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이나 일단은 게시해 둔다.)
신념은 진공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다.
같은 개념에 대해서도 다채로운 해석이 있는 법이다.
이 글에서는 나의 신념과 그것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자유주의자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의미와 느낌이 있는데, 그중에는 ‘리버럴하다’라는 표현과 직결되는 것들이 있다.
‘리버럴하다’라고 하면, 매우 개방적이거나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거나 하는 특성을 말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이는 어떤 때는 성격적 외향성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내향적’ 자유주의자이다.
내향적이라고 하면 보통 주위에 사람이 많이 없고 조용한 성격을 가리킨다.
어느 사회건 그렇겠지만, 특히나 내향적인 사람이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인 우리나라 사회에는 여전히 다수의 코드, 사회성에 대한 요구 등이 있다.
외향성과 사회성을 분리하지 않고 외향적이지 않으면 사회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냥 성격이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생각이 많고 신중하거나, 타인을 배려하려고 하거나 등의 여러 이유로 그렇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더 고차원적인 사회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향성은 때로 개성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데, 이 개성이라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자유주의의 여러 내용이 있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다수로부터의 소수의 개성의 보호’가 있다.
자유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복잡하다.
같은 사회계약론자라도 경제적 자유주의자들과 더불어 한없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보기도 하고, 정반대로 본래 선한 본성이 집단화되면서 변질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이론적 설계자 중 한 명인 로크가 성무선악설을 제기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의견에 무게를 싣고 싶다.
인간의 본성은 형성되는 것이지 불변하는 본성이 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본성이라는 것도 생각보다 복잡하다.
예컨대 인간은 이기심과 사회성을 동시에 가졌다.
그런데 참고로 인간의 사회성을 선과, 이기심을 악과 쉽게 연결할 필요는 없다.
이기심을 악과 연결하지만, 애덤 스미스와 이후의 시장경제체제가 입증했듯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모두에게도 좋은 방향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이라는 가장 본질적, 본능적 이익을 위해 인간은 자기보존의 욕구를 타고났는데 그것을 이기심의 근원이라고 본다면 이기심을 나쁘다고 보면 곤란해진다.
한편 사회성은 반드시 선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예전에 한 자유주의 고전(밀의 자유론이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에서 인간이 사회성을 타고났다는 취지의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대학에 와서 보니 사회성을 선과 연결해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일부 동물도 그렇지만, 인간은 유독 사회성이 가장 발달한 동물인데 이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지능과 더불어 생태계에서 인간이 가장 효과적으로 종의 생존을 이뤄냈으며 나아가 다른 종 위에 군림하는 종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면 사실 사회성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자기보존 나아가 이기심과 연결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성은 당연한 얘기지만 항상 선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과잉된 사회성은 부당한 사회적 압력을 추동하는 경우가 있고 이 점이 자유주의자들이 인간 본성에서 제일 우려하는 지점이다.
요컨대 본성은 상황과 시간 등에 따라 정적이거나 동적이거나 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것이며, 적어도 인간이 기본적으로는 공존할 수 있도록 사회성을 가지며 자기를 보존할 수 있도록 이기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성이나 이기심은 좋은 쪽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이 일단 사회성을 가진 이상 인간의 이기심은 필연적으로 통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성은 통제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이다.
다시 내게로 돌아와서, 나는 어렸을 때는 좀 더 외향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격이었다.
요컨대 개인 중심의 사고를 했으며 무언가가 나를 구속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또래와 많이 어울리지 않아 주위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학년의 진급에 따라 담임선생님에 따라서는 내 사회성의 문제를 가끔 언급하는 사람이 있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장기간 또래집단에서의 고립감을 느꼈고 고통스러워 했다.
누구도 내게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강요한 적이 없음에도 그랬다.
나중에 보면 그런 것도 결국 사회적 압력이다.
누군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무리 짓기’란 인간의 본성이고 그것을 못 하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도태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앞서 내향적 자유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자기와 타인에 대해 모두 ‘혼자 있을 자유’, ‘자신이 판단할 공간’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정치적으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인 이유는 공동체나 사회정의나 평등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으며, 그것들을 갖출 수 있는지의 여부에 개인의 힘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