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출신 인사를 기용한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과연 그것이 실제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가 중요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3305), 한 정부 관계자는 ‘일각에선 선거용 대통합 인사라는 말도 나온다.’라고 했고 민주당과도 가까운 한 전직 관료는 ‘정치적으로는 좋은 카드일 수 있겠지만, 국민경제에 좋은 카드인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박병언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이재명 정부는 확대재정을 기조로 하는데 이혜훈 지명자는 긴축재정을 지론으로 하므로 정책기조에 해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36919.html).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유임과 이혜훈 기획예산처장관 지명을 같은 맥락에 놓고 언급했다. 하지만 두 경우는 다르다. 송미령 장관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오래 일하고 보수-진보를 가로질러 여러 정부에서 자문위원 등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또 간혹 정치적 쟁점이 되기는 하지만, 본래 농림축산식품정책은 보수/진보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누군가는 유임시키기로 질러 놓았는데 남은 인사가 송미령이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혜훈 후보자는 보수정당 정치인 출신으로서 강경하게 민주당의 경제정책기조를 공격해 왔고, 또 예산은 경제정책의 중추가 되는 영역으로서 기본적으로 상당히 의견이 갈린다.
정치적 인사가 곧 성과를 내는 인사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문제인식, 가치관, 국정기조 등을 함께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의힘에서는 보수 진영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하고,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에선 작년 계엄/탄핵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는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이 정책적 부분과 연계되지 않는다면 일단 그 영역은 원칙적으로 2순위 고려 기준이다. 제일 중요한 건 이혜훈 후보자 자신의 일관성 훼손과 그에 대한 구체적 조율 방안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실은 국정기조가 뭔지조차 불분명하다. 이 대통령의 말이 분명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허(虛)나 모순이 많다.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극심한 갈등은 저성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장세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민생과 직결된 경제팀의 진용은 이념적으로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혜훈 지명 취지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정부를 구성하기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지언정 격렬한 토론을 통해 차이에 대해 접점을 만들어 가는 게 합리적 정책을 만들어가는 지점이 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또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제부터 진보, 보수의 문제도 없다.'며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라고 했다.
이 말들은 정치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문제가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정당 본위의 정치적 흐름에서 나오는데 정당은 ‘같은 정치적 이념/세계관/기조를 지닌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위하여 구성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진정한’ 보수 또는 진보 정당인가는 별도로 두 정당은 그간 정책의제들에 관하여 상당히 다른 기조를 취해 온 건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는 행정과 달리 단순히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니 보수 정권일 때 보수적 정책을, 진보 정권일 때 진보적 정책을 펴는 건 당연하다. 동시에 집권을 하게 되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통해야 하고 행정관료들이 제시하는 현실적인 여건 제약 등을 감안해 중도화할 수밖에 없다. 역대 정권들은 다 그렇게 해 왔다. 그러니 ‘이념’을 가진다는 게 잘못된 것처럼 말하는 건 정치의 본질을 몰각한 것과 같다. 이념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 보수가 진보 인사를 또는 진보가 보수 인사를 기용하고 싶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지를 국정기조에 비추어 설명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기본적으로 가치와 사고방식 등이 전부 다른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고 해서 더 나은 방향이 나온다는 법은 없다. 그런 경우들을 이미 참여정부나 문재인 정부 때에 우리는 확인했다. 두 정부에서는 정무직, 관료, 사회운동가, 지식인 등 다양한 출신들이 병존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 중 대부분은 경제관료 출신이었다. 그들이 이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조정하는 건 난이도가 있는 일이었고, 또 여러 출신 인사로 되어 있어도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는 큰 틀에서 정해져 있었다.
