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연으로 보는 민주주의와 전문성 간 균형 훼손

by 남재준

지귀연 판사를 둘러싼 그간 논란의 본질은 ‘포퓰리즘과 시스템의 위기’이다.


정치는 민주주의로 돌아가고, 그것이 헌법상 정치체제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가 절대 선인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최근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프레이밍을 덮어씌워 개혁을 빙자해 몰아붙이고 있는 언론, 행정, 사법 등의 전문적 기능들이 민주주의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물론 전문가적 권위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다양한 정치의 논리 중 권력을 쥔 특정의 논리가 전문적 시스템을 압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질서와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만 가져야 할 생각이나 해야 할 말을 대외적으로 공공연하게 표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 행보를 펼쳐 나가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지귀연 판사의 사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피고인신문과 증거조사가 종료되면 검사의 사실관계와 법률적용에 관한 의견 진술이 진행되고(형사소송법 제302조), 그 후 피고인과 변호인 각각의 최후진술이 진행된다(동법 제303조).


다만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직권 또는 검사,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신청에 의하여 종결한 변론을 재개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305조).


법률신문 기사를 보면, 본래 지귀연 판사는 1월 9일에 피고인 측 서증조사 – 내란특별검사의 구형 – 변호인의 최종 변론 및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피고인 측의 증거(서증)조사만 12시간이 넘게 진행이 되어서, 1월 13일로 결심공판이 미루어진 것이다.


왜 뻔한 지연 전술을 그냥 용인하느냐 하지만, 무엇보다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고 그래야만 피고인 측의 장외 여론전에 대응할 명분도 있게 된다.


지귀연 판사는 13일에 공판절차를 모두 종결하겠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 판사와 피고인 측 간의 해프닝도 있었고 피고인이 졸기도 했지만, 그런 건 그냥 말 그대로 해프닝이고 어쨌든 판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원칙과 명분을 지키면서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장외 등에서는 감정을 투사해 일방적으로 지귀연 판사의 재판 진행을 공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명백한 근거가 없는 막연한 주관적 감정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공격 자체가 어려운 사건의 재판과 판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민주당과 지귀연 판사 간의 갈등의 시작은 윤석열이 피의자였을 때 그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 때문이었다.


소위 ‘날(日)과 시(時)의 법리에 관한 논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건에 관하여서는 당시의 지배적 여론과 감정이 민주당 측에 기운 면이 상당히 커서, 정작 지귀연 판사의 입장에서 균형적으로 살펴보려는 경향이 적었다.


기본적으로 형사절차는 한편으로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그에 따른 적절한 법적 해결을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이 수사기관에 의하여 침해되지 않고 재판에서 충분히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원리를 따른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종래까지 장기간 실무상 관행이었다는 피의자 구속기간의 ‘날’ 기준 계산은 피의자 이익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구속 초일을 뭉뚱그려서 1일로 보면, 예컨대 초일 오후 10시에 구속기간이 시작된 사람은, 10일(형사소송법 제203조) 차 되는 날의 자정에 구속기간이 종료된 것으로 보는데 그러면 ‘시’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는 2시간을 부당하게 더 구속되어 있게 된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 본문에서는 기간의 계산에 관하여는 시로 계산하는 것은 즉시부터 기산하고 일, 월 또는 연으로 계산하는 것은 초일을 산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단서에서는 시효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만약에 시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초일은 1일이 되는 것이고 그로부터 10일 차가 되는 날이 10일이 되는 것은 같은데 다만 그 하위 단위인 시에서 정확히 말해 10일 차의 어느 시점에 구속기간이 종료되는 것으로 보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따라서 지귀연 판사의 해석이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 단서에 반드시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경우, 실무상의 관행을 위한 법적 안정성과 피의자의 이익을 위한 정의 중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느냐를 놓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법은 체계 내부적으로 위계성을 지니므로 하위법령이나 그에 따르는 실무는 어디까지나 법률과 그에 대한 유권해석 특히 판결이나 결정 등을 본위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 세계 모든 선진국의 사법(司法)의 역사를 볼 때, 큰 사회변동이나 행정/정책변동을 요구한 판결이 매우 많다.


사법은 기본적으로 사후 평가적 성질을 지니는 제2차적 작용이지만, 동시에 사회/정치/경제/행정/정책 등 제반 제1차 작용들은 규범적으로 법보다 우선할 수 없다.


그러니 만약 이 사안 판단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실무적 관행의 유지를 위해 상위법의 유권해석이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게 되는 경우 사법의 왜곡이다.


게다가 실무적 관행을 유지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결국 윤석열의 구속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바쳐진 것이다.


사법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사전적 또는 정치적 판단 등에 구애받을 수 없고 받아서도 안 된다.


결론적으로 피의자의 구속기간 종료 이후에 공소제기가 이루어졌는데 피의자의 구속이 지속되고 있는 경우가 되므로 이는 형사소송법 제203조에 위배되어 피의자를 석방하는 것이 타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속취소청구 인용에 대해 몇 가지 배경 차원에서의 의혹이 제기된다.


그중 하나가 이전에 지귀연 판사가 집필에 참여한 주석 형사소송법에서는 ‘날 기준 계산’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은 매우 방대한 법률이고, 주석 형사소송법은 총4권이며 여기에는 십수 명의 판사들이 참여했다.


