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탓하지 말고, 본인들을 돌아보라

통치구조 개헌에 대한 좀 다른 시각

by 남재준

나는 개헌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형태' 내지 '통치구조' 개헌만을 중심으로 하는 개헌에 대해 그렇다.


윤석열의 경우를 낳은 게 정말 대통령제 때문인가? 또 이전의 대통령들이 비극적으로 끝난 경우가 많은 것이 대통령제 때문인가?


내가 보기에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통상적인 대통령제를 두고 있음에도, 정치문화에 있어 40년 가까이 강력하고 깊숙하게 영향을 끼쳐 온 신대통령제적 자취가 남아 있다. 이는 보스정치와도 직결된다.


본래 법 특히 통치구조를 규정한 헌법의 부분은 정치적 차원에서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만약 의원내각제로 바꾼다고 하면 민주당 대표가 총리가 되고 민주당 의원들을 주로 내각이 구성되면 뭐가 달라질까? 또 이원정부제로 바꾼다고 하면 동거정부 같은 것이 구성된다 해도 이재명이 대통령이고 장동혁이 총리가 되면 뭐가 다를까?


정치, 입법, 정책은 창조적이고 형성적인 것이다. 헌법을 의식하지 않고 통치를 한다는 것은 불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면에서 헌법을 정확하게 따른다는 것은 불가할 뿐만 아니라 헌법이 법문 그 자체로 그러한 통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법치주의나 입헌주의가 강조되는 이유는, 법이란 준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은 본질적으로 강제력을 정의적 요소로 하지만 그 강제력은 결국 합의건 권위건 전통이건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법은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사람에서 끝난다.


이는 거창한 인본주의적 모토 같은 게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므로 개선의 여지가 없이 완벽한 문화란 없다. 하지만 만약 어느 정도 양질의 정치문화가 있어서, 개선의 가능성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고 하다면 어느 정부형태가 더 나은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지금 정부형태나 헌법에 책임을 떠넘길 상황이 아니다. 우리 정치의 과거와 현재를 인식하고 접근하고 실천하는 태도나 언행 등이 종합적으로 모여서 오늘날의 문제를 만들었다.


과거의 대통령들이 나빴나? 좋았나?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김영삼 대통령은 완벽하게 군부 청산에 성공해 실질적으로 민주정치체제를 뿌리 박았지만, 개발독재 시절의 관치 기획 경제 구조를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고 결국 외환위기를 맞았으며 PK 맹주로서 지역주의 보스정치의 한 축이었다.


이러한 한 거물에 대해 한쪽은 그의 인격 그 자체에 대해서부터 내리 칭찬하고 신원하고자 하고, 다른 쪽은 내리 폄하하기 바쁘다.


과거의 문화에 꼭 나쁜 것만 있진 않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고 얼마나 실효성 있게 수습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사고 공화국'이었던 시절의 문민정부는 대통령의 사과와 관계 장관 등의 사임 등의 정치적 제스처를 놓고 보면 세월호나 이태원의 경우보다 나았다.


대통령들이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끝을 맺은 건 대통령 본인과 우리 정치문화가 합쳐진 탓이 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비극적인 끝'이라는 것도 노무현이 압도적으로 큰 이미지이고, 이명박, 박근혜와 윤석열이 뒤를 따른다. 퇴임하고 욕을 먹는 건 어느 정부수반이나 똑같다는 점에서 보면, 김영삼/김대중/문재인의 경우는 무난했다.


노무현의 경우에는, 본인의 탓이라기 보다는 민주당 정권 10년과 노무현 5년의 '코드의 반란'에 대한 대대적인 백래시라는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와 윤석열의 경우는 그냥 본인들이 부적절한 사고와 처신을 했고 무엇보다 그들을 결사 옹위하는 보스정치문화라는 배경이 있었다.


이명박은 대통령으로서의 무언가가 문제였다기 보다는 묵혀져 있던 개인 문제가 커진 것인데, 이게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문화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인기가 있으면 일단 적당히 뭉개고 들어가고, 그걸 봐주는' 식의 문화가. 이재명에게도 비슷한 양태가 나타났는데, 만에 하나 나중에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되는 경우 또 대통령제 탓을 할 것이다.


같은 제도나 조직도 어떤 사람이 구성하며 어떤 리더십으로 굴러가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난다.


통치구조를 바꾸는 건, 예를 들어 게임의 룰을 하나 바꾸어 나타날 수 있는 한 가지 나쁜 경우를 없앤다던가 하는 정도의 효과만 낸다. 그게 전체적으로 정치나 정책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정치사회적 극단적 분열상을 생각해보면, 개헌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블랙홀 의제가 될 것이다. 정작 정치사회적 집중력이 강하게 필요한 사회경제적 구조개혁은 뒷전에 두고 통치구조 개헌에만 힘을 쏟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기본권 개헌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포함될 여지가 있다. 말 그대로 헌법상 국민의 권리를 신장하는 일이고, 우리는 성문법 국가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헌법재판소의 파생 법리만을 동원해 기본권 보장을 증진하긴 어려우니까.)


정치인이건 학계건 어디건 간에, 헌법의 탓을 하지 말고 정치권 자신의 행태와 문화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않고 괜히 다른 곳으로 탓을 돌리는 것은 성숙함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책임조차 지지 않는 것이다. 보수정당과 민주당계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여기까지 왔다.


선거만으로는 정치인들을 제대로 정신 차리게 할 수 없다. 양질의 시민 감시가 있어야 하고 정치권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냥 선거 때에 맞추어 정치공학적 여론전이라던가 물타기라던가 마타도어라던가 이런 것들만 계속 난무할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이 제일 추하고 그 리더십마저도 지금의 정치권에는 없다. 여의도는 법원이나 정부나 공기업 등을 쥐 잡듯이 잡거나 통치구조 개헌을 말할 게 아니고, 스스로 문화적 차원에서 쇄신해야 한다. 리더십의 양태와 내용, 작금의 정치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앞으로의 민주정치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할 지 이런 부분들을.


국민과 민주주의를 성역화하지 말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자기자신에 대한 자성과 개선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헌정의 핵심은 결국 정치인과 국민이다. 그 책임도 정치인과 국민이 함께 지는 것이 우선이다. 헌법을 탓할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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