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저(John Major, 1943-)는 마거릿 대처의 뒤를 이어 보수당 대표 겸 총리로 취임하기 직전이었던 1990년 11월 24일에 이렇게 언급했다.
‘다음 10년간 우리는 이 나라 전체를 진정으로 계급 없는 사회(classless society)로 만들기 위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메이저는 대처가 지배한 십수 년간 지워졌으나 백 년 넘게 영국 보수당의 정체성으로서 자리 잡은 일국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를 다시 내세웠다.
(*참고로 후에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는 흔히 ‘Conservatives’, ‘Tory’로 알려진 영국 보수당의 전체 당명인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에서, 자신은 Unionism 정확히 British Unionism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로 잉글랜드만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반발이 다시 시작되는 등 갈라져 버린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캐머런의 강력한 긴축 일변도 이후로 그녀 자신이 언급한 작열하는 부정의(Burning Injustice)를 극복하고 모두를 위해 일하는 나라(Country working for Everyone)라는 점을 다시 부상시킨 것이기도 했다. 이 역시 일국보수주의 전통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브렉시트의 수렁에 빠진 그녀는 내치에서 액셀러레이터를 제대로 밟지 못해 구상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다.)
이는 꽤 심오한 말이었다.
정치를 강력한 이념적 성전으로 만든 대처는 마지막까지도 야당이었던 노동당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철학적 프레이밍 공격으로 일관했다.
그녀의 취지는 ‘사회주의를 해서 모두가 못 사는 것보다는 불평등이 있다고 해도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것이 더 낫다. 이것이 동구권의 붕괴와 탈냉전에서도 입증되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처 시절에 당내의 일국보수주의자들이나 노동당 내 연성좌파(Soft Left)에서 주장한 요지는 체제나 원리로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경제체제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으며, 전후 노동당 내각이 과연 체제 차원에서 사회주의를 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았다.
노동당에서 강성좌파(Hard Left)는 대개 천덕꾸러기 비주류로 취급되었다.
게다가 복지국가나 노동권 등은 좌파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 없다.
영국의 일국보수주의자들이나 대륙의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이 노동권과 사회보장을 증진시킨 공로를 자유주의 정당의 사회자유주의 조류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함께 지니고 있었다.
물론 대개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만큼 공격적이고 포괄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장한 바와 같이 보수주의에서도 사회이동이 과도하게 적고 중하층과 하층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을 미연에 막아서 ‘사회의 안정과 유지’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자유주의에서는 '계급 차이를 보정해야 개인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될 수 있다'라는 견지하에 복지국가 옹호론이 제기되었다.
대처가 어찌나 극단적이었는지 자신을 글래드스턴 자유주의(Gladstonian Liberalism. 19세기 총리였던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버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라고 하면서 20세기 초의 새자유주의(New Liberalism) 내지 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를 '집산주의적(Collectivistic)'인 후대의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대처주의 및 전체적으로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통해 재편된 사회와 경제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면서 상향 사회이동이 정체되고 사회불평등은 더 극심해지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서민들에 대한 이해라고는 조금도 없는 대물림 받은 계층 출신이거나 시장에서의 생존자들인 다수의 정치인들은 일방적으로 서민들에게 자기들의 합리성을 내세워 왔다.
그러는 동안에 계속해서 서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종래에 서구를 지배해 온 양대 세력이 모두 비슷한 논리로 아무 공감도 지원도 없는 채로 오히려 ‘불가피한 부담’만 계속 요구하니, 포퓰리즘/내셔널리즘/반제도 등의 방식으로 폭발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는 대처나 레이건 등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전환을 주도한 자들이 가져온 결과이다.
민권 분쟁, 노사 분규나 냉전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서민의 사회경제적 삶의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전후 약 30여 년의 시대와 80년대에 신자유주의 체제로 패러다임 전환이 된 후 대강 40여 년이 넘은 현재의 시대를 대강 비교해보자.
전혀 맥락이 다른 현재와 과거를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과연 우리가 현재의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시사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불평등 자체에 대해서 아예 결과적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모두가 그냥 맨몸으로 경쟁에 내던져졌을 때, 대처가 언급한 그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개인의 배후에서 자원과 경쟁력의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등이 시장을 보완하거나 견제하지 않는 경우, 대다수의 개인은 결국 버려지고 도태된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앞서 언급했듯, 전후 합의는 '시장경제체제를 본위로 한다.'라는 점이 전제된 것이었다.
대처나 신자유주의 흐름은 거기에 덧댄 '사회적(Social. 사회주의적 Socialist이 아니다.)'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야경국가 시절의 폐단ㆍ부조리를 재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처주의라는 도그마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 그녀가 주장한 것처럼 그렇게 강경하게 시장 근본주의를 밀고 나가면 실질적으로 소수의 이겼거나 이길 사람들을 위한 국가 밖에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개발국가 등 빅 푸시나 신자유주의적 '황소 풀기'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불평등이 유지되더라도 고용이나 소득 등의 제고가 모든 계층에서 가능할 수 있고 그러면 괜찮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이 아니고 오히려 비관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도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메이저, 메이 등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 전환 이후의 일국보수주의자들도 결국 구조개혁까지는 생각이 없었고 블레어-브라운의 신노동당도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대처주의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았다.
