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미묘하다.
어느 맥락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같은 표현도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평범’, ‘남들도 그래’, ‘남들처럼 그랬다면’ 이런 말들이 그렇다.
‘평범하다’라는 말은, ‘그 사람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라고 진술되는 경우 부정적인 의미가 되지만, ‘평범한 삶이 행복한 삶이다.’라고 진술되는 경우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
이는 반대의 의미가 되는 ‘특별하다’라는 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들도 그래’, ‘남들처럼 그랬다면’도 비슷하다.
‘남들도 그래’라는 말은 간혹 힘든 사람에게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은 의도와 그것의 전달 여부와 맥락 등에 따라서 ‘남들도 마찬가지인데 왜 너만 유난이냐’가 될 수도 있고 ‘우리 모두 힘든 삶을 함께 살아내고 있으니 힘냈으면 좋겠다’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위로하는 입장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을 넘어 타인의 감정을 온전히 느낀다는 것이 불가능한 타인의 입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힘들어하는 것의 크기나 의미를 축소해 버리는 말로도 들릴 수 있다.
‘남들처럼 그랬다면’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선 훨씬 미묘할 때도 있다.
‘남들처럼 그랬다면’이라는 말을 어떤 우울한 사람이 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남들처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싶다’(상대적 긍정)라는 말과 ‘남들처럼 사는 것을 약간 격하한다’(상대적 부정)라는 말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느껴지기에 따라서는, 또는 객관적 맥락에 따라서는 과도한 자기연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심사가 뒤틀린 건지 뭔지는 몰라도 ‘너만 유별난 게 아니라 다들 모양도 색깔도 다르지만 각자의 힘겨움을 품고 사는 거라고.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하면서 동시에 평범하지 않아. 우울이라는 말로 압축되면 모두가 우울을 느끼는 건 똑같지만 그 이면의 고유한 각자 맥락들은 더욱 알 수 없게 되니까.’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1995년에 웨일스 공빈 다이애나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자신의 파노라마 인터뷰 방송 직전에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나는데 그 대화를 보면 이런 결들에 대해 생각이 복잡해진다.
공감에 관한 두 가지 세계의 평행선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 제가 혼자 남겨지고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던 사실에 대해서요. 그리고 공감, 감정, 인정(人情)의 부재에서 비롯되어 제가 겪어 온 고통에 관해서요.
엘리자베스 : 이 얘기는 우리 모두 이미 이전에도 하지 않았니? 수천 번이나. 우리 모두 그걸 신문기사에서도 수없이 보지 않았었니? 만약 네가 몇 가지를 명확히 정리하고 싶었다면, 그런 문제들은 공개적 담론장이 제일 좋은 장소가 아니고 당사자들과 사적 영역에서 논의했어야 한다는 건 느끼지 못했니?
다이애나 : 저도 그렇게 해 봤었어요.
엘리자베스 : 언제?
다이애나 : 지난 수년간 수없이 많이요. 우리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 청했죠. 매번 어머니는 거부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하셨어요.
엘리자베스 : 나도 이 가족을 감당해내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네가 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로부터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하지만 그 ‘서먹함’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도 있지. ‘바쁨’. 우리는 모두가 바쁜 일정을 가진 바쁜 사람들이고, 두 밤을 같은 지붕 아래에서 모두가 같이 보내는 일조차 거의 없어.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왕실 가족 연장자 중에서 단 한 명조차 10분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너를 버려두거나 네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비참하게 만들까 하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그 반대로, 우리가 모두 그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면 놀랄지도 모르겠구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 아이가 이번엔 또 무슨 일을 한 거죠? 그 애는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라고 할 때 내가 뭐라고 할 것 같니? ‘오, 그래요. 다이애나는 끔찍해요. 형편없어요. 정말 잘못한 일이었죠.’ 그런 적 없다. 단 한 번도.
너는 내 장남의 아내이고, 내 손자들의 엄마이고, 이 가족의 가치 있는 어른이며 그래서 나는 너를 매번 그리고 모든 순간에 방어한다. 충실하게, 공감하며, 끝까지. 네가 나를 적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네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네 환상의 산물이야.
