제 등을 통해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려고 했었다. 세제 단순화와 노동 유인 제고가 정책목표였다. 하지만 어차피 과표 맨 아래의 사람들은 무과세거나 저율이므로 별 의미 없었다. 또 과세표준이 종래 10% 적용 구간 내에서 위쪽이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과세 부담이 커졌다. 상쇄 수단인 세액공제는 정보를 알아야 하고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일반시민 입장에선 불편했다. 그리고 타겟팅된 공제였으므로 아동부양가정이나 연금생활자 등은 이익을 봤지만 무자녀가정 등은 손해를 보게 되었다.


5. 산업과 과학기술 – 이재명이나 한동훈이나


AI 산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합당하다. 이 산업은 소수의 고숙련 노동자가 더 유리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AI에만 지원하기보다는 녹색산업, 사회서비스 등 분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편이 유리하다. 고용 있는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의 명확한 분리와 직업교육의 위상 강화를 위해 특히 직업교육 출신자 고용 유인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전공 미스매칭 문제가 최소 일정 부분은 장기적으로라도 그냥 무조건 대학으로 가는 인원이 직업교육으로 빠지면서 경쟁이 분산되는 효과를 통해 완화될 수 있다. 교육개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어느 영역이건 레드 오션에서 인원을 떼어내고 블루 오션에 인원을 더 투입하면서 ‘경쟁의 분산’을 어떻게 유도할 것이냐에 있다고 본다.


미래전략부는 사실상 옥상옥이나 매한가지다. 이전의 지식경제부나 미래창조과학부 등도 그렇지만 굳이 기능도 모호한 부처를 신설할 필요는 없다. 종래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능을 강화하고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또 이 부처는 단지 경제성장 변수로서의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과학기술 / 시민의 과학기술 이해도 제고 / 기후변화 대응 등에도 협력과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6. 그 외 복지, 교육, 조세, 행정(정부조직) 등 각종 정책에 관하여


- 규제 제로 특구 즉 전략산업 관련 규제개혁은 타당하다고 본다.


- 상환 방학 제도나 학자금 대출 상환의무 소득 기준 상향, 공공기관 인턴 확대 등 실무교육-취업 연계 강화 등은 타당해 보인다.


- 한평생 복지계좌, 가족돌봄보험, 건강저축제 등도 타당해 보인다. 개인별 사회보장 계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일리가 있다. 그게 되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도 더 실질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 에너지 인프라 투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해 불확실한 에너지 보조금 삭감을 통해 전기요금 부담 완화 재원 마련, 스마트농업 유도 등도 타당하다.


- 단순히 과학고와 영재학교를 늘리기보다는, 그들이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인을 더 확실하게 제공하는 데 투자를 증가시키는 편이 낫다.


- 부양가족 기본공제 제도는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조세지출이다. 비용-편익 차원에서 그게 얼마나 유의미할지 약간 의구심이 든다.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그 ‘부양’에 드는 여러 구조적, 환경적 요소들을 개선하는데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것이 큰 틀에서 더 낫지 않은가 싶다.


- 미래전략부와 마찬가지로 사회보장부를 신설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사회복지부로 분리하고, 교육부장관 대신 사회복지부장관에게 (사회)부총리를 겸하게 하든지 하는 게 타당하다.


- 상속세의 불합리한 점을 개편하는 것은 타당하긴 한데, 이미 상속세 자체가 고액 상속자들이 더 납부하도록 하는 체계로 되어 있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세수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맥락 – 세수가 감소하는 방향은 쉽게 결정하기 곤란하다 - 에 대해서는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물론 투자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세제 혜택은 필요하다.


- 해외주식보다는 국내주식에 대해 투자할 동기를 더 늘리는 게 필요하다. 어차피 지난 한미 관세 협상 결과 때문에 앞으로 대미 투자가 증가할 텐데 그러면 국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 심화가 우려된다. 일본에서는 미국 관세 영향을 받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최대 3년 간 공제 이월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 종합부동산세 폐지는 불가하다. 재정건전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진 자가 덜 내게 하자는 건 어렵다. 오히려 세수 확보를 위해 중산층 이상의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현실적으로 중산층 성장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건 그만큼 현재 중산층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에서 세수 확보 전략이나 구조개혁 방안도 없이 그냥 지원을 쏟아붓겠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 나는 응능(Ability to Pay)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고액 상속도, 다주택 소유도, 부동산을 자산으로 활용한 투자도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과세는 불가피하다. 과세의 본위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는 애초에 정의(正義)나 시비를 따져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납세를 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고, 세목 중에 납세의무자가 ‘잘못해서’ 과세 항목이 되는 경우가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나라에 상층의 사회문화적 책임 요구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본다. 오히려 그들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에 가깝다. 상층에 사회문화적 책임을 강요하진 않아야겠지만, 최소한 과세만큼은 더 부담하는 게 불가피하다. 이건 보수나 진보와는 무관한 문제이다.


- 현행 일본의 과세 체계에서는 연간 소득이 1억 엔(약 9억 4,000만 원)까지는 소득세 부담 비율이 늘고 1억 엔을 넘어서면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소득세 부담 비율은 소득에 비례해 감소하다가 연간 소득이 30억 엔(약 283억 원) 선이 되면 다시 늘어난다. 다카이치 사나에(자민당) 내각은 부담률이 반등하는 기준을 6억 엔(약 57억 원) 정도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간 소득이 6억 엔을 넘는 초부유층의 세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일명 ‘1억 엔의 벽’이라 불리는 이러한 구조를 바꿔 더 많은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걷겠다는 의도다. 당정은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에 이 같은 방침을 담고 2027년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초부유층이 추가로 낸 세금은 휘발유세 인하로 부족해진 재원을 메우는 데 활용할 계획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H1OUUBFAH)


- 외국인 투기성 거래를 차단한다고 하는데, 이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주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나라를 겨냥한 건지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특정국을 상대로 이런 정책을 펼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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