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경선제의 조건 그리고 당원중심주의에 관한 고찰

by 남재준

[돌발부록] 2025년으로 '철수' / YTN



1. 정당은 국가기관도, 시민단체나 회사도 아니다


정치과정/정책과정에 참여하는 정치주체에는 시민단체, 이익집단, 언론, 정당, 국가기관 등이 있는데 정당은 남다른 위상과 지위를 가진다.


정당은 같은 신념,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정당법 제2조) 결사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집약하고 공직 후보자 추천 등 정치적 충원을 하며 집권을 도모하는 사회조직이다. (헌법 제8조 제1항 내지 제2항)


또 정당은 국회의 의사일정, 의석 지정, 국회사무총장 임명,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운영, 이해충돌 안건 회피, 국회운영위원회 구성 등 국회와 정국의 운영을 위한 국회의원들의 집합체로서 20인 이상 또는 그 이하를 가진 각 정당이 결합하여 20인 이상을 구성해 교섭단체를 구성한다(국회법 제33조 제1항).


근현대 정치에서 정당은 국가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의 그에 준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대개 양당제의 경우 선거권자는 두 개 정당 중 하나를 고르지 않으면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고 피선거권자는 두 개 정당 중 하나의 후보가 되지 않는 한 주요 공직의 당선이 어렵다.


이러한 정당의 위상을 반영하여, 한편으로 법률을 통해 정당을 보호하면서 국가보조금을 지급하고(헌법 제8조 제3항), 동시에 정당의 목적이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부의 제소로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 여부를 심사하는 정당해산심판제도까지 두고 있다(헌법 제8조 제4항).


정당은 그 성립에 있어서도 중앙당과 시도당(정당법 제3조) 그리고 창당준비위원회(정당법 제5조)를 두어야 하는 등 쉽게 창당할 수 없고 요건과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정당은 고도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을 가지는 공적 성질을 가진 조직으로서 개인과 국가 및 시민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당은 사실상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므로 시민사회조직이나 회사처럼 내부 의사결정을 그 구성원의 총의로 한다는 일반적 의사결정 원리를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다.


2. 수권정당이 지니는 의의와 당원 중심 의사결정이 합당한 경우와 이유


통상 교대로 집권하는 수권정당의 경우에는, 정당 중에서도 특히나 강대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므로 그러한 정당의 당 대표라는 고위 선출 당직의 경우는 정무직 공무원에 준하는 위상을 가진다.


우리 정치문화에서 ‘영수 회담’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회담하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았고, 실질적으로 여당에 대하여 대항하는 정치 세력 중 제일 큰 세력의 대표는 여당 대표를 뛰어넘는 위상을 가지는 때도 많다.


앞서 언급했듯, 수권정당은 광범위한 지지층을 가지게 되고 정당이란 당원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사한 조직이므로 무조건 당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정당은 국가기관이 아니어서 항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에 따라 정치적 존립이 결정되므로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불가하고, 정치적 규범 같은 것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원내외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모든 정당에게 적용되는 규정에 있어서는 당원의 의사를 묻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소규모의 원내외 정당의 경우 당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당원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공격적으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이러한 소규모 정당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 전략의 견지에서 볼 때도 당원의 의사를 우선하는 것은 필요하다.


3. 국민참여경선제나 완전국민경선제가 필요한 조건


오래 고민해 본 결과,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유지/확대하거나 아예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건은 다음 두 가지이다.


A. 원내교섭단체(20석) 안팎인 정당(조건과 맥락에 따라 유동적 판단 가능) 또는 수권정당(최소 100석 안팎. 단 2번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국민참여경선제 등인가 아니면 당원 중심 의사결정인가 등은 유동적 판단 가능.)

B. 정치의 생활화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해당 정당 혼자서 장기간 우위에서 지배하지 않은 정치문화를 지닌 국가


그런데 여기에도 부가 설명 내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원내교섭단체가 20석인데 국민참여경선제 등을 도입하는 것이 무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프랑스 등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정국의 가변성이 큰 편인 일부 국가를 보면, 정당이 대권주자급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창당한 열린우리당(2003-2007)의 제16대 국회 원내 의석은 불과 47석밖에 되지 않았다.


