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에노믹스와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문제

by 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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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한 것이었으므로 물가안정이 정책목표인 일본은행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금리인상이 선택지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10년 가량 지나 그 정책효과에 의한 재편이 전제된 일본경제는 비용 인상 요인이긴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주요 문제가 되어 있다. 만약 재정이 확대되면 물가를 더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일본은행의 입장에서는 아베노믹스 때와는 다르게 정부의 정책기조에 발을 맞춰 주기가 어려운 게 당연하다.

더구나 정부부채가 약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쌓여왔다. 당장은 괜찮다고 하지만 더는 성장 드라이브에 가능성을 거는 식은 안 된다. 기업의 비용 부담 지지, 가계의 생활 지원 강화, 전략 산업 투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재정을 통해서 고물가를 버텨내는 것이 우선이다.

이러한 방향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취한 방법이었다. 자민당이 작년과 올해 총선ㆍ참의원 통상선거에서 패배한 이유 중에는 인플레이션 대응 미진도 있었다고 본다.

이제는 재원 필요 시마다 단골로 우려먹던 소비세 인상 카드도 쓰지 못한다. 이시바 내각 한참 전부터 야권은 지속적으로 소비세는 서민에 대한 징벌적 과세나 매한가지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구매력을 지지하면서 소비세를 인상하는 건 불을 지르고 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하지만 재정 여력 등을 감안하면 감세를 쉽게 하는 것도 어려우므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판단을 유보했던 것 같다.

일본은 성장과 고용보다는 물가나 재정건전성 등을 더 신경 쓰는 게 맞다. 확대재정ㆍ성장주의적인 아베노믹스의 거의 복제판인 사나에노믹스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고 이 지점은 이미 다카이치 내각 출범 때 내가 지적했던 부분이다.

이재명 정부의 방향도 사나에노믹스와 아주 큰 방향에서만은 유사한(구체적 전략ㆍ수단은 차이가 있지만) 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고용 활성화ㆍ재정건전성ㆍ가계/기업의 지지 간 균형을 맞추늕 게 중요 과제라고 본다.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200%가 넘는데 최소한 증가 속도를 줄이는 방안이라도 생각해야 하고, 소비세보다는 고소득자ㆍ자산가 등이 응능원칙에 따라 더 부담하는 고육지책이 불가피하다.

한국ㆍ일본이 모두 위기가 목전에 닥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미봉하고 복지부동하려는 경향이 크다. 특히 한국은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건 근본적으로 전환된 현실의 여러 조건들을 검토하고 그에 맞추어 정책기조와 전략ㆍ수단 등을 재편하는 것이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합의는 사회적ㆍ정치적ㆍ경제적 등 모든 차원에서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균열과 위기를 보이고 있다. 서구에서의 주류 정치에 대한 민심의 폭발은 불평등이 극단화되는 상황에서 서민들은 시장이라는 사지로 내몰리고 동시에 긴축을 강요 받는 극도로 부당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전후 합의 중 생산에의 국가 개입은 불가하고 대신에 응능부담과 사회보장은 확대해야 맞다고 본다. 이러한 정책 패러다임은 기독교민주주의ㆍ후견적 보수주의(우파), 사회자유주의(리버럴), 사회민주주의(좌파) 등 다양한 방향에서 수용되었다.

대처주의의 피상적 이념 정치에서 시작된 파탄은 종식되어야 한다. 80년대까지의 서구 중도우파는 적어도 서민의 고통에 공감할 줄은 알았다. 요즘은 이것을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그 사람들은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게 공감하지 않은 결과 기후위기와 지속불가능성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 인간이 타인ㆍ사회에 무정한 채 홀로만 잘난 줄 알고 설치는 동안에 정작 그가 딛고 서 있던 기반은 붕괴된다. 세상엔 진취자ㆍ기업가들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ㆍ상담사ㆍ조리사ㆍ공장노동자 등 일하는 서민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거릿 대처는 자립적 개인을 말했지만, 대개의 경우 그런 말의 맥락을 잘 보면 승자에게만 유의미한 말이다. 인생은 노력하면 성공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노력해도 실패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정말 패배해 본 사람은 함부로 대처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실패하는 인간을 무시하는 체제는 존재 의미가 없다. 어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청년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가지는 회의감의 본질은 민주주의 자체보다 기성세대가 뒤틀어놓은 세상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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