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노무현을 둘러싼 맥락은 약간 더 깊이 이해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문제로는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노무현은 매우 젊은 대통령이었다. 1946년생의 그는 1920년대생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그리고 1930년대 초에 태어난 전두환, 노태우 등에 비할 때 대통령급 지도자가 갑자기 훅 나이대가 내려온 셈이 되었다. 더구나 연공주의 문화가 아직 강하던 때니까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이전의 6명의 대통령 중 가장 뒤에 태어난 노태우(1932년생)보다 노무현은 14년이 적었다.
또한 군사독재, 삼김시대, 지역주의의 시대에서 그 핵심 보스 정치인들 곁에 있었던 대개의 그 나이대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이름은 있긴 했어도 설마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제대로 된 기반이 없었고 '친노'는 매우 빠르게 만들어진 계파였으며 열린우리당도 급조된 빅 텐트인 정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진보나 보수 같은 이념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성 정치 세력이 모두 힘을 합쳐 그를 몰아붙인 것에 가까웠다. 재임 초의 그는 삼김시대가 남긴 긴 그림자 속에서 발버둥쳐야 했다. 노무현이 이념적으로 너무 진보적이어서 였다기 보다, 문화적인 '코드의 반란'이 어느 정당이건 그간의 정치권이 감당하기에는 대단히 커서 였다고 생각한다. 종래의 군사독재 그리고 YS가 남긴 한나라당 + DJ가 남긴 민주당 + JP의 자유민주연합이 힘을 합쳐 노무현의 탄핵소추를 의결했는데, 이는 사실상 말 그대로 기성 정치권 모두가 힘을 합쳐 (딱히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노무현을 쫓아내기로 한 거였다.
애초에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그럴만한 체급이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 당선 횟수도 몇 번 안되고, 민주당의 주요 보스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고위당직을 많이 지낸 것도 아니고, 김대중 대통령의 안배로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된 정도가 있었다.
처음에 삼당합당에 반대하는 영남 민주계 정치인('꼬마' 민주당)으로서 노무현은 단독으로 그 당을 끌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거대하고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보스 정치인 김대중에 비할 바도 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도 민주당계 정당이 지역주의 극복을 주장했지만, 사실 이건 그래야만 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호남과 서울 및 일부 수도권 정도만 가지고는 집권이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DJP 연합이 있었던 것이고.
노무현은 '신념적' 차원에서 지역주의 극복을 주장했으므로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했다. 이것을 '신념적'이라고 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전혀 이익이 될 수 없는 정치적 도전만을 했기 때문이다. 그건 신념이라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노무현의 참여민주주의도, 그간 정치를 고권적이고 경외할 만한 보스들, 선생님들의 세계로 보아 오던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무엇보다 그간 정치권 입장에선 사실상 침묵하고 있던 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을 새로운 변수로 들였다. 그들에게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들을 대표할 정치인이 없었던 거니까. 86세대 운동권과 호남계를 넘어, 더 많은 생활인들이나 젊은이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노무현은 보수와 타협하지 않아서 실패한 게 아니다. 애초에 노무현은 체계적이고 점진적 과정을 통해 성공한 경우가 아니었다. 노무현이 타협하지 않은 결과 탄핵소추가 이루어졌지만, 그 탄핵심판 중에 실시된 총선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이 최초로 여당으로서 단독 과반을 확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하던 것을 그만 두고 당정분리를 하고, 보스 중심 기율 정당보다 시민과 정치인의 자유로운 담론과 의견 형성을 독려했고, 언론의 지분을 보다 다원화하고 행정/사법에 시민의 관점을 보다 도입하고자 했으며, 친노는 조직이라기 보다는 네트워크에 가까운 계파였다.
이러한 방향들은 '옳은' 방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인 여건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2004년에 체급이 갑자기 3배 이상 커져 버린 열린우리당은 386 초선 의원들이나 진보파의 강한 소신과 좀 더 신중한 중진/중도파 등 여러 갈래의 흐름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난립했다. 청와대가 고권적으로 여당을 통제하지 않았는데 정치문화가 그런 것을 잘 스스로 정리할 만큼 온전히 성숙되지 못한 데에서 온 결과였다고 본다.
정부혁신, 전자정부, 사회투자, 지방분권의 고도화, 인권보장의 실체적 진전 시도, 열린 시민사회의 활성화, 사회적경제 등 많은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졌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인식이나 자원 등의 역부족이나 저항 등으로 불발되었다.
참여민주주의, 권력기관 개혁이나 언론개혁 등은 당시로서는 반권위주의로서 유의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뀐 상태에서도 업데이트되지 않고 되레 크게 왜곡되었다.
아이디어와 사상이 많고 대화와 토론, 자율과 분권을 지향하는 리버럴한 대통령 노무현은 어쩌면 차라리 서구에서 태어났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은 많은 선구적 파도를 일으켰지만, 그것이 하나의 큰 조류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비극적이게도 노무현의 상식이 상당 부분 세상의 상식이 되었을 때 이미 노무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