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의 차원에서 – 기초법학을 넘어 ‘융합법학’으로
나는 본래 여러 학문에 관심이 많았는데, 궁극적으로 법학을 고르게 된 것은 물론 법 자체에 관심이 지대한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학문의 문법이나 체계가 내게 맞느냐를 놓고 볼 때 소거법을 써서 나온 결론인 점이 컸다.
무슨 말인가 하면, 법학은 대부분의 다른 인문학/사회과학 분야와 달리 정확하며 통일적인 개념과 정의가 필수로 전제되므로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법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유형학 등에 관해서는 2부에서 후술하겠다)
실정법학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해석과 적용의 대상이 되는 법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의 해석은 문리해석 즉 ‘말 그대로’가 제1차적 해석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자연과학과 수학의 관계와도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또 법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적용하는 사람과 준수하는 사람이 모두 일관되게 하나로 이해될 수 있어야만 최소한의 규범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가 항상 분명한 것이 아니고, 분명하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떻게 적용되는 것이 합리적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법(司法)과 법학이 유의미하게 된다.
실제 판결에서 언어 자체 차원에서의 검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나는 것은 대법원(전원합의체) 2022.4.21. 선고 2019도3047 판결 (추행)이다.
법정의견에서 제시된 것은 아니고, 김선수 대법관의 별개의견을 보면,
[현행 규정의 문장구조는 ‘군인 등(행위의 상대방)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구성요건적 행위)을 한 사람(행위자)은 2년 이하의 징역(처벌)에 처한다(군형법 제92조의6)’는 것이다. 이 문장의 통사적 구조상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이 수식하는 성분은 ‘사람’ 즉 ‘행위자’이므로 현행 규정은 ‘행위자’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통사 구조상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이 ‘행위의 상대방’을 수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행 규정은 ‘행위의 상대방’을 처벌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즉, 현행 규정은 행위자(A)와 그 상대방(B)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행위의 상대방을 조사 상당어 ‘에 대하여’로 한정하며, 나아가 상대방은 처벌하지 않고 오로지 행위자만을 처벌하는 것이다.
(중략)
반대의견은 2013년 군형법 개정에서 ‘군인 등에 대하여’를 추가한 의미에 대해 행위의 상대방을 ‘군인 등’으로 명시하기 위함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행위의 상대방의 신분을 한정하는 표현으로는 조사 상당어 ‘에 대하여’를 사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공동격 조사 ‘과’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13년 개정의 의미는 단순히 행위 상대방의 신분을 한정하였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한정을 공동격 조사 ‘과’가 아니라 조사 상당어 ‘에 대하여’를 사용하여 명시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는 위와 같은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 의미를 행위자의 의사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으나, 조사 상당어 ‘에 대하여’를 사용하고 있는 현행 규정의 문장구조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행 규정과 같이 조사 상당어 ‘에 대하여’를 사용한 경우, 그 상대방은 주어가 행하는 술어 행위의 영향력이 미치는 대상이 될 뿐이므로, (즉) 행위의 일방향성이 부각되므로, 주어와 대상의 상호작용성, 상호 합의라는 의미와 연관지어 해석할 수는 없다. 즉 조사 상당어 ‘에 대하여’의 의미로부터 두 사람이 상호 합의하여 행위를 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해석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결국 ‘에 대하여’로 개정된 현행 규정에 따르면, 행위를 한 행위자만을 처벌할 수 있을 뿐 그 상대방을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해석은 객관적으로 나타난 현행 규정의 문장구조와 규정 형식, 문언의 의미와 내용에 따른 것으로서, 설령 입법자가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입법자의 의도가 법 문언에 객관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이상 당연한 것이다.
(중략)
‘추행’에 대하여 표준국어대사전은 1)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 2) 강간이나 그와 비슷한 짓이라고 정의한다. 2)의 정의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반면, 1)의 정의에는 그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상호 합의하여 이 사건 행위 등 성적 행위를 한 경우 2)의 정의의 추행에 해당할 여지는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반면, 1)의 정의의 추행에 해당할 여지는 남아 있다.
(중략)
설령 현행 규정에서 사용된 추행의 의미를 1)의 정의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이 상호 합의하여 성적 행위를 한 것을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으로 평가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인식으로서 타당하지 않다. 무엇이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법조문은 통상적으로 문장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언어의 단위로서 음운을 제외하고 [형태소 - 단어 – 구 – 절 – 문장 – 문단 – 담화/글]로 다시 쪼개서 이해하거나 주성분(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과 부속성분(관형어, 부사어) 등 문장성분의 차원에서 상호 호응이 이루어지는지 등을 판단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해석할 수 있다.
