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스타트업·벤처 열풍 시대 만들어 가겠다 | 한국경제
[박수남의 폴리코노미 2] 이재명 대통령 일자리 정책..."사람을 위한 노동 vs 시장을 위한 노동, 공존 해법은?" < 정경유책 < 기사본문 - CEONEWS
이 대통령 "6대 핵심분야 구조개혁…잠재성장률 반드시 반등시켜야" - 정책뉴스 | 뉴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재명과 민주당은 집권을 하겠다고 90년대-2000년대에 민주당이 이미 집권하는 데 써먹은 창업, IT 이런 담론을 다시 들고 왔다. 재정을 풀어서 국가 주도로 전략 산업이나 지역 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정책도 나왔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때 노동시장 유연화의 상쇄안(?)으로서 제시된 창업이나 중소기업 증진 이런 것들이 실제로 고용 제고를 얼마나 가져왔는가?
모든 사람이 창업을 하거나, IT 산업에 뛰어들거나, 양질의 중소기업 고용이 넘쳐나거나 그런 일은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IT 산업의 본질적 특성과 그전의 근대 공업과의 근본적 차이를 진지하게 감안할 때가 되었다. 직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전하고 적정한 경쟁을 통해 인적 자원이 비합리적으로 배분되는 것을 막으며, 사회적/공적으로 필요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분야를 지원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나머지는 기업과 금융권 등이 자기책임을 통해 감당할 문제이다.
민주정부 10년은 신자유주의적 구조화의 문제를 강도만 완화했을 뿐 근치는 하지 못했다. 결국 정치적 프레이밍엔 유리했을지 몰라도, 일자리 창출과 포용사회를 중시한 문재인 정부보다 시대에 맞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이미 실패한 패러다임을 재탕한 셈이다. 좌파적이라고 떠들건 말건 정말 중요한 문제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이 그리 압도적 권력을 쥔 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원칙과 실용은 알고 보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실용 없는 원칙과 원칙 없는 실용은 모두 공허하고 어떻게 보면 해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은 구조개혁 방향은 통합되어 있지 않고 각 영역에서 기존에 제기되어 왔던 원론적인 수준의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동문제와 별도로 고용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집중 의지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노동권과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은 고용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유의미하다. 고용의 양과 질 그리고 서민 가계에 대한 구조적 뒷받침이 구조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 그리고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패러다임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그 노스텔지어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도약을 꿈꿀 수 없다. 고용 없는 성장과 워킹푸어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근본적 문제가 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출생-고령화 등에 따라 노동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와 유관 산업 등에 보다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또 직업훈련과 고등교육을 적정히 분리하고, 대학 교육과 화이트칼라에 대한 경쟁 과열을 합리적으로 분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과거에 이미 계속 사용되어 온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체계화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스매칭 및 고용 빙하기와 불안정노동에 처한 청년, 일-가정 양립에 있어서 아직 개선이 필요한 많은 가계, 노후보장의 부족으로 정년이 무력화된 장노년층, 세대를 가로질러 계속 증가 추세에 있는 1인 가구를 비롯한 다양한 가족 형태 중심으로의 가족제도 개편에 맞춘 사회보장 개편 등이 복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노동이 자동화되고 있는 상황은 종래에 이어져 온 진보-보수 논쟁이 그다지 의미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제반 경제활동을 인간이 실질적으로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앞으로는 가시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IT기술의 발전 추이를 보면, AI와 로봇공학기술 등은 현행의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체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 알아서 사회경제를 내적으로 붕괴시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무슨 증세나 규제완화 등 방법론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가지고 가서는 ‘이재명 정부가 좌파적 정책을 현실적 방향으로 수정했다’ 이런 바보 같은 자화자찬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생산성을 높이고 중진국 마인드의 선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자신의 개성을 시도하고 역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구조와 문화가 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자기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회적 편견이라던가 비합리적인 구조적/제도적 장벽 등이 가로막고 있다. 이는 대개 교육제도와 문화의 문제로서 이를 혁신해야 한다.
임윤찬이나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는 구조적/문화적 토양에서 규제완화나 미시 보조를 계속 강화한다고 근본적으로 무엇이 나아질 거란 기대를 할 수는 없다. 예술가가 편안하게 나올 수 없고,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못하며, 혁신적 기업가가 튀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지원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자기 꿈을 펼치고 실현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크고 부당하며 불합리한 구조와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중에서도 유독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건 아마도 소국으로서 계속되는 시련에 맞서 왔고 또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전한 자유주의 사회가 된 지도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봉건제에서 식민지로 다시 군사독재로 그 뒤에도 사회문화적 권위주의나 집단주의는 잔향이 계속 남아 있다. 여기에는 북한, 일본, 중국, 미국 등 내부적으로 따라잡거나 방어해야 한다거나 하는 외세에 대한 경각심이라던가 내적으로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나 ‘군정 타파와 민주화’에 대한 집념 등이 있었다.
이 과제들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건 대단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우리 안의 ‘개인’은 지워지고 뒤틀리고 구속당했다. 이기주의나 보신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 사회가 되려면 결국에는 구조개혁과 문화변동이 필수이다. 이는 기술 발전과 신냉전 등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개인이 구속당하지 않는 문화와 시스템을 가져야만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본다. 선진국은 물(物)만 발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라 반드시 문(文)이 따라가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