국정기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가의 방향 제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예측가능성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간 주체들은 정부의 정책 신호에 따라서 자신의 선택을 최적화하고, 정권에 참여할지 여부를 생각해야 하는 인사들의 경우에는 나와 맞을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박정희’ 정책과 ‘김대중’ 정책은 단순히 미시적인 구성 전략에 차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둘을 창조적으로 합친다는 건 자신의 독자적 구상이 나와야 가능한 것이지, 그냥 말로 갖다 붙인다고 해서 붙여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실질적 인식 한계를 벗어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견 조율자’는커녕 이견에 대한 관용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다른 사람의 말을 어느 정도로 제대로 듣는지에 대해서도 의문 부호가 달리는 리더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듣는 것 같거나 듣는 자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종적으로 이재명 대통령만이 처음부터 화자였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큰 틀에서 대선 이전의 당대표 등 경력에서부터 비전 제시를 하고, 이를 대선과 당선인 시절에 검증받고 다듬고, 임기 중에는 상황 변동에 따라 유연하게 변동하고 적응하되 큰 틀에서의 중장기적 기조는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부터 투쟁에만 골몰하고 정책에선 Flip-Flop을 반복했으며 지금도 아주 추상적인 줄기만 있을 뿐, 정확히 구상과 비전이 뭔지에 대해서 의문이 많다. 중도와 실용은 내용으로 말하는 것이지 그 간판 자체가 무엇을 시사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대통령이 한 것은 그냥 정치적 구호나 수사 차원에서 좋은 말들만 나열하거나 합쳐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잡는다’라는 말은 김대중 정부 등에서 이미 90년대부터도 나온 얘기다. 그러니 그 레토릭이 중요한 게 아니고, 2020년대 중반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대통령의 인식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저성장이 문제라는 건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정권이 공유해온 인식이었다. 물론 산업과 생산 영역에 있어서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과 건설업 고용은 많이 사양화된 상황이고 서비스업이나 첨단산업 중심으로 재편된 지도 오래되었다. 한국경제는 성장에 있어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할 때 못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갈등이나 사회적 고립 등 사회문제는 그대로 존재하고 또한 ‘고용 없는 성장’이 만성화되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말부터 지식정보경제를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통해 세계화와 경쟁 시대에 부응하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고용 없는 성장은 계속되고 있고 첨단산업이 그전에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 등과 달리 고용 창출 면에 있어서 그다지 유리하지 않음이 명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AI 기술의 급부상은 경제성장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체제 자체의 근본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여러 차원에서 성장-분배 이분법 안에서 정권을 가로질러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지만 효과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근본적 발상의 전환을 할 때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성장에 집착하기보다, 전략 산업이나 사회적 돌봄 등 국민에게 필요한 영역에 정부가 집중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실패하더라도’ 민간에 맡겨두는 식으로.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불가피한 시점인 것도 확실하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발상은 그냥 ‘먹고 사는 게 해결되면 감정이나 관계 등의 문제도 다 해결된다’라는 개발 시대의 성장만능주의에 젖어 있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본래 2010년대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중도화랍시고 한 것이 오히려 현재의 보수 진영보다 더 퇴행적인 것 같은 인식을 보이는 것이다. 국가 주도 성장은 이미 보수 진영이 80~90년대부터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오히려 이 대통령이 이전에 제시했던 기본소득은 논란은 있을지언정 노동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방책으로서의 경우의 수로는 생각할 수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원칙을 폐기하고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무언가가 되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중도’가 가지는 의미는 정책이 아닌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보통 이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의 중도 선언을 ‘외연 확장’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특징짓는 것은 적과 아에 대한 근본적이고 극단적인 이분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아예 궤멸시키기를 원하므로, 보수 인사를 기용하는 수단까지 써서라도 자기들이 ‘보수’를 대체할 거라고 세간에서 믿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정작 민주화 이후 현대 보수주의의 정책기조 변화에 대한 이해나 진지한 반영 고려는 없고, 박정희 시대의 유물을 진보 버전으로 재편하고 있다. 반공주의를 극우청산으로, 개발국가를 성장 회복으로.
그러는 동안에 정작 박정희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다원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법치주의 등이 침식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대통령의 소위 ‘탕평 인사’의 목적은 단 한 가지이다. 보수로 인정받고 정적들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는 것. 이재명의 ‘실용주의자’, ‘민주주의자’ 이미지의 실체는 이재명이 당대표 시절에 반대파에게 어떻게 했고 민주당을 어떤 정당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부 언론의 표현대로, 이재명은 ‘21세기의 진보판 박정희’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존재이다. 더구나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여론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무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