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엄성&자유의 시각에서의 일본근대사의 성찰

리버럴적 시각에서

by 남재준

나는 일본을 매우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던(싫어했다기 보다는 관심이 크게 없었다) 것 같은데, 성인이 된 후에 가장 호감을 느끼는 나라 중 최상위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전히 문화나 정책의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에게서 배울 것이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개인 사상의 측면에서는 비서구 국가 중에 일본만이 제일 자국 문화에 맞게 자유주의 사상을 독자적으로 잘 수용한 경우라고도 본다. 일본에서의 자유주의 사상/정치의 흐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온 이유이다.


또 나는 한국내셔널리스트도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고, 집단주의/전체주의/제국주의/군국주의/내셔널리즘 등 집단, 공동체, 국가, 민족 등의 명분으로 국가가 국가에게, 국가/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모든 폭력을 배격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일본이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외면하거나 의도적으로 망각하려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싶다.


1. 근대화의 명과 암을 정확히 봐야


일본은 비(非)서구 국가 중 제대로 근대화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오늘날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질의 사회와 경제를 이룩한 것도 더 오래 시행착오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역사를 평가할 때에는 명과 암을 균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인간과 사회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인간이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성찰하고 반성하는 능력이다.


이런 견지에서 근대화의 명과 암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식민지화는 단지 근대화의 산물만은 아니고, 오히려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특수한 개별적 인식과 사상에서도 비롯되는 것이었다.


사회진화론적 관점을 극도로 가져가 우위의 민족이 열위의 민족을 지배하고 교화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거나, 제국주의의 전제에 있는 근대화로 인해 팽창하는 공급을 감당할 시장의 확보 등은 식민화의 일반적 이유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근대화의 창발지인 서구 열강들보다 후발 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인종/민족 차별의 대상이 되는 아시아 민족/국가였다. 한국의 식민화는 근대화의 확산과 서구 본위로 재편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국가적 자존심을 높이는 중요한 기제의 하나였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한국이 천 년 이상 독립된 견고한 국가였다는 점을 모를 수 없었고, 그렇기에 단순히 일본 정부의 직할령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를 천황 직속으로 두었다. 한일병합조약의 취지는 한국의 주권자인 대한제국 황제가 일본의 주권자인 대일본제국 천황에게 통치권을 양도하는 것이니까, 병합된 한국은 기본적으로 천황의 통치 하에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 중앙정부가 직접 통치하기에는 문화적 이질성과 정치적 부담 등이 컸기 때문에 일본 중앙정부에서는 기본적으로 개입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그 후에 전후에 적어도 군국주의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던 대개의 일본 정치인들은 조선 문제에 그다지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큰 책임 의식도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는 특수한 구역의 통치를 외주 받은 조선총독은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조선의 통치권을 지니게 되었다. 이건 다시 말하면 한국인들의 관점에서는 총독이 통치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국인들은 수천 년 간 외세의 침공에 대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고 독립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화 과정을 그냥 앉아서 지켜보지 않았다. 주권자인 황제가 통치권을 갖다 바쳤으니 이제 한국인들은 제국 치하 신민조차 아니고 아예 열등한 2등 시민으로서 정치사회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박탈 당한 것이었다.


그런 한국에 대해 식민통치 초기에 일본은 강하게 억눌러야 그런 저항 의식을 주저앉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초기 10년 간 군인 출신 총독들과 무단통치가 계속된 것은 이러한 데에 연유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일본의 식민화 과정과 식민통치는 한국에게 엄청난 집단적 트라우마를 안겼고 이미 타오르던 한국인의 내셔널리즘에 거의 기름을 들이 부었다. 압도적 대다수의 한국인이 독립운동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40여 년을 숨죽여 살았는데, 세뇌건 실제건 일본의 식민통치가 이익을 주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이미 광복된 지 80년인 지금까지도 아주 미묘하게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나 경쟁 의식이 남아 있다거나 하는 것도 이상하다.


국어에의 일본어 영향의 잔재 등 불가피하게 스며든 문화 요소들이 많긴 했지만, 당대나 현재나 한국인들은 결국 일본의 통치를 긍정적으로 기억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현 세대까지도 반일 감정이 미묘하게 남아 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결론적으로 반일 감정은 한국이 만들어 냈다기 보다, 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한국에 우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일본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


근대화와 식민범죄는 별개로 보는 게 맞다. 인간과 사회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다. 식민범죄를 제외하고 근대화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인들에게 만큼은 아니어도 일본 자국민들에게 가한 폭력도 적지 않다. 모든 역사는 명과 암을 균형적으로 보아야 한다.