시장경제나 불평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이동 정확히는 수직 이동의 추세가 하락하고 각자의 계층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는 경우 정치와 사회경제 엘리트들은 중상층 이상에서만 배출되고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서민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노동당에는 토니 블레어와 같은 영국판 ‘강남좌파’들이 넘쳐난다.
토니 블레어는 보수당을 지지하는 변호사 출신 아버지를 두고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이었다.
젊어서 주목받았으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 이외의 경험이 없다는 의미였다.
존 메이저는 다소 복잡한 가정환경을 지니고 있었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젊은 시절에 여러 회사나 은행 등을 전전하면서 보수당 소속 지방의원으로 여러 번 출마와 낙선을 반복했다.
모든 전후 보수당 대표 중 앤서니 이든, 해롤드 맥밀런, 알렉-더글러스 흄, 에드워드 히스, 마거릿 대처, 윌리엄 헤이그,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낙은 옥스퍼드대를, 마이클 하워드는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다.
윈스턴 처칠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상층 출신이었으며, 이안-덩컨 스미스는 중상층 출신으로 해군사관학교를 나왔으며, 케미 베이드녹은 나이지리아에서 중산층이었던 가정이 영국 이민자로서 하층에 가깝게 되면서 스스로 아르바이트 등 여러 노력으로 서섹스대를 졸업했다.
모든 전후 노동당 대표 중 클레멘트 애틀리, 휴 게이츠켈, 해럴드 윌슨, 마이클 풋, 토니 블레어, 에드 밀리밴드는 옥스퍼드대를, 닐 키넉은 카디프대를, 고든 브라운은 에든버러대, 키어 스타머는 리즈대를 졸업했다.
제레미 코빈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거의 중상층에 가까운 중산층 출신이었다.
모든 전후 영국 총리와 거대양당 당수 중 가정 배경이 중하층 이하이고 대학도 나오지 않은 사람은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과 보수당의 존 메이저 단 둘이다.
캘러헌의 경우에는 정말 하층 출신이었고, 결국 하층 계급의 배경을 지닌 이들이 입당할 법한 노동당으로 갔다.
그러나 중하층~하층 경계에 있는 배경을 가진 메이저는 보수당으로 갔다.
모든 전후 영국 총리와 거대양당 대표 중 메이저와 같은 경우는 없다.
이 지점을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도 밝힌다.
‘제 배경 때문에 제가 보수당원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메이저는 이렇게 말한다.
계층은 사회경제적 구분일 뿐, 개별적인 사람들의 정체성까지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모든 계층에는 양아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공존한다.
그러나 제일 고통스러우면서도 제일 현명하기도 할 가능성이 높은 건 중하층에서 하층의 배경을 가지면서 모범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메이저와 같은 사람이 보수당 정치인으로서 꼭대기까지 가 닿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계급 사회가 어느 정도 괜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계급이 있다는 것 자체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택한 이상 불가피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역량을 어느 정도로 펼칠 수 있으며 또한 상향 이동이 가능한가 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메이저의 총리 취임은 일국보수주의의 성과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방어의 성공이기도 했다고 본다.
보수당은 단지 변화에 잘 적응해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민정당’으로서 모든 국민을 국가 공동체로 안으로 포괄하는 것을 지향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었는데, 특히 일국보수주의는 중장기적으로 귀족에서 상공인 그리고 다시 중산층이나 심지어 간혹 중하층까지도 보수당이 포괄할 수 있도록 했다.
메이저는 전후 세대가 건설한 복지국가가 낳은 사회안정의 산물이었고, 뒤이어 중상층 배경임에도 진보적 감수성을 가지게 된 토니 블레어도 비슷했다.
하지만 대처가 전환한 국가에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메이저와 같은 인물상이 등장한 적이 없다.
케미 베이드녹은 입지전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개천에서 나와서 개천을 버린 사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사람’ 비슷하다.
강경한 신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이 출신 계급에 대한 ‘배신’이어서가 문제라기보다, ‘나도 했으니까 너희도 할 수 있어’, ‘내가 바로 자유시장경제가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는 방증이야’라고 말을 해서 문제이다.
실제로 베이드녹은 자유시장경제 ‘덕분에’라기 보다는 자유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은’ 케이스에 가깝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케미 베이드녹만이 아니라 폴 라이언 전 미국 하원의장처럼 모든 서민이 그럴 수는 없고 실제로는 흔한 일도 아니라는 점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이 많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 예를 들어 직업훈련을 담당하는 교관 등의 경우라고 하면 베이드녹이나 라이언처럼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힘을 내야 하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게 유의미하다.
문제는 정치란 그런 현실 자체를 점진적으로라도 개선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점이다.
