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칼럼을 읽고 두서 없이 한 생각들 (1)
나는 그간 진보-보수, 성장-분배, 민주화-산업화 등 한국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을 이해하던 종래의 기본적인 인식, 프레임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교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다섯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1. 신(新)아시아적 가치 : 자비, 중용, 절제, 공감, 공존, 배려, 자유 등을 중시하는 불교·도가적 가치에 기초한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
2. 온정적 자유주의 (Compassionate Liberalism) : 타인에게 공감하며 자율의 영역을 보장하고, 자기 역시 스스로에게 영역을 두고 성찰하며 자율적으로 열린 시민사회와 문화를 형성
3. 돌봄 국가 : 보육, 요양 등 사회적 돌봄을 특정 젠더나 가족에 전가하거나 시민사회에 외주를 주지 않고 공적 책임을 국가가 부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회적 고립이나 상호 불통 등을 극복하고 자신-타인-사회에 대한 실존적·문화적 돌봄을 통해 자발적·유기적·다원적 통합을 지향하는 돌보는 국가(‘Caring state’. 돌봄의 윤리(Ethics of Care)의 연장선상에서 그 정의나 의의 등에 대해 학계에서도 논의 중이다.)
4. 생활자와 정책 중심 정치 : 학생과 청소년,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한 생활자의 관점에서 구조·제도의 제약과 불합리성을 이해하고 총체적 개혁을 단행
5. 거시에서 미시로의 시각 전환 : 시대, 구조 등의 거시적 차원에서 개인, 문화, 생활 등의 미시적 차원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사회
*개인적으로 이 5가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후에 따로 구체적으로 서술할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과 압축발전을 겪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채 5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모두 달성하고, 이를 10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공고화하였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에도 계속해서 격변이 많이 있었고, 압축적이고 빠른 사회변동을 겪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에서 쓰이는 패러다임이나 인식적 프레임 등의 유효기간이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거시적으로 국가의 기본적인 틀을 잡는 대기획은 종료되었다.
이제는 그 위에서 미시적으로 국민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생활을 돌보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개발독재가 극복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미국화된 이기주의로 흘러가는 한국사회의 흐름이 극복 대상이다.
프랑수아 바이루(François Bayrou, 1951-) 전 프랑스 총리(2024-2025) & 민주운동(*정당) 대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미국식 경제 모델에 대해 “그것은 ‘적자생존’ 시스템으로서, 거기에서는 돈만이 사람의 동기가 되고 고등교육은 너무 비싸며 중산층이 소멸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면이 있고, 최근의 개인화 경향은 미국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도 모자라서 신자유주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이러한 경향을 막아야 한다.
마크 카니(Mark Carney, 1965-) 현 캐나다 총리(2025-) & 자유당 대표는 일전에 ‘시장경제(Market Economy)를 넘어 시장사회(Market Society)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도 경쟁주의나 금권주의 등을 통해 ‘이미 끝난’ 게임의 승자들만을 위한 프레임이 저변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가난이라는 것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옛말이 있다. 돈을 주는 것보다 일할 기회를 주는 게 돕는 것이다. 일은 하기 싫고 놀고먹으려는 사람한테 밥 굶는다고 매달 10만 원 20만 원을 준다고 하자. 그건 그 사람에게 독약을 주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일자리가 없고 자식이 걸려 있기 때문에 자식 때문에 일을 못하면 탁아소를 지워줘서 자식을 맡기고 일하러 가서 한 달에 50 벌 것을 둘이 150, 200만 원 벌면 단 10평짜리 아파트라도 사고 나간다. 열심히 일해서 집을 사고 나가는 것을 옆의 사람이 보면 나도 저렇게 하면 집 살 수 있겠다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고 이것이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국가는 개인의 물질적 삶을 온전히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이지 당위가 아니다.
그 정도까지 보장하려고 했던 것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그것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복지국가는 개인의 경제적 삶을 국가가 전부 책임지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프레임을 여기에다 끌어다 쓰고 있다.
돈을 주는 것보다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은 마치 물을 주는 것보다 우물을 찾는 법을 알려주거나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맞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보통 그 비유에는 동물이 등장하지만,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지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게으르거나 한탕주의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저소득층이나 서민들은 엄청나게 많은 자기가 바꿀 수 없는 현실적 제약들을 감당해 가면서 고도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도 또 포기하고 희망과 기대를 무참히 짓밟힌 후에 더 포기하고 더 짓밟히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체념해야 하는 삶을 산다.
예를 들어 아무리 힘들어도 취업이건 수험이건 출근이건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과소비 프레임, 가난한 것은 자기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해서라는 개인에게의 과도한 책임 전가 등을 생각하고 선택할 ‘여유’가 있는 중상층 이상의 ‘합리적인’ 계층의 사람들은 서슴없이 한다.
테레사 메이(1956-) 전 영국 총리(2016-2019) & 보수당 대표는 ‘우리는 사람들이 단순히 수혜를 받는 게 아니라 일을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독립적 기반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아무리 일을 하거나 노력을 해도 임금이 물가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거나, 집값이 계속 높은 수준에서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거나 하는 구조적 상황 그리고 워킹푸어(Working Poor)의 문제이다.
아예 구조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중에는, 무언가를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거나 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최소한의 인식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구조적 무기력에 처한 이들도 많다.
물론 게으른 사람도, 한탕주의에 빠지는 사람도, 범죄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많다.
그들에 대해서는 자비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건 사법 차원의 얘기고, 복지 등 정책의 차원에서 보면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의지를 가지고 이겨내고자 하는데 구조적 제약이 커서 좌절되는 상황에 처한 이가 있다면 응당 복지국가와 사회보장은 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 시장경제체제인 국가에서 공공부조의 일환으로서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말 그대로 기초생활보장일 뿐 개인의 삶을 전부 그리고 끝까지 책임져주는 제도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이건희 회장 그리고 많은 대한민국의 중상층 이상 사람들이 겪어본 적도 알 수도 없으며, 설령 알더라도 자수성가의 논리를 들먹이며 자기의 상당히 운의 영향이 작용한 성공을 겪은 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세상을 정말 모르는 건 이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자기들이 물려받았거나 이뤄낸 것들 그리고 관료제나 전문가의 권위 등에 갇혀서, ‘개척’하는 삶이 아니라 ‘감당’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충분히 알거나 기억하고 있을지 싶다. (심지어 평사원으로 시작한 재벌 상속자라도 배경에 대한 안심이 있는 한 그게 없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물론 공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의 의미는 평가한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려는 사람을 그렇게 많이 보진 못했다.)
그들을 포함해 서구 기득권도 마찬가지로 게임이 끝난 사회에서 자기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이들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이건희 회장의 말에는 보육 지원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정치사회적 인식이나 담론 등의 차원에서 그의 발언은 전체적으로 볼 때 결국 모든 개인이 딛고 서 있는 사회적 기반을 침식시키거나 붕괴시키는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