노무현은 보스 정치인도 아니고 당내 기반도 모호했는데도 국민의 직접 신임으로 부상한 결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런 경우,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에서 중간 규모 정당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당원 중심 의사결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외연 확장을 위해 좀 더 많은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는 과거 국민의당(2016-2018)도 제20대 국회에 원내 의석은 38석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는데, 안철수라는 대권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기에 따라서는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이 합리적일 수도 있었다.


물론 같은 규모의 정당이라 하더라도 대권주자가 뚜렷하지 않거나 정치적 위상도 다소 모호한데 갑자기 교섭단체 정도 규모로 큰 정당이라면, 일단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당내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당원 중심 의사결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준 대강 100석을 넘어가는 수권정당은 두 번째 조건인 정치의 생활화가 이루어진 정치문화가 전제되어 있지 않은 한 반드시 국민참여경선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공직 후보자만이 아니라 당 대표 경선에 있어서도 그러하다고 본다.


우선, 수권정당은 매우 넓은 민심을 대의해야 한다.


물론 모든 민심을 대의할 수는 없고, 거칠게 말하면 예컨대 보수나 진보 중 하나의 입장을 취하되 거기에서 중도층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좀 더 뚜렷한 성향의 리더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중도적 성향의 리더를 택할 것인지 유연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버전의 보수 또는 진보의 가치나 사상을 지니고 있고, 보수 빅 텐트 또는 진보 빅 텐트 정당은 그 스펙트럼 안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제1야당인 경우, 당 대표는 단지 그 당을 대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상 나라 안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민심을 대표하는 셈이 된다.


그러니 단순히 당원 중심 선출을 취하는 것이 문제가 있게 된다.


하지만 수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당원 중심 의사결정을 취해도 되거나 그게 유리한 경우도 있다.


첫 번째는 정치의 생활화가 이루어진 국가이다.


정치의 생활화가 이루어진 경우, 지방 차원에서도 국민들이 마치 교회나 학교에 가듯이 자연스럽게 정당을 드나들거나 입당이 활발하거나 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당의 당원들과 일반 국민들 중 대개 그 정당을 지지하거나 기운 국민들의 의사가 크게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구태여 꼭 국민참여경선제 등을 시행해야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당원의 수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당원 참여의 일상성, 당원 구성의 국민 대표성, 당내 의사결정의 동원성 또는 자발성 양태 등 여러 가지 사정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양당의 당원이 수백만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는데, 이들 중에는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등 활동이 저조한 당원도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당원들은 여론조사처럼 무작위 추출 등의 기법을 써서 범보수층 또는 범진보층의 여론을 대표하지 못한다.


지지층 전체의 여론을 반영한 당 대표나 공직 후보자가 나와야 그 정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정치의 생활화가 되었건 그러지 않았건 사실 당원들은 참여와 동원의 경계가 모호하다.


수권정당은 이념보다도 권력을 두고 계파 보스들이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잦다.


어차피 이념은 거기서 거기이고, 결국엔 그 정당의 당권을 장악하면 정부나 국회의 권력을 수중에 넣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런 상황에서 정치의 생활화마저 되어 있지 않다면, 당원들은 그냥 열성 당원 중심으로 각자 지지하는 보스들을 위해 열렬히 활동하는 동원된 인적 자원에 지나지 않게 된다.


두 번째로, 수권정당이 당원 중심 의사결정 구조를 취해도 좋은 또 하나의 경우는 해당 정당이 그 국가에서 장기간 혼자서 우위에서 지배해 온 때이다.


아주 전형적인 경우가 일본 자유민주당이나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싱가포르 인민행동당 등일 것이다.