피의자의 구속 관련 규정에 관한 주석을 집필한 사람이 지귀연 판사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설령 그가 집필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집필 당시의 일반적 판단과 구체적으로 큰 의의를 지니는 사건을 담당해서 해야 하는 판결은 다를 수 있다.


또 개인의 의견은 변동할 수 있는 것이며, 거기에 어떤 이해관계가 개입되었거나 하다는 점이 명확하지 않은 한 의견 변동만 가지고 비판할 수는 없다.


한편 예측가능성을 드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7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구속기간에 날 기준 계산이 적용되었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시 기준 계산을 적용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과론적인 얘기고, 본래 사법은 기계적이고 완전한 작용이 아니다.


사법은 본질적으로 계속 그때의 타당성 내지는 합리성 등의 한계에서 판단하게 되고, 후에 이를 시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 시정 자체가 사법의 사명 중 하나이기도 하며, 꼭 사법만의 사명이 아니라 입법이나 행정 등 모든 공적 작용의 사명이기도 하다.


이제까지의 관행이 잘못되었다면 앞으로는 개선해야 한다고 하는 게 맞는 것이지, 딱히 관행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규범적으로 압도하지 못했는데 단지 이전에 잘못되었으나 이제까지 그렇게 해 왔으므로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과정적 정당성 내지 예측가능성의 문제 같은 것을 제기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 재판에서 기습적으로 결정하기보다 학회 등을 통해 우선 공론화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도 결과론적인 얘기다.


피고인의 신분에 따라 판결이 바뀌게 되었는데, 이는 실제로 사건이 크다 보니 그만큼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던 쟁점이 나와서 문제가 된 것이다. (한편, 윤석열이 피의자이고 그의 변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주장을 일단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릇되다.)


지귀연 판사가 그 사건을 맡게 되어서야 비로소 그 문제에 관하여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면, 반드시 공론화를 거쳐야만 한다는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가장 결정적으로 지귀연 판사의 의도를 함부로 단정하고 이를 결정이나 판결로 연결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가 윤석열에게 ‘특혜적 사법’을 베풀 지연, 학연 또는 기대이익 등이 그다지 없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후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해서 지귀연 판사는 사실상 민주당 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해석을 내지 않았는데, 이는 마지막 남은 특혜적 사법 의혹의 근거가 되는 정치 성향의 사법 개입에 대해서도 최소한 의문 부호가 달리게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결정은 어디까지나 하급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검찰에서는 형법 제97조 제4항의 구속취소결정에 대한 검사의 즉시항고 가능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했다.


근거로서는 헌법재판소(전원재판부) 2012.6.27. 선고 2011헌가36 결정에서 법원의 구속집행정지결정에 대하여 검사가 즉시항고할 수 있도록 한 구 형사소송법 제101조 제3항이 헌법상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일단 현행법상 구속취소결정에 대한 즉시항고가 가능하다는 법적 근거가 있고 그 즉시항고 자체의 가능 여부도 함께 판단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 사건은 유신체제 때의 검사의 위헌적 권한 행사와는 별도의 맥락에서 상급심에서 한 번 더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 결정은 하급심이므로 실질적으로 말하자면 상급심에서까지도 인정된 법리 내지 의견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을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분명히 언급했다.


그런데 검찰이 어찌되었건 포기를 해서, 사건이 들어와야 판단을 할 수 있는 법원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의견 표명 기회가 막혀버렸다.


검찰이 비록 항고 포기를 통해 결과적으로 윤석열이 석방된 것으로 인하여 딱히 이익이나 손해의 관계가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의도적으로 항고 포기를 할 만한 동기 정도는 있었다.


그러니까 이 건은 사실 검찰에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고, 지귀연 판사의 경우에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안 되는’ 판결이라는 식으로 몰아가거나 심지어 판사 개인의 의도 등을 가지고 프레이밍하는 건 결정적으로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더 나아가서는 판사 개인의 룸살롱 접대 의혹 등까지 막연한 근거만 가지고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정치적으로 선동을 했다.


정치권은 매우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장이며, 사법보다 훨씬 더 실질적으로 국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단이 많다.


사법부는 민주적 대의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신뢰에 손상이 가면 회복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도 독립적 영역 보장이 중요한 것인데, 민주당의 포퓰리즘이 이를 완전히 손상했다.


민주당은 헌법 수호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헌법을 자기 세계관 하에서의 제거 대상들을 몰아붙이는 도구로 쓰면서 감탄고토와 비슷한 식으로 사법을 대한다.


사실 이는 비단 사법만이 아니라 언론, 행정 등 다른 전문 분야에 대해서도 매한가지이다.


후의 내란전담재판부법안에 이르러 이러한 민주당의 비뚤어진 세계관의 극치가 나타나서, 구체적 사건의 처리를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그대로 분출했다.


민주당은 사실상 어떤 의도나 사실관계 등을 다소 막연한 정황 증거만 가지고 이미 확정된 것처럼 소란을 떨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비이성과 포퓰리즘으로의 이동이다.


설익은 정의를 가지고 선동을 하다 실질적으로 정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법치주의 무엇보다 국가사회적 안정성이 침식 및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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