또 기호논리 등을 통해 여러 현실적 전제를 건너뛰는 형식논리학이 아니라, 비형식논리학의 경우에는 언어학(한국법의 경우 국어학)과 더불어 함께 ‘메타법학’이나 법학방법론의 차원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를 존속한다 해도 의학부의 의예과처럼 ‘법예과’에서 다시 법학부로 이어지는 학과(부)를 신설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단순히 법철학, 법사회학 등 기초법학의 차원을 넘어 교육과정의 최소 50% 이상을 위에서 언급한 법학방법론(이는 보통 법철학 등에 흡수되어 연구된다)이나 ‘융합법학’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을 주로 다루도록 할 필요가 있다.
법학이 과연 기술적 성격으로서 다른 분야 위의 형식적 분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의 독자적 성격을 가지는 분야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어 왔다.
전자의 성격에 더 무게를 실은 결과의 하나가 로스쿨 제도라고 할 것인데, 미국에서는 본래 사법 작용이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학 자체도 그렇거니와 특히 대륙법계, 성문법의 체제를 취하는 국가의 사법에 대해서는 보다 독자적인 영역이 강조되어야 한다.
법학의 주요 시각과 내용이 되는 사법은, ‘법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라기 보다 ‘세계를 법으로 번역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번역을 하려면 해당 언어를 잘 알아야 하는데, 이때 법을 언어와 정확히 같은 것으로만 이해하면 사법을 쉽게 기술적인 영역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법은 고도의 가치, 규범 판단의 영역으로서 ‘번역’은 단지 비유일 뿐 법은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많은 사람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법실무가일수록 법에 대한 면밀하고 다각적인 검토 다시 말해 단순히 법(Law)이 아니라 그야말로 법학(Jurisprudence)이 요구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University of Chicago에 로스쿨과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일종의 연계전공 내지 융합전공으로서 1970년대부터 시작된 ‘Law, Letters, and Society’에 대해 호평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교에도 유사한 연계전공 내지 융합전공이나 다소 명실이 상이한 학부나 전공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로스쿨의 이론+실무+수험 교육의 삼중 부담을 완화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학부에서 기본 7법의 1차 이수를 하고, 로스쿨에서 연습/심화/수험의 2차 이수를 하도록 하면서 실무+수험 경우에 따라 전문법도 좀 더 살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검토해 볼만 하다.
물론 이것만으로 변호사시험 사교육 이용 완화 유도는 쉽지 않겠으나, 적어도 교수학습 부담 분산과 합리화라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종래의 학부 법학과 같이 단순히 기본 7법을 중심으로만 구성하는 것은 곤란하고 50% 정도는 기초법학이나 법을 대상으로 한 간학문적 연구 등을 다룸이 타당할 것 같다.
한편 학부 법학을 부활시키고 이를 100% 로스쿨과 연계하거나 의대처럼 예과-본과로 재편하는 등의 경우, 학부부터 법학 전공에 들어가야만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으므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니 일단 100% 연계하기보다는 학부 법학 부활 후 로스쿨 선발 인원의 1/4 내지 1/5 정도를 해당 전공에서 선발하도록 하고 그들과 비법학 전공 출신 로스쿨생의 학업이나 수험 성과 등을 비교하여 확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식으로 파일럿 내지 런칭을 하면 어떨까 싶다.
어차피 법학교육 입문 경쟁의 근본적 완화는 법조인이라는 직업 자체의 사회적 명예나 경제적 보상 등이 유의미하게 변동하지 않는 한 불가하다.
법조인의 위상이나 경제적 보상 등의 조건이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상황이어서 학부 법학과 사법시험 체제일 때 인서울 상위대학 법학과에 대한 진학 경쟁 그리고 현재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체제에서의 로스쿨에 대한 진학 경쟁은 모두 치열하다.
그러니 법조인 자체의 사회경제적 위상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 법학교육제도 자체만 놓고 볼 때는 경쟁 완화라는 점보다는 법학과 사법의 고유한 특질과 그에 맞는 인재를 제대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개혁됨이 타당할 것이다.
또 로스쿨 제도의 본 취지로서 법학에 대한 통합적 접근의 강화를 위해 종래 기초법학에 머무르던 것을 다른 학문 분야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융합법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대학 때 직접 이러한 ‘융합적 사고와 법’을 연구하는 그룹을 문이과를 가로질러 여러 전공자들과 함께 만들기도 했었다. 사회학x법학, 생명과학x법학 이런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