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23238
이 공소와 관련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한다면, 꼭 사교육의 폐해만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공소사실이 온전히 사실이지는 않고 해석이 상당히 들어갔더라도 문항개발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고도의 제휴, 연계, 외주 등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같은 것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어 보인다.
이 사건은 국어, 수학, 영어라는 특정 교과들에만 모든 영향력(정확히는 내신과 대입에의)을 집중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결과들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본다. 국어과의 문학, 문법과 수학과 교과 특성의 일정 부분 정도를 제외하면 세 과목은 기초 교과로서 그 자체의 '내용'이 있다기 보다 상당 부분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경우 변별용 도구로 쓰기에는 좋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을 특정 교과들을 본위로 보는 순간 그 교과들의 본래 취지가 몰각되고 다른 교과들이 상당 부분 무시되거나 사장된다.
예를 들어, 시험은 본래 문제 형식과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국어의 독서 영역에서 본래 보고자 하는 역량에 비추어 보면 난이도가 불필요하게 높아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독해 역량이 상위 수준인 아이들은 상위 4%나 10%가 아니어도 매우 많다. 왜냐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독해 역량은 수능이나 내신 시험처럼 그렇게 빡빡한 조건 안에서의 문제 풀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문제는 평가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상위권 역량 보유자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학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평가는 구조적으로 변별력의 볼모가 되어 버렸다.
또 해마다 수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독서(비문학) 지문의 '내용'에 관한 점이 문제가 되곤 하는데 사실 이렇게 까지 예민하고 깊게 반응하는 것도 시험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본래 독서 영역은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독해' 역량을 보는 것이지, 해당 지문의 '지식'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난이도를 높이려고 하다 보면 문항의 구성 스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클 것이고, 결국 지문의 난이도도 어느 정도 조절하게 된다. 그런데 많은 지문들이 일반적으로 그 내용이나 주제를 다루는 고교 수준 교과/과목들이 다루지 않거나 그보다 훨씬 어려운 것들을 다룬다.
예컨대 헤겔 철학이나 J-커브와 같은 개념들은 고등학교 도덕윤리과나 일반사회과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대학교 학부 수준의 것들이다. 고교 국어과의 독서 영역/과목이 그 지문 구성에 있어 반드시 고교 수준 교과 내용에 국한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이는 그 과목의 성격이 어디까지나 '독해 역량'을 키우는 도구적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그러니 본래의 원칙으로는, 내 생각에는 애초에 국어 독서 영역에서는 문제의 구성이나 지문과의 조응 등에 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어도 내용과 직결된 논란이 생기는 정도면 뭔가 근본적으로 시험 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전부 독해인 영어 영역에서는 더 심각해진다.
어쩌면 제일 본질적이고 중대한 문제는 학생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존감이 가루가 된다는 점일 것이다. 분명히 책을 즐겨 읽거나 글을 잘 쓰고 토론이나 발표 등을 잘 하는데도 국어 점수를 잘 받기 힘든 경우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거기다 국어를 잘 한다고 해서 상위 대학 국어국문학과를 갈 수도 없고(수시건 정시건).
그래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방지'의 문제의식이나 취지는 맞지만 그러한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국교육의 구조적/문화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킬러 문항은 내고 싶어서 라기 보다는 내야 하기 때문에 내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나 정부 등에서 진정으로 의식하고 논의해야 하는 부분은 킬러 문항의 배후에 있는 교육의 구조나 문화에 관한 문제이다.
교육 카르텔(?)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민간과 시장은 이익의 여지가 있는 곳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공교육 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학원이나 인강 사업 등이 성행할 수밖에 없다. 이건 그런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잘못 했다기 보다는 그런 구조를 만든 교육제도와 학벌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귀결이다.
몇몇 교과에 집중되었는데 심지어 적성시험과 비슷하게 내용 위주 시험이 아니라 유형의 틀만 있고 제한 시간 내 스킬이 중요한 시험은 극단적으로는 이번 사건과 같은 결과도 낳는다.
물론 국수영 중심 구조여야만 이런 일이 생길 것인가 하면 당연히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적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증적으로 교육과정-교육평가가 국수영 중심 구조가 아닌 시절을 산 적이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어느 시점에라도 적성시험 중심 구조가 되어 가고 있는 교육평가제도를 다차원적으로 모두 혁파하고 합리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협의의 지능, (개별 분야가 아닌) 일반/추상적 지능, 제한시간 내 스킬과 컨디션과 운 등에 달린 시험이 이제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래도 다른 적성시험들에 비하면 수능은 양반이다. 앞서 언급했듯, 수능 국수영 영역의 상당 부분은 그래도 내용이 있는 편에 속한다. 이러한 점들을 진지하게 감안해서 근본적으로 개선 논의에 사회적으로 착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