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적(Liberal)'이란 어떤 의미인가

by 남재준

결과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과정'이다.


판결을 볼 때, 어쩌면 주문보다 더 중요한 건 '이유'이다. 그 이유를 엉성하게 마음대로 추측하거나 애매하게 요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막연하게 사법부를 공격하는 이들도 많다. 모든 언어적 상호작용에서는 발화자나 작자의 의도 등을 공격하기 전에 일단 그 메시지 자체를 살피는 것이 언어윤리라고 할 수 있다.


힘의 세계인 역사나 정치에서는 이것이 더 엄격하게 지켜질 필요가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권력자에게서 나오는 모든 메시지는 프로파간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가스라이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이 지적한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문자를 몰라서 처음부터 열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고 문자를 안 상태에서 더 교묘하게 속아 넘어간다.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류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기술이 등장하는 경우, 인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담론이나 여론에 대한 의심이 막연하게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이 최대한 독립적으로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려는 노력을 실제로는 하지 않았는데 충분히 했다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학력자 중에서도 속된 말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제도 교육의 충실성과 사람의 참됨은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점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알아 왔다. 심지어 지난 몇 년 간 우리나라에서조차 자유주의자를 자처한 이들이 그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과연 현상이 '정의(正義)의 종착지'일까, 아니면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른 분석이나 견해를 내놓지 못하거나 내놓더라도 유의미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무서운 고요'일까?


권력자가 스스로 어느 정도 다원적 판도를 구축하거나 역사의 무대 자체가 상대적으로라도 자유주의 원리가 전제되어 있지 않는 한, 대체로 그 당시의 여론이나 사료는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서술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는 단치 가치판단만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불가역한 과거를 재구성한 사실관계는 당사자가 진술하더라도 어느 범위와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당대의 1차 사료만으로는 안 된다. 역설적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진정한 역사는 모든 사건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역사의 역(歷) 자 자체가 '이미 지나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중에는 과장 좀 보태 블랙박스나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비슷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유주의적 세계는 인간을 양가적으로 본다. 기본적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이면서도 불완전한 존재라고도 보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형상을 한 피조물(Imago Dei)이면서 원죄자라고도 보는 기독교의 인간 이해와도 닿아 있다. 내 생각으로 인문(인본)주의(Humanism), 인도주의(Humanitarianism)나 인류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구분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자연 파괴에 대한 책임이 근대의 인류중심주의에 있는데 자유주의와도 연계되므로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에는 대단히 다양한 조류가 있고, 시대에 따라 매우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최소한 인간이 자기 존재의 조건을 스스로 파괴한다는 것의 비정합성에 관하여 동의해 왔다.


또 자유주의가 항상 공동체적 가치와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사회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지만 정확히 그 점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해 개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인류사회에서 개인에 대한 보존을 원리로 하여 양자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이 목적은 일시적으로 실현될 수 있어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구히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한다. 달리 말해, 목적이 달성되면 사라지는 것이 이데올로기라고 본다면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한다.


그래서 자유주의에선 기본적으로 사적 자치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이를 법을 통해 규율한다. 국가나 정치 권력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것을 분립시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 시장경제를 기본 경제체제로서 충실히 지지하지만, 동시에 복지나 규제와 같은 사회적 요소들을 가미한다. 법치주의가 형식적(Rule 'by' Law)으로 흐르지 않고 실질적으로 유의미하도록(Rule 'of' Law) 하기 위해 시민의 비판, 입법과 사법의 분리 등을 보장하고 장려한다.


자유주의는 메타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이데올로기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는 '여러 의견의 병존을 견디는 힘'과 '그러한 의견들을 공존시키고 대안을 향해 수렴해 가는 힘'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자율적 통합'이다. 자율적이라는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자유주의적 원리를 따르는 시민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존과 증진과 방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타인이 자신과 성격과 세계관과 언행 등이 다르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자도 어떤 사람을 '싫어할' 자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변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회적 린치를 당하거나 또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에 비례한 대가만 치르지 않는 경우를 지지하지 않는다. 또 가족이건 노동조합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시민사회건 간에, 어떤 사회집단이나 사회조직도 언제든 폭주하여 개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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