다이애나 : ...그런가요.
엘리자베스 : 그래. 모두가... 우리 중 누구든, 다이애나,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다음 여왕이 되기를 바라고.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겠지?
다이애나 : 네.
엘리자베스 : 윌리엄에게는 말했니?
다이애나 : 아뇨, 아직.
엘리자베스 : 가여운 아이구나. 이미 걱정할 일이 차고 넘칠 텐데.
다이애나 :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강한 아이예요.
엘리자베스 : 그 애가 약하다고 말한 적 없다. 그 애는 아직 어린데도 이미 걱정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지.
다이애나 : 윌리엄은 보지 않도록 말할게요.
엘리자베스 : 필립과 나도 보지 않을 생각이다. 20일 월요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다. 48주년이지.
다이애나 : 축하드립니다. 정말 기뻐요. 그게 저 자신을 위해 (제 결혼생활에서) 원하는 전부였어요.]
내가 이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이면의 사연을 충분히 들어야 하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과연 이 사람이 빠져 있는 감정이 정말 제대로 된 맥락에서 나온 것일까 라고 생각하게 되고 되고 그러면 다시 내가 폭력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싶게 된다.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 대화에서도, 나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르지만 모두 맞아서 더 비극적인 결을 읽었다.
다이애나는 단지 개성 있고 스타일리시한 현대적 왕실 여성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며 개인으로서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를 본위로 볼 때, 다이애나는 간혹 약간 과해서 불편할 정도의 자기연민이라던가 과연 저 공감적 제스처가 자기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를 위한 것인지가 분간이 안 가는 장면들이 있었다.
영국 왕실은 아주 오랜 세월 혁명과 전쟁, 공화주의 운동 등 시대의 파고 속에서 실질적 권력을 포기한 후에도 계속해서 전근대로부터 이어져 온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Noblesse oblige 등에 기초해 더 모범이 되고 자신들의 국가에 헌신하여 국민에게 새로운 권위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왕실 내부로 보면 개인의 목소리보다는 모두가 묵묵하게 서로를 위하여 지지하고 참고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보면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만큼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했고 모두가 지독하게 힘들어도 응당 그리 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살아왔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다이애나는 어린애같이 자기연민과 자기에 대한 이해만을 갈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다이애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도 왕실의 전통과 제도가 옳다고 생각하고 이해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인간적 온정이 너무 부족했고, 결국 무엇을 위해서 이걸 지켜나가고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제일 소중하게 여겼던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왕실이라는 가족의 보호막과 책임감에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왕실의 전통과 제도가 찰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두 아이도 짓눌러 사람으로서 숨 쉴 수조차 없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다이애나의 왕실에 대한 감정은 복잡하고 양가적이었던 것 같다.
다이애나가 타인에게 그토록 공감적이었던 것도 실은 자기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것(부모로부터의 애정)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으므로 갈수록 불행해졌다.
엘리자베스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가족 안에서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다이애나는 가족으로서 그리고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서 엘리자베스에게 이해와 공감을 바랐지만 엘리자베스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은 서로에 대한 돌봄과 책임이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도 엘리자베스는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결과적으로는 다이애나를 ‘자기연민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감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이건 다이애나에게 또 한 번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윌리엄의 고통에 관해서도 다이애나는 강하고 차갑게만 보이는 엘리자베스가 그의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보는 것 같지만, 엘리자베스는 고통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걸 알고 있다는 것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었다.
그래서 이 대화를 비롯해 이 관계가 비극적인 건, 양측 모두 잘못한 게 없었고 분명히 본질은 같은데 서로의 세계와 문법이 달라서 끝내 평행선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다이애나가 마지막에 자기도 여왕처럼 백년해로하기를 원했다는 말은 슬프게 들린다.
그녀가 다 하지 못한 말은,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엔 제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다’라는 속마음이 읽혀서 더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