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Soft)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약간의 신경질

by 남재준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905482


처음에 한국일보에서 이 글의 번역 제목을 ‘이준석이 차기 대통령감일까?’로 잡아서 뭔가 하고 읽어 봤다. 그랬더니 내용은 이준석이 대통령감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본래 제목은 ‘Lawmaker anger at Coupang over English at the National Assembly’였다.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1963-) 기자의 글인데, 그의 견해는 이렇다.


국회에서 청문회를 연 것이 애초에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의하거나 대책을 따져 물으려 한 게 아니라 ‘국민에게 보여주기식’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문제에 관한 질의조차 아니고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에게 ‘한국어를 못한다’라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국가이고 영어교육도 고도의 수준이다.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기록을 위해 한국어로 진행하기는 하지만, 먼 곳에서 오셨으니 영어로 답변하셔도 좋습니다. 당신들의 답을 통역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품위와 수준이 유권자들이 보는 한국의 세계적 지위에 부합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회의원들은 본인도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므로(당시 청문회에 출석한 두 사람의 미국 악센트와 호주 악센트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국민들을 대신해 분노하는 것을 연막 삼은 셈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만이 통역으로 지연되는 상황을 직접 개입하여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호주 악센트로 인사를 건넬 정도로 영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품위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대통령감이 아닐까(라는 비꼬는 말)?


나는 영어권 국가에 유학하거나 한 경험은 없지만, 영어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웠고 초등학교 때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하거나 영어로 발표/토론하는 경험도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에도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 영어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대학에서의 영어 수업과 과제도 무난하게 해결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영어 기사, 논문이나 판결문 등도 읽을 수 있고 그것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즐긴다.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영어를 잘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었다. 다만 그들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실생활 회화 표현이나 그런 건 잘 모른다. 외국에서 살거나 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소통이니까.


호주 악센트나 미국 악센트의 차이를 깔끔하게 구별하거나 그 차이를 감안해서 다르게 구사하는 것까지는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내 생각엔 어떤 언어권 국가에 속하지 않고 고유한 언어를 지닌 국가에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도 그 정도까지 영어를 알 필요는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소통이지 악센트가 아니니까.


그리고 한국영어교육의 실제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우리 영어교육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생활회화에서 학술독해로 점점 넘어간다. 수능 영어는 그 정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접한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도 학원에서 한 것이지 학교에서 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한국의 성인이 영어를 유창한 실생활 회화 수준으로 하려면 아예 다시 배우는 편이 좋다.


현재의 젊은 세대에 대한 영어교육이 그럴진대, 국회의원들이 대체로 속하는 60~70년대생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문종합영어’ 세대 사람들은 영문법과 독해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큰 틀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현재의 청년 세대라 해도, 영어 성적이 좋았다고 해서 반드시 회화에도 능숙하리라는 장담은 못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 초중등교육에서의 영어교육은 최종적으로는 입시 영어, 다시 말해 변별력을 가르기 위해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 영어로 귀결된다. 이는 옹호나 비난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실용영어교육은 국민공통교육과는 아직도 상당히 떨어져 있다. 그걸 고칠지 아닐지는 별개의 문제고.


브린의 말은 다소 서구중심주의적인 생각에 기초해 있다. 한국 유권자들이 영어권 국가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 주는 것이 ‘품위’라고 생각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옛날에 영어 열풍이 불 때의 허세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영어를 배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어의 사용이 세계적으로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영어가 모국어인 국가의 출신자에 대한 배려가 무슨 품위 같은 규범적 차원의 문제라는 건 자문화중심주의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외국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규범적 차원의 문제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애초에 무슨 ‘우리도 영어를 할 줄 알지만..’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여기는 대한민국 국회이지 미국 의회도 영국 의회도 호주 의회도 아니다. 한국어로 기록하는 건 당연하다. 쿠팡이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활동한다면 언어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감안을 했어야 한다. ‘한국어 잘 못 한다’라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건 문제가 크다.


그러니 한국어를 하느냐 못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게다가 국회에서 질의를 할 때는 기술적, 전문적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브린의 말과 달리 국회의원들이 좀 감정적인 바이브가 있긴 했어도 필요한 질문들은 했다. 예컨대 ‘쿠팡이 SEC에 보고서를 내면서 네트워크 시스템 정보 유출을 기업 경영의 주요 리스크로 지목해 내부 관리 취약성을 인정한 게 아니냐(신성범 국민의힘 의원, 출처 : 연합인포맥스(https://news.einfomax.co.kr)’와 같은.


통역이 있긴 하지만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을 다루는데 외국인을 보낸다는 건 꼼수처럼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국가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어떤 기업이 국민에게 피해를 끼쳐서 사회적으로 부상한 이슈를 다루려면 실질적인 최종 책임자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계속 김범석 의장의 소재나 사정 등에 관해 물은 것이고. 그 질문은 그렇게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고 영어로 통역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청문회가 국민에게 보여주기의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애초에 국민들이 피해를 입은 일에 정치권이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


결론적으로, 브린의 말은 본질이나 핵심을 정확히 짚지 못하고 한국을 서구인의 시각에서 마음대로 기대하고 평가한 것이나 진 배 없다. 이 문제의 핵심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에서의 쿠팡의 책임과 대책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사회적 차원의 예의와 성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외국인 혐오 비스무리한 것을 했다는 점은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본 것이다.


이준석 의원에 대한 평가도 염려스럽다. 이준석 의원은 확실히 유학 경험도 있고 만약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되면 서구에서 좋아할 ‘외양’을 가진 사람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사명은 브린 같은 사람들에게 맞춰주는 게 핵심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실문제인식, 정책이니셔티브 등에 능통하고 무엇보다 현실의 국민 생활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경청하느냐이다.


이준석 후보가 2025년 대선에서 내놓은 공약들을 보고 섬뜩했다. 아예 노골적으로 서구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들여오자는 취지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이미 최소한 연성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20년도 전에 했고 기존의 한국의 사회문화적 압력 등과 겹쳐 서민들에게 큰 고통이 되었다.


서민들은 깊은 환멸과 회의감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가 해체되고 위기의 특이점이 다가오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번 아웃, 취업난과 미스매칭, 만성화된 경기 불안, 다가오는 사회보장의 지속 위기, 산업 구조의 재편과 지역 소멸 등.. 이런 문제들은 능력주의나 자유와 같은 추상적 이념이나 영어를 잘 구사하고 상대적으로 젊다는 등의 이미지만 가지고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중상층 이상의 청년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한가한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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