또 정치는 정책이나 순수한 이념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나 그에 기초한 리더십 등에서 비롯되는 감성이나 이미지 등도 중요하다.
그것 자체가 객관적 상황과 별개로 국민의 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메이저는 가장 평범하고 고루하다(Grey man)는 말을 들었지만, 실은 가장 사려 깊고 공감적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1990년대의 경기침체, 검은 수요일과 유럽환율메커니즘으로부터의 이탈,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유럽통합을 둘러싼 보수당의 내분 및 복수심에 불탄 대처의 배후 정치, 계속되는 보수당 의원들의 일탈행위, ... 메이저는 행정개혁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열심히 시행했지만 동시에 장기집권으로 느슨해진 보수당과 그에 대한 국민의 피로를 모두 감당해야 했으며, 왕실 내 갈등과 찰스-다이애나의 관계의 파탄과 이혼 절차가 메이저 임기 내에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여러 번 사임을 고려했고, 1995년에는 아예 메이저 스스로 보수당 대표직을 사임해 당수 경선을 열고 재신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퇴임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경기가 어느 정도 호전되고, 사회문화적으로도 보다 개방적일 수 있는 여지들을 많이 남기고 떠나는 등 후임자인 토니 블레어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메이저 재임기의 각종 불운한 사건들만 기억에 남았다.
퇴임 후에 메이저는 여러 후임자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메이저를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중 1순위로 꼽는다.
서민이 항상 압박과 제약하에서 차악을 골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 서민에게 선택의 자유란 중상층과 상층의 선택의 자유와 달리 ‘감당’의 문제라는 사실, 세상에는 대단히 많은 유형과 상황의 사람들이 있고 나의 어려움을 공감받고 싶듯이 타인과 사회에 공감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것 등..
유물론에 기초한 생산관계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회주의 사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중하층이나 하층의 입장에선 보통의 경우 그냥 지적 유희처럼 들린다.
현대의 노동계급은 이원화되고 다양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같은 계급적 차원의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해서 같은 정체성(소위 ‘계급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과 문제에 대해 알면서도,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호구지책이 중요한데 노동운동이나 정치에 참여하는 식으로 나아가면서 자기 스스로가 대의를 위한 낟알이 될 생각은 없다.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이미 많은 제약과 부담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모욕이고, 계급 의식이니 하는 말은 좌파나 운동권식 문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감당해야 할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선, 자신과 가족의 생계나 삶의 조건 나아가 중장기적으로 가능하다면 자산의 형성 정도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고, 그 이상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력이 없다.
물론 자산 형성이나 삶의 조건조차 생각할 조금의 틈도 없거나 아니면 불가능하므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조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만약 노조의 힘이 커지는 경우 그것은 개인의 목소리를 지울 염려가 없는 것일까?
아직 노조의 힘이 그 정도로 크지 않은데 뭘 걱정하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실제로 노조의 힘이 그만큼 커져서 그때 우려한 현상이 발생하면 그건 어떻게 막는가?
서민 가계의 관점에서 볼 때, 노조건 정부건 기업이건 제도적 신뢰라면 몰라도 무슨 감성적 차원에서 믿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막연한 정치권의 이념 공세에 종교처럼 끌려가기도 하지만.
좌파 정치에선 이중 대의 구조를 취해서, 노동조합 그리고 다시 그와 직결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대의를 한다.
그 전제에는 개인이나 삶의 다양성에 대한 아무 고려 없이, 그저 유물론적 관점에서의 계급 의식만 존재한다.
게다가 그들이 펴는 정책이 항상 결과적으로 서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상당히 많은 좌파적 정책은 문제의식은 옳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많은 서민에게 있어 상태나 선택을 차악에서 최악으로 바꾸는 역할들을 했다.
현재의 맥락과 구체적인 현실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수단이나 전략 등이 가능하며 또 그것을 단독 또는 복합으로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이런 것들을 기본적인 시스템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을 극소화한다는 전제하에 아주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좌파와 우파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부분적인 진실만을 전체적인 진실인 것처럼 밀고 나간다.
실질적으로 현실이 양면적이고 다차원적이며 균형이 필요한 때가 제일 많은데도.
우파가 말하는 관념적 자유 시장이나 사회는 승자들의 입장에서 눈에 보이지조차 않는 밑바닥과 자신들이 누리는 현실만을 본 것이어서 비현실적이다.
좌파가 말하는 계급 본위의 경제나 사회는 과도한 극단적 인식이라던가 설익은 급진적 정책으로 실질적으로는 집단 속에서 개인을 지워버린다.
계급/계층 사회는 적어도 상향 이동이 활발하고 사람들의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한 정당화될 수 있다.
상향 이동의 활성화와 삶의 조건의 안정화는 구체적인 맥락과 환경 등에 따라 달성 가능한 전략과 수단이 다르므로, 정치나 정책 내지 행정은 계속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최적해와 균형점을 찾는 활동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