이 정당들은 이미 ‘국민정당’으로 자리잡고, 관료나 이익집단 등 주요 정치-사회-경제-행정-사법 등 제반 시스템을 움직이는 엘리트들이 이미 그 정당으로 다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구태여 국민참여경선제 같은 것을 도입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사실 우리나라 보수정당도 대강 한 10년 전까지는 일본 자민당만큼은 아니어도 이런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이 앞서가는 구도가 되었지만, 이건 아직 구조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이 하기에 따라서는 쉽게 뒤집어 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하는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정서나 DNA, 트렌드 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또 보수정당이 엘리트 중심 정당인 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개발 시대의 권위주의적인 잔향이 남아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는 엘리트 중심 국민정당이 아니고, 그냥 엘리트 중심 구세대 정당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권을 당원들의 의사에만 맡길 경우, 이미 강고해진 당내의 친윤이나 우익의 방파제가 없어지고 국민의힘은 스스로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게 된다.


4. 국민참여경선제는 만능이 아니다


국민참여경선제도 역선택 우려 등이 제기되는 건 사실이고, 설계에 따라 일반국민 참여 자체가 저조하면 역선택이 아니어도 지지층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으며 선동에 좌우될 가능성이 있어서 그 구체적 설계에서 여러 가지 사정과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사실은, 국민참여경선제 등은 수권정당이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고 나아가 번성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특정 조건부로만 필요조건이다.)


A. 수권정당으로서의 양적 조건

(a) 해당 정당을 지지하는 지역/세대/계층 등 기반, 국회에 보유하고 있는 의석수, 조직적/인적 자원, 물적 자원 등

(b) 해당 정당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와 대의

B. 수권정당으로서의 질적 조건

보수 또는 진보 ‘빅 텐트’를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성향의 중진/대권주자급 정치인들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

(+수권정당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인테그리티나 설명책임(Accountability) 등 성실한 정치적 태도와 윤리)


민주당의 경우, 지난 십수 년간 국민참여 반영 비율을 계속 높여 왔다.


그러나 민주당 자신이 꼭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남은 주자가 하필 이재명 말고는 전무했다.


국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해도, 정당에서 제공하는 선택지가 하나인 경우 의미가 없어진다.


참여도 저조해질 수밖에 없고, 그나마 참여하는 이들은 그 한 사람에게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결국 대의민주정치체제인 한, 범보수 또는 범진보 안에서 여러 스펙트럼을 대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태계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민참여경선제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생태계가 보장되어도, 실질적으로는 수권정당에게 요구되는 성실한 정치적 태도와 윤리의 최소선이 지켜지지 않으면 모든 후보들이 다 그냥 거기서 거기인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다만 여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이상론적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수권정당은 그 자신이 지배적 위치를 오래 점해왔거나 정치의 생활화가 충실히 이루어진 정치문화를 지닌 국가의 정당이거나 하지 않는 이상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민심으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위험은 단지 민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민주정치체제 하에서의 도덕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라, 일단 정당의 존재 의의 자체가 되는 정치적 이니셔티브 확대와 무엇보다 집권에서 멀어지거나 또는 일시적으로 반사적 이익을 통해 집권하더라도 지속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5. 국민의힘의 미래 : 당원 중심 의사결정은 비판적으로 검토해봐야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아직 스펙트럼이 비교적 넓은 편이다.


물론 비주류나 소장파에게 많은 발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적어도 민주당과 달리 국회의원으로서 유의미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했다.


또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일(e.g. 원내대표 경선에 당원 의사 반영)이 과연 ‘진보로의 진전’ 내지 ‘보수의 유연화’라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에 관하여, 제한적이긴 하지만 국민의힘이 더 합당한 의견이 나온다.


‘교섭단체로서 정당의 원내대표(교섭단체대표의원)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선출한다.’라는 상식 또는 원칙이 지켜지고는 있는 것을 보면.


그러나 민주당은 이미 브레이크라는 것을 스스로 뽑아내 버리고 액셀러레이터만 남았다.


국민의힘은 무력하고 귀를 막고 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민주당보다 나은 면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당원 중심 의사결정 구조로만 일관하겠다고 하는 경우, 국민의힘은 민주당 좋은 일만 더욱 한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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