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보호 정책의 방향과 전략

by 남재준

본래 어렸을 때에는(지금도 그렇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엔 한국사로 시작했는데 특히 중국사와 일본사를 중심으로 한 동양사 나아가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중학교 때 인도사, 이슬람사 등을 배우면서 타문화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넓혀지니 관용의 폭이라던가 단정하기 전에 한 번 더 숙고해보는 태도나 역량이 자연히 넓어진 면도 있다(물론 여전히 문화 자체에 대한 개인적 호오는 별개의 문제이다). 생활 속에서의 사고나 언행부터 어딘가에 여행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관습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은 공기처럼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내 경우엔, 꽤 많은 문과 내 소수의 학생들이 그렇듯 역사를 좋아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역사학을 전공하는 것은 포기했다.


이제 인문사회 분야도 소수 정예화되는 만큼, 학계를 중심으로 하여 확실하게 전공 유관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을 사람들을 선발해야 한다. 또 국가 차원에서 인문사회 연구에 대한 지원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문100년 장학금 등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 이공계를 보호했다면, 이제는 인문사회계를 보호해야 한다.

(*정확히는, 인문학 전체에 더하여 사회과학 중 경제학과 경영학 등 응용사회과학을 제외하고 특히 사회학, 정치학 등에 대하여.)


또 무엇보다 여기에 성과주의 평가 등 인문사회 분야와 본질적으로 상치되는 논리의 개입을 지양하도록 하며 과도하게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전공 연관 과목들과의 입시의 연계 등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특수한 전형이나 학사 운영에서의 전과나 복수전공 제한 (단, 보호 대상이 되는 인문사회 계열 안에서의 전과나 복수전공은 허용) 등을 도입하여, 일반 지능 등을 보아 학벌 강화 기제가 되고 노동수요에의 부응을 강요 받는 상황을 타개하여 인문사회 연구 후진 양성을 보다 엄격히 해야 한다. 또 십수 년 간 계속되어온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에 대한 통폐합과 축소도 중단하거나 되돌려야 한다.


현재의 상황은 인문사회 분야를 지망하는 사람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있어도 (1) 그 분야에 대한 재능 만으로는 입시에서 불가능하고 (2) 대학원까지 전공을 하려고 해도 생계에 대한 불안 등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부분을 정책적으로 반드시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학문 연구의 본령 회복만이 아니라 정신문화, 소프트파워가 발전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는 복지국가와 사회보장, 노동권보장이라는 '사회적 질'을 넘어, '문화적 질'을 의미하게 된다. 또 무엇보다 헌법이 문화국가의 원리(제9조)를 천명하고 있다. 이는 문언상 '전통문화', '민족문화'를 국가의 유지, 보호, 계승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은 고고학이나 문화재보존학 등만이 아니고 국어학, 국문학, 철학, 역사학 나아가서는 이와 연관된 여러 외국의 언어/문학/철학/역사 등에 대한 이해나 보존이 전제되지 않으면 유형이건 무형이건 문화재 그 자체만 보호해서는 무의미하게 된다. 또 고고학과 문화재보존학도 결국 역사학 등 유관 학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안 된다. 인문학은 어느 분야건 본질적으로 이미 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한 분야를 연구한다고 해도 그 분야에만 특화된 영역만 다루지 않는다.


인문학법(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는 입법목적에 대해 인문학을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균형적으로 발전하게 하여 창의적 인재 양성, 국민의 정서와 지혜의 풍요, 삶의 질 개선 등을 도모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생활자 중심 정치에 관심을 두는 나로서는 '삶의 질'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 삶의 질은 사회적(e.g. 복지국가), 경제적(e.g. 재테크와 그것이 가능한 소득-자산 기반) 등의 차원만 가지고는 달성되지 않는다. 종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 등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안정과 풍요 즉 '문화적' 향상이 필요하다. 생활자와 인문학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앞으로는 있어야 진정으로 건전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자기계발이나 교양 차원이 아닌 그냥 인문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거나 삶이나 세상에 관한 성찰 같은 것의 차원에서.


나는 아무리 제도와 기술이 그럴듯하게 외형을 갖추었더라도, 정신과 문화 등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여전히 내면은 그대로가 되고 기술에 따라 바뀌는 정신과 문화는 결국 뒤틀려 다른 차원으로 나쁘게 된다고 본다. 자유주의 논리가 고등교육학술정책에 개입하는 순간 대학은 정부와 기업의 경제 논리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지금 그런 현실이 되어 있고, 대학은 다양한 인재와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 계층 재생산이나 노동수급이나 경제성장에의 '기여'를 강요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근본적으로 타파하지 않으면 현재의 아노미적 징후나 사회적 응집력의 저하 등의 문제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 근원도 모른 채로 계속 임계점을 향해 더 빠른 속도로 폭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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