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윌슨 (1916-1995) 전 영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당은 도덕적 십자군이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마거릿 대처 (1925-2013) 전 영국 총리는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의 신노동당(New Labour) 기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노동당의 주요한 강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단순히 구노동당(Old Labour)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나는 구노동당에 대해 약간의 존중은 있는데, 그들은 비록 틀렸지만 특정한 원칙을 위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노동당은 알아볼 만한 원칙이라는 게 전혀 없다. 신노동당은 근본 없고, 공허하며, 인공적이다.'
정당은 단순히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니라 '같은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그 신념 내지 이념은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유시민이나 전원책과 같은 인사들은 자신들의 소속 진영의 정당이 '진정한' 진보 또는 보수 정당이 아니라고 투덜거렸지만 그건 제한적으로만 타당하다.
적어도 그 시대의 맥락 등에 비추어 대의나 신념 정도는 있었다.
다만 보스 중심의 권력 집단이라는 게 크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점 때문에 많은 정당들이 짧은 시간 안에 명멸했다.
오늘날의 민주당은 진보도, 보수도, 중도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신노동당이나 현재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이 그런 것처럼 단지 '보수 진영은 안 되니까'일 뿐이다.
이런 정도의 대의로 뭉쳐 있는 집단은 오래 갈 수 없다.
수권정당은 기본적으로 신념/가치, 내적 다양성(의견의 다양성), 외적 포괄성(특히 중도층)이 있어야 한다.
이는 특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형성되거나 재편될 수도 있고, 오랜 전통의 흐름에 따라 안착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당들의 신념이나 가치는 시대적 맥락에 기인한 것이어서 유효 기간이 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제 끝났다.
그 프레임을 가지고 대한민국 헌정사 전체를 통틀어 계속 다투어 왔지만, 더는 그런 것을 두고 다투는 것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새로운 세대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정치의 바이브와 내용을 갱신하고 혁신하는 데 실패했다.
이 양당이 무너지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수권정당이 이 양대 정당이 아닌 상황을 생각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국민들의 의식에 맞지 않아도 결국 국민은 민주당 아니면 국민의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단지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 싫어함을 넘어서, 근본적 수준에서 정치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이재명은 매우 강하고 정략에 능한 지도자처럼 보이지만, 그의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민주당 내부의 대안 부재와 윤석열이라는 두 요인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윤석열이 이제 퇴장한 상황에서 이재명은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장악했고 민주당은 가질 수 있는 권력의 최대치를 가졌다.
일반적으로 모든 대통령이 5년 동안 허니문으로 시작해 레임덕으로 끝나지만, 윤석열 정부 때부터 국민들은 더 이상 재임 초에 허니문을 주지 않는다.
실제 산업화-민주화 대결 구도 시대보다 아노미 상태인 지금이 더 심각하게 균열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당 그리고 정치는 기본적으로 가치와 신념의 추구이다.
권력투쟁이라는 건 물리적인 현상일 뿐, 아무런 지향성이 없이 권력투쟁만 있는 정치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장외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이기건 자기에게 영향이 없다면 결국 그 권력투쟁을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
더구나 우리는 봉건 시대도 아니고 민주정치체제 하에 있다.
중도나 실용처럼, 진보나 보수와 달리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은 이념은 반드시 명확한 언명과 설명을 요구한다.
이명박은 탈이념을 선언했지만 결국 그의 국정에는 신자유주의적 토건 국가 같은 뚜렷한 방향이 있었다.
안철수가 잘 안 된 이유는 결국 끝까지 그 새정치와 중도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공계 출신 정치인의 가치나 관계에 대한 무시와 격하 그리고 효율과 성과 논리 및 기업가적 자기 확신과 불통은 결국 그를 동료 정치인들이나 국민들로부터 버려지게 만들었다.
국정이나 중앙정치는 지방자치나 기업경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층적이고 다원적이며 복잡한 세계이고, 단지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가치/문화/구조/제도 등의 층위가 있는 거시적인 세계이다.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하려다 보면 좌초된다.
이재명은 정치적으로 중도가 아니고, 정책적으로도 중도가 아니다.
대처가 신노동당에 대해 했던 말을 이재명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재명은 그 무엇도 아니며, 민주당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수년 동안 당 내 반대파와 보수정당을 유례 없이 격렬하게 적과 아의 흑백 논리로 몰아붙이더니, 이제 자기가 권력을 독점하니 '통합'을 말한다.
계엄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쳐 놓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국민의힘 덕분에 이재명의 가스라이팅이 잘 먹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재명의 방향에는 이상 징후가 많고, 실은 그의 권력은 매우 위태롭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문재인은 과반수 득표/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했고 북미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었으며 민주당은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생각보다 오래 높은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했고, 퇴임할 때까지 지지율이 아예 아주 심각한 수준으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국정농단은 계엄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이재명은 훨씬 더 유리한 상황에서 집권했고 민주당은 집권하는 그 시점에 압도적 다수당이다.
이재명이 선거 기간과 그 이후에도 국민통합이나 중도화를 계속 어필하니 마치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어필이 제대로 먹히려면 (유승민도 언급했지만)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신용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이 중앙정치에 부상한 이후 보인 언행 중에 도대체 어떤 부분을 국민통합이나 중도화를 지금 말한다고 해서 믿을 근거나 신뢰가 되는 점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민주당이 중도층의 힘을 얻은 건 민주당의 영향이 아니라 계엄과 탄핵의 반사 효과에 불과했다.
반대로 문재인이 대선에서 얻은 중도층은 제한적이었지만 취임 후 지지세를 확대했다.
반면에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다시 민주당의 지지율은 빠지면서 무당층/중도층이 양당과 비등하게 되어 있다.
계속해서 불길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유의미한 반대의견이나 다른 분석적 시각을 낼 사람이 전무하다.
낼 사람이 있어도, 그는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재명 치하 민주당은 적대감과 위선만 있을 뿐 신념/가치, 내적 다양성, 외적 포괄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반사적 요인을 제외했을 때, 민주당이 맨몸으로 책임져야 할 때 밑천이 바로 다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굳어진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어지간한 제스처를 취한다 해도 이변이 없는 한 크게 바뀔 수 없다.
이재명이 노무현이나 문재인처럼 '오해'를 받았다는 걸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이재명은 단 한 번도 포용성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바이브나 제스처를 보인 적이 없다.
신뢰라는 건 행위와 상호작용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무현/문재인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어느 정도 사람으로서 '신사적임'이라던가, 노무현의 솔직담백함 같은 건 인정했다.
말하자면 정치인의 이미지의 문제이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못지 않게 비리나 성폭력 등 온갖 문제들이 많은 권력 집단이지만, 적어도 그 당을 끌고 가는 몇몇에 대한 신용도가 상당히 작용했다.
비주류이면서 호오가 극과 극이었던 노무현과 달리, 이재명은 주류면서 호오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데 심지어 투쟁성+포용성이 함께 있었던 노무현과 달리 이재명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사람이 극단적인 경험을 과도하게 많이 하면 세상의 결을 과장되고 거칠게 읽는 경향이 생긴다.
이재명이 포용적인 제스처를 취해도, 그런 데에서 오는 리더십의 인격적 특성들은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다.
이재명도 민주당도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
가질 수 있는 권력을 다 가지면 남는 건 내려오는 것 뿐이다.
남은 건 시점의 문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