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제명, 자폭 버튼을 누른 보수정당

당의 '생존'보다 '당심'이 더 중요하다는 국민의힘 지도부

by 남재준

국민의힘 당규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징계의 사유는 다음 각호와 같다.

1.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하였을 때

2.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하여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하였을 때

3. 정당한 이유 없이 당명에 불복하고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당의 위신을 훼손하였을 때

4. 당 소속 국회의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음에도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기일에 불출석하였을 때


동규 제21조(징계의 종류 및 절차) 제1항에 따르면, 징계의 종류에는 제명, 탈당권유, 당원권정지, 경고가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당무는 엄격한 사법절차라기보다도 불가피하게 정치적 고려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규정 자체가 모호하기도 하고. 그 정치적 고려는 당의 통합과 민심에의 호소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지, 특정 방향으로 편향된 사실관계나 가치판단 또는 당심에의 호소 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면 당의 미래가 암담해진다.


12월 30일에 당무감사위원회가 2024년 11월 제기된 당원게시판 의혹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당무감사위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등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글까지 포함한 문제의 계정들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논란이 된 글의 87.6%가 단 2개의 IP에서 작성되는 등 여론 조작 정황이 확인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있다. 국민의힘 내부가 문제가 아니라 대외적으로 보면, 한동훈 전 대표는 어차피 자기가 끊고 싶어도, 그리고 좋건 싫건 간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연계를 끊어낼 수 없다. 물론 한동훈이 당대표에 취임한 이후 이전보다 뚜렷하게 한동훈과 윤석열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바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윤석열이 일방적으로 한동훈을 극단적으로 불신한 것이지, 한동훈 본인은 현재까지도 윤석열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말하고 있다.


(*사실 윤석열의 그러한 피해망상과 불신은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이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하락하고 또 다시 민주당에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내준 상황이었다.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그랬던 것처럼, 싫다고 해도 이재명에게 정권을 내주는 것보다는 한동훈을 중심으로 차별화를 통해 보수진영을 재집권시킬 수 있도록 하는 길이 나았다. 레임 덕에 처했던 상당수의 역대 대통령들이 탈당 등을 통해 여당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주려는 선택을 해 온 전례들이 있기도 하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처럼 예외도 있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당적 보유 여부 자체가 아니라 그게 당의 이미지 변화나 이를 통한 선거 승리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느냐니까.)


어쨌든 윤석열은 국민의힘이 배출한 대통령이고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 재임 초에 정권의 황태자나 매한가지였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재임 내내 90도로 허리를 숙이고만 있었기 때문에 윤석열을 통제하기는커녕 윤석열, 그리고 그를 따르는 당원들의 의중에 맞추는 것이 당이 사는 길이라고만 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윤석열이라는 개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가 한 계엄선포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경고용이었건 뭐건, 그 선포 자체가 근본적으로 판을 깨고 헌정 위기를 가져왔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국민 다수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러한 점에 관한 한동훈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


단순히 옳아서만이 아니라, 그래야만 유승민도 말했던 ‘중수청’ 즉 중도층-수도권-청년을 끌어들일 수 있고 그래야만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수렁을 극복하고 현명하고 현실적인 정책 중심 보수정당이 되지 못하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의 미래는 없다.


좋건 싫건 어떻게 퇴임했건 간에, 대통령을 배출한 ‘여(與)’당은 응당 정치적 책임도 대통령과 '함께' 지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의 정당들은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당장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당명개정으로 연막을 치는 등 미숙한 행태를 보여 왔다. 권력은 가지고 책임은 회피하겠다는 빤히 보이는 심보에 아무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새 당명도 오래 가지 못하고 또 당명만 고치는 식이 반복되었다. 특히 보수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오히려 더 내부 상황이 악화되었다. 인물-보스 중심의 후진적이고 단절적인 정치를 해 왔으니, 사실 한국정치에는 일관된 '전통'이라는 것도 모호하다. 그냥 큰 틀에서 한 진영으로 '분류'되는 것이지.


2024년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은 마땅히 비윤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도 현실적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무조건 척질 수 없고, 그래봐야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대통령을 배신’, ‘당원의 의지를 거스름’ 운운하는 친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당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보면 매우 근시안적이고 악의적이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을 배출한 것이지,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소유자가 아니다.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고 정당과 당원은 이를 위해 존재한다.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너무 심각한 수준의 상황까지 오게 만들어서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


나는 한동훈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동훈 말고는 당장 달리 보수온건파의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한동훈이 윤석열을 찌르는 경우 대외적으로 신망이 더하기 전에 지금 나타난 바와 같이 당에서 먼저 매장당했을 것인데 댓글 조작 같은 것을 벌일 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한동훈 본인이 윤석열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인 바도 없다. 박근혜에 대한 유승민의 감정과도 비슷했고, 이 감정을 수용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관용이라도 하지 못하면 보수정당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한동훈에겐 윤석열을 ‘모해’할 주관적 감정도 객관적 동기도 딱히 없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법이다. 한 방향으로 굉장히 강하게 뻗어 있는 국민의힘 내의 전체적 여론 구조를 볼 때, ‘여론 조작’이라는 것이 가능했을까? 설령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그렇게 했다손 치고, 한동훈의 가족이 여기에 포함되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동훈 본인이 여기에 관여했다는 점의 입증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건 연좌제보다도 더 악한 결과가 된다. 의심스러울 때는 의심받는 자의 이익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 합당할 것이고, 또한 정치적으로도 그렇게 해야 당내에 불필요한 파장이 없다.


정 징계를 하고 싶었다면 맨 처음에 언급했듯 당규상 경고라던가 하는 수위도 가능했을 것이다. 실은 그렇다해도 ‘가족 단속을 못한 죄’라는 황당한 사유이긴 하지만. 당에 위해를 가하거나 민심을 이탈시켰다거나 당의 위신을 추락시켰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무도 국민의힘의 모 당원들이 자기들끼리 당원게시판에서 떠들어 댄 일에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이 당무감사나 윤리위 등 한동훈을 제거하려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당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있다. 한동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보기엔 이미 국민의힘은 콩가루 집단이다.


요컨대, 당무감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윤리위원회의 징계는 매우 부적절하다. 이 사안의 처리 자체의 조리에의 부합 여부에서나, 이 징계가 당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서나. 사실상 내심으로 이미 한동훈이 잘못했다는 확증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당심을 얻겠다고 민심을 저버린 셈이다. 보수정당의 미래가 암담한 이 상황에서까지도. 국민의힘은 자폭 버튼을 눌러버렸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5개월여 뒤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무난한 승리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민주당의 착각에 기반한 의기양양은 계속 기세를 올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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