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을 자유'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by 남재준

2021년 서울시장 보선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가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 기사를 보고 그런 생각이 났다.

물론 이 소식은 일단은 단지 개혁영국이라는 나이젤 패라지의 극우정당이 지방의회를 장악하면서 의사당의 무지개기와 우크라이나기를 내리도록 했다는 것 뿐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지방자치입법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을 후퇴시킨 데에까진 이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은 정체성과 이미지의 문제이고, 일단 힘겹게 쌓은 제도적 노력도 그것들을 서서히 침식시켜가는 방식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미디어에 성소수자의 노출을 금지한 것과도 상통한다고 본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장래에 대한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

관용이 유의미해지는 것은 보기 껄끄럽거나 불편한 것을 내버려두는 지점에서부터이다.

거북하지 않은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관용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원리는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고 관용하려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축제를 해도 되지만 보지 않을 시민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당시에 안 후보는 말했고, 후에 오세훈 시장 체제에서는 사실상 아예 금지당했다.

소수자는 권력에서 열세임을 주요 특징 중 하나로 하고 이 열세의 근원은 사회적으로 정상이라 여겨지는 것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이를 일탈로 규정하고 통제하려 하는데 그렇기에 의도적 노력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퀴어축제의 허용은 성소수자를 위한 공동체적 케어, 차별규제, 혼인평등 등 제도적 기반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기반의 마련으로 나아가는 인식의 개선을 도모하는 의도적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서울이나 대구는 넓디 넓다.

보고 싶지 않다면 그 얼마간은 다른 공간에 있을 수 있다.

그걸 공적으로 원천적으로 막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안철수 당시 후보의 주장이 비자유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반인권적인 이유이다.

개혁영국의 무지개기 내리기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기를 올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올려진 기를 내린다는 건 상징적 메시지가 크다.

자칫 공공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문화적 폭력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무엇보다 권리의 연대를 거부한다는 점이 크다.

헝가리의 오르반이 취한 조치도 그렇다.

청소년은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헤아리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사회적 폭력이나 환경의 불안정 등의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어른이나 국가는 잘 보듬고 내버려 두어야 맞다.

아이의 궁극적 복리가 우선이지, 단적으로 아이가 이상해졌다 하며 정상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전환치료 등을 강행하며 폭력을 가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 아이들은 성소수자에 대해 아직도 다소 쉽게 비하하며 소수자인 아이들에게는 학교라는 환경이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라기 보다 두려움의 공간이다.

이러한 한국 성소수자 청소년 문제는 2019-2021 휴먼라이츠워치와 예일대학교 로스쿨 앨러드 K. 로웬스타인 국제인권클리닉(Allard K. Lowenstein International Human Rights Clinic)의 공동연구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보지 않을 자유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쉽게 지켜지는 것이나, 성소수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폭력적으로 억압당하지 않을 제반 자유는 관용과 제도적 지지 등이 없으면 보장되지 못한다.

이를 헤아려 보다 열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과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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