강자는 힘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일본은 비서구 국가 중 가장 성공한 나라지만 그만큼 어둠도 컸다. 서구 국가들도 자신들의 식민 통치나 오리엔탈리즘 등에 대해 아직도 온전히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일본이나 서구나 이 지점에서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2. 배상과 사죄가 본질이 아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고 무엇보다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통해 모든 처리가 끝났는데도 한국이 왜 계속 일본을 죄인 취급하는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한국이 배상과 (직접적) 사죄를 요구하는 게 핵심은 아닌 듯 하다. 일본이 '공기'를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한국이 원하는 것은 배상이나 직접적으로 납작 엎드리는 게 아니라 그 시대에 일본이 잘못한 점을 진솔하게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 처리되었다는 말을 가해자 측에서 하게 되면 그 의사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돈으로 떼우려고 한 게 아니냐). 한국의 어느 정부도 일본과 단교하겠다거나 역사 문제를 빌미로 일본에게 구체적인 압박 행위를 하겠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일본이 역사 문제를 빌미 삼아 아베 내각 때 금수 조치 등을 취했다.


3. 사죄=자학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시작해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잘못한 것을 진심으로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죄책을 자꾸 외면하고 왜곡하는 건 자존심만 높고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내셔널리즘의 배후에 있는 중요한 정서이자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내셔널리스트들의 역사관은 너무 피상적이고 무엇보다 자존감이 낮아 보인다. 과거의 일본제국도 어떻게 보면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만 높은 국가였던 것 같다. 자존감이 강한 나라는 자국의 역사에 대한 명암을 명확히 보고, 미래를 보다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사죄 피로감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일본 자신이 다른 의미에서 자학을 한 거지 한국 등이 이해해 주어야 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일본 등과의 관계에 있어 우리나라의 민주당계 정권이 더 내셔널리즘적이라고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맞는 말 같은데, 일본의 경우에는 좀 틀린 말 같다.


물론 참여정부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이 돋보인 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일본이 본격적으로 사죄 피로감을 기반으로 사죄=자학 등의 프레임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아직 광복으로부터 40년에서 50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독도 문제는 사죄 등과는 별도로 생각하는 게 맞고.


김대중 정부에서 일본문화 해금을 적극적으로 단행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방일해서 일본 국민과의 대화를 하거나 일본 중의원에서 연설도 했다. 민주당계 정부는 일본에 대해서 딱히 내셔널리즘을 강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사죄 피로감은 일본 자신이 만들어 낸 것으로써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콤플렉스에 불과하고 한국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아마 버블 경제와 잃어버린 10년에 들어서면서 회복되었던 자존감과 자존심이 많이 떨어져서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4.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 일본국과 일본국민에게 있어 좋은가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식민통치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근대화의 성과와 제국주의/군국주의라는 한계를 동시에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인들이 경제발전/산업화의 성과와 군사독재/인권 박해와 탄압/월남전에서의 폭력/집단주의와 내셔널리즘의 폐해 등 가해자가 된 피해자 등이라는 한계를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집단은 개인이나 다른 집단에게 폭력을 행사할 잠재성을 항상 지니고 있고, 실제로 그런 폭력이 행해진 경우는 매우 많았다.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의 잘못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 집단은 자기의 구성원에 대해서나 타 집단에 대해서나 진정으로 우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같은 폭력을 다시 행사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가해자 트라우마는 오히려 자기 공동체의 문제를 직시할 때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만 보면 일본은 미성숙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맨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는 한국내셔널리스트가 아니지만 오히려 보편적 인권과 자유주의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이 죄책을 온전히 털어내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스스로 그것을 직면하는 게 제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아마 일본 내에서도 소수는 공유하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고 이 점에 기초해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진정으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나 일본군의 부활 등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본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소수의 입장이고 그런 현실이 지속되는 한 해당 구상들은 불가하거나 하더라도 외교관계를 악화시키는 첩경이 될 것이다.


보론) 하토야마 가문의 '우애(友愛, Fraternity)' 사상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관한 생각


하토야마 이치로(1883-1959)는 요시다 시게루와 더불어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을 창당한 주역이다. 그리고 그 손자인 하토야마 유키오(1947-)는 그 자민당 독주 체제를 단일 정당으로서 최초로 완전히 뒤집은 민주당(1998-2016) 대표로서 2009년 총선의 주역이었다.


조부와 손자를 잇는 공통적인 사상적 줄기는 '우애' 사상이다. 다른 말로 박애(博愛)라고도 한다. 이 말은 프랑스의 표어인 '자유, 평등, 박(우)애'의 그것이다. 자유와 평등과는 달리 박애는 법적 권리의 차원으로까지 승화하지는 않았어서 그 위상이 좀 독특해 보인다.


하토야마 이치로 버전의 우애 사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귀족 출신 사상가, 언론인, 정치인인 리처드 폰 쿠덴호페-칼레르기(Richard von Coudenhove-Kalergi, 1894-1972)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쿠덴호페-칼레르기는 1920년대부터 유럽통합론을 제기했으며 후에 실제로 전후 유럽연합으로 가는 가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쿠덴호페-칼레르기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보면, 그가 민족통합사상을 구상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고 쑥대밭이 되고 피난 살이를 해야 하고 했으니 인류문명 특히 유럽문명의 근본적 평화와 번영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을 것이다. 또 실제 2차 대전 종전 후 본격 가동된 유럽통합 기획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는 냉전 체제와 탈식민화 속에서 유럽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길이기도 했다.


