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럴적 요소를 '내포'했기 때문에 예전에 민주당을 지지했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요소는 언제든 소리 없이 소멸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이를 특히 정치인이나 지지층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엄청난 수준의 적대감과 집단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을 끌어내릴 수 있는 레버리지가 다른 주체에게 그다지 없을 때는 더더욱.
2023년 8월에 내가 썼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97-2001 보수당 당수를 지낸 윌리엄 헤이그 (William Hague)는 연초에 아직 보수당에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타임 지에 사설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당은 닐 키넉(1983-1992 노동당 당수. 대처와 메이저에 패했다.) 치하였을 때보다는 덜 두려워 하지만, 동시에 그나 블레어 치하였을 때보다 훨씬 덜 들떠 있다. 노동당은 신노동당 초기처럼 미래의 조류가 아니다. 키어 스타머 경의 팀이 현재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 자체가 흥미롭다고 판단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권력에 가깝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로부터도 감흥은 오지 않는다."]
당내가 아니라 거국적 차원에서, 1997년 토니 블레어 치하 노동당과 2024년 키어 스타머 치하 노동당을 비교해보자.
그러면 2017년 문재인 치하 민주당과 2025년 이재명 치하 민주당의 차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문재인은 탄핵이라는 반사적 영향이 많이 작용해서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지만, 최소한 1~2년 간은 득표율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재명은 문재인보다 보수정당에 대해 훨씬 압도적으로 규범적 차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위치에서 집권을 했는데도 그때와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다.
탄핵 정국 때 2016-2017 국면에서 온건보수부터 진보까지를 포괄한 범국민적 흐름이 느껴진 것과 달리, 2024-2025 국면에서는 그냥 민주당+존재감 없는 진보정당 정도였다.
게다가 그런 구도를 만든 주요 장본인 중 하나가 민주당 정확히는 그 민주당을 움켜쥐고 있는 이재명이었다.
집권 이후 민주당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키어 스타머로 돌아와서 볼 때, 계속되는 긴축/브렉시트로 인한 혼란/빠르게 교체되는 총리 등의 혼란을 14년 간 겪은 영국 국민들이 반사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키어 스타머에게 권력을 안겼다.
(*우리 국회의 의석수로 환산하자면, 노동당은 2024년 총선에서 188석 정도를 얻은 셈이다. 제2당이자 제1야당으로 돌아간 보수당은 우리 국회 의석수 환산 기준 55석 정도를 얻었다. 한 정당이 40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한 것은 2001년 총선 때 토니 블레어 주도 노동당 이후 최초였다.)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건, 스타머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보수당에 대한 임계점을 한참 넘은 국민들의 불만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만으로 재임 1년 6개월 정도 밖에 안 된 노동당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당 내에서조차 스타머의 권위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머는 이재명처럼 비전 없이 집권했고, 당무에 있어서도 이재명처럼 당내 반대파(정확히는 코빈 등 좌파)를 강경하게 억누르면서 모호한(내용이 없는) 중도를 선언했다.
(*이 '중도화' 부분도 중요하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박주민 등은 대개 당내 진보파에 속한다. 제레미 코빈이나 일본의 야마모토 타로 같은 이들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압도적으로 옹위한 이재명은 색이 없고 강경하기만 한 것이 본질인 정치인이다. 실은 스타머에 이재명을 비교하는 것도 스타머에게 실례긴 하지만..
중요한 건 지지하는 정치적 흐름과 완전히 다른 흐름을 지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거나 어느 정도 알면서도 무시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운동권식 위선 내지 폭력성이기도 하다. 자기들이 '이상을 품고' '현실에 적응'했다고 말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이상의 실현을 위한 기본적인 원칙을 파괴하는 폭력에 가깝다는 점이. 선이 악을 멸하기 위해서는 선의 집단이 내적으로 응집/단결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결국 개인의 이견 나아가 개인 그 자체가 집단이나 대의 속으로 파묻힌다. 이견을 내면 집단 린치가 가해진다. 뭘 위한 대의인가?)
영국 노동당과 우리나라 민주당의 상황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하지만 민주당이 훨씬 심각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부동산 문제로 사임한 앤절라 레이너 후임 노동당 부대표 경선에서 스타머와 주류가 민 브리짓 필립슨이 패배하고 비주류 연성좌파가 민 루시 파웰이 당선되었다.
물론 이는 노동당의 지지율이 가시적으로 위기에 처하면서 비주류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하지만 비주류가 유효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은 중요하다.
현재의 민주당이 이재명을 위한 (중국 공산당이 자기들의 독재를 표현하듯)'자발적' 패권을 열렬히 지지하는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민주당이 영국 노동당보다 훨씬 심각하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문재인에게도 상당 부분 돌아간다.
문재인은 노무현보다 훨씬 안정 지향적인 정치 기조를 택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의 정당성에 은폐되어 있던 문제가 민주당을 완전히 외골수적인 포퓰리즘 정당으로 변질시켰다.
문재인과 친문은 기울어진 운동장 시절 민주당의 입장 내지 본인들이 패권주의 프레임을 뒤집어썼을 때의 억울함을 친명에 투사해 온 것 같다.
단지 '그렇게만 가면 걱정이다' 정도로는 유의미한 이견 제시라 할 수 없다.
더구나 이재명과 친명은 역대 어느 주류 계파와 지지층보다 강경하고 외골수적인 집단이다.
동교동계 주도로 시작한 현대적 민주당계 정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김대중이라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강하게 뭉쳐야만 이길까 말까 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 이후 노무현이 일시적으로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 냈지만, 정권을 보수 진영에 빼앗기고 무엇보다 노무현이 서거했다.
계속 호남계와 친노가 분열적 양상을 보였는데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분당 이후로 새로운 차원에서 '단일대오'가 강조되었다.
새로운 차원이란, 보스보다도 팬덤을 기반으로 한 것 즉 말하자면 권위주의에서 포퓰리즘으로 단일대오 강조라는 집단주의적 경향의 문제의 차원이 바뀐 셈이다.
노무현의 자유주의는 한편으로 '반골의 허용'과 다른 한편으로 '자발적 통합'을 동시에 추구하는 어려운 길이었는데 문재인은 후자는 지향하면서 전자의 조건을 의도치 않게 악화했다.
결과적으로 보수 진영은 나쁘고, 그들을 막아야 한다는 집단의 대의만 남고 자기 자신(민주당 스스로, 정치인과 당원 스스로)을 되돌아보고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한다는 점이나 내부에서의 토론과 피드백 등을 활성화한다는 점은 지워져 버렸다.
여기에 대한 문재인의 책임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