그런데 쿠덴호페-칼레르기의 구상에는 세계를 5대 권역으로 나누고 그 각 권역 안에서 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이 있었다. 유럽통합의 확장판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아시아의 경우 이는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범아시아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두 국가를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말 같지 않은 헛소리로 들릴 주장이다. 아시아는 유럽보다도 훨씬 더 국가 간 문화적, 역사적, 민족적 경계 등이 분명하다. 그러니 쿠덴호페-칼레르기의 주장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유럽 귀족의 낭만적 헛소리로 들릴 것이고 심지어는 자민족-자국을 무시하는 오만한 서양인으로 생각될 여지도 있다.


쿠덴호페-칼레르기는 아버지가 일본 주재 오스트리아 외교관이었고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후에 하토야마 이치로가 그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방일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서구인이었고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오리엔탈리스트에 불과해 보이는 면도 있다.


게다가 유럽통합 기획 자체에 대해서도 유럽연합이 고도화된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회의적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 유럽 각국은 공유한 문화 요소가 많은 만큼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과 국민적 정서 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예전에도 언급했었지만, 나는 나라가 너무 큰 게 그다지 좋지 않다고 본다. 나라가 강대해야 자국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현실주의 국제관계론의 시각은 국제관계학에서나 통할 논리고, 개인적으로는 나라가 커질수록 어떤 식으로건 개인이 경시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국가의 대소와 독재/집단주의 등은 인과관계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적 인간소외나 중국의 유교+사회주의적 인간소외 등은 인간소외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별로 다를 것도 없다고 본다.


모집단이 너무 커지면 대표하기도 어려워지고 민주주의의 난이도도 올라간다. 물론 적정 크기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별 의미 없다. 다만 현재까지 형성된 상태에서 구태여 지역통합이나 세계통합으로 크기를 키워야 하는 필연성에 대해 반박하려는 것이 취지이다. 가능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을 넘어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은 바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중간에 국가와 유럽연합이라는 다층적 거버넌스 체계가 생기면 개별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지고 주권자로서 제대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생긴다. 결국 유럽연합에서 그런 우려들이 현실화되었다. 그리고 극우 세력은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아예 근본적으로 내셔널리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토야마 이치로가 헌법 제9조를 개정해 재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 매우 석연찮다. 이런 노선은 최소한 '우애'와는 그다지 맞지 않지 않나? 뿐만 아니라 하토야마는 도조 히데키에는 반대했을지 몰라도 전범들에 대해서도 온정적이었다.


대동아공영권 구상이나 일본제국주의(군국주의가 아닌 버전이라 하더라도.)를 은근슬쩍 묵시적으로 넘어가면서 이를 쿠덴호페-칼레르기의 민족통합사상과 연결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일본에 의해 피해를 당한 국민국가들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치를 떨 만한 건방진 구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우애 사상을 사회자유주의, 그러니까 진보적 자유주의의 차원에서 넘겨 받았다. 이는 구체적으로 말해 일본 리버럴의 핵심 정체성인 평화주의/국제주의와 그 연장선상에서의 한국과 중국 등에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사과를 말한다. 더 나아가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말했다. 안보라는 다른 차원으로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아시아판 NATO' 구상을 말한 적이 있다.


원론적으로 보면,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 구상에 찬성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일본 전체의 문화적 변화 같은 것이 없다면 이 구상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선의에만 의지해 섣불리 그렇다 아니다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였던 2019년에 방한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아 서운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하토야마 전 총리의 사죄 행동이 무색하게도 아베 신조 전 총리 치하 일본은 한국과 크게 충돌했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에서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오자와 이치로의 허수아비라는 이미지 등으로 짧게 끝나버린 하토야마 내각부터 시작된다. 원래도 '이상주의자', '외계인' 같다는 평을 들었지만 최근 코로나19 백신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한 논란이 되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다시 말해 하토야마의 말만 믿고 일본 전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우며, 또 하토야마가 일본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일본에는 군이 없으므로(다시 말해 한국은 일본의 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한일 간 군사동맹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한일 간 신경전이 커진 상황이었다. 하토야마를 만나는 경우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었다.


며칠 전인 12월 19일에 문재인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전직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를 만났다. 이제는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앞서 말한 점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문재인은 반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재임 시절에도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와 간담회와 강연을 열기도 했다. 2015년 민주당 창당 60주년 기념식에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연대는 분명히 더 강화해야 한다. 일본을 위해서도, 한국을 위해서도. 가치의 공유와 공감적 연대가 더 심화될수록 한국과 일본이 자연스럽게 역사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으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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