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통합과 학습 없는 갈등을 넘어

2020년대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의 병리 구조

by 남재준

Is South Korea’s New President Good for Democracy? | Journal of Democracy


1. 민주주의의 개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작년 6월에 게재된 신기욱 교수의 칼럼은 중요한 경종을 울린다. 계엄-탄핵 정국 이후 사회적 피로 때문에 묻혀버린, 우리 사회가 우려해야 할 최근의 패턴과 경향에 대한 경계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칼럼은 일면으로는 한국정치에 유의미한 경종을 울리지만, 다른 면에선 다소 맥락에 대해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면모를 보인다.


2024년 12월 이래로 2025년 6월까지의 흐름을 놓고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력과 취약점을 동시에 보여 왔다는 거시적 분석/해석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보수-진보 양 진영은 2016-2017 탄핵 정국 때의 기억으로부터 나쁜 것만 배웠다. 진보 진영은 ‘역시 저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선 안 된다’라는 생각을, 보수 진영은 ‘역시 우리는 스스로 낮추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그리고 양 진영을 가로질러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단결해야 한다(=그러기 위해 이견을 억눌러야 한다)’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 박게 되었다.


2024-2025 계엄-탄핵 정국 이후로 이재명의 민주당의 반사적인 명분상 우위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위기에 강한 국민’ 등 자화자찬은 있었지만, 정작 우리 민주주의가 드러낸 위험성과 취약점에 대한 냉철한 평가는 없다. 말하자면, 2022년부터 지금까지의 정치사회적 병리는 그냥 뭉뚱그려졌다.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국민의힘이 10년도 되지 않아 또 여기에 이른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사람들의 정치 참여 양상이 왜 더 극단적인 부분만 돋보이는지, 2016-2017 탄핵 정국 때와 달리 왜 헌정 수호와 이념 대결이 분리되어 보이지 않았는지, 과거 세대/이념 대결이 진정으로 유의미했을 때조차 있었던 ‘중도에의 수렴’ 현상이 왜 소멸했는지 등.


‘공수 교대’만 이루어지고, 민주당 중심으로 획일화된 진보 진영은 그냥 ‘일상으로 돌아가자’, ‘이재명을 지키자’, ‘윤석열과 부역자들을 청산하자’ 여기에 안주하고 반대로 억울함과 복수심에 불타는 보수 진영은 ‘부패한 좌파 독재에 맞서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 (일부는) ‘윤석열의 억울함을 신원하자’ 이런 레토릭으로 돌아갔다.


양당 사이에 완충 작용을 하거나 대안적 담론을 내는 세력이 소멸했다. 대선과 총선에서조차 독자 활동을 하지 않는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진보당은 민주당의 ‘위성 여당’과 다를 바 없고 정의당이 원외로 퇴출되었으므로 진보 진영은 사실상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입성 후 20년 만에 ‘멸망’했다. 개혁신당은 어디까지나 보수의 패러다임 교체를 중심으로 말하고 있고, 이준석은 극히 제한적인 지지층만 가지고 있을 뿐 세대나 젠더 등을 가로지르는 범국민적 호소력은 아직 없다.


언론도 사실상 독자적 비판 기능이 없거나 있더라도 존재감이 없고, 시민사회나 학계 등도 매한가지이다. 일반 국민들은 동원되거나 침묵하거나 거대 양 진영과 별도의 흐름을 추구하나 존재감이 없거나 셋 중 하나가 되어 있다.


2.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 민주당계 리더십에 대한 오해


한편, 신기욱 교수는 많은 ‘중도적’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김대중은 ‘통합의 지도자’로 노무현-문재인은 ‘분열의 지도자’로 이해하면서 이재명이 가야 할 길로서 두 경우의 수 중 ‘김대중의 길’이 맞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맥락적, 실체적 이해도가 다소 떨어지는 듯한 부분이 있다.


김대중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석방한 것과 DJP 연합을 이뤄낸 것을 두고 그를 ‘통합의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건 다소 의문스럽다.


우선, DJ가 중도적, 지역통합 이미지 등을 강조한 건 본인이 기독교적 신앙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였겠지만 무엇보다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착실하게 세뇌한 ‘김대중=위험분자’ 프레임을 어떻게든 탈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김대중이 맹주로 있는 호남 소외와도 연계되어 있었다. 서울과 호남만 가지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는 없었고, 이미 YS와 불화의 골이 깊어진 충청의 맹주 JP와 손을 잡는 길을 택한 결과가 DJP 연합이었다. 한국정치가 90년대에 ‘보수-진보’의 이념적 축이 아니라 ‘지역 맹주/보스’ 간 역학 관계라는 삼김시대에 있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또한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면은 김대중이 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건 그들을 적극적으로 코너로 몰아넣은 사정의 주도자는 김영삼이었다는 점이다. 김영삼은 이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이 군정 잔재 청산을 한 덕분에 김대중과 노무현이 있을 수 있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국민통합에 대해 김대중의 진심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김대중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무현이 김대중의 뒤를 이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건 김대중 덕분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내내 민주당계 정당과 한나라당은 긴장 관계를 유지했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장외의 학계나 일반 여론 등 바이브와 구도를 쥐고 있었다. 2000년(제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은 의석수를 늘렸긴 했지만 끝내 한나라당으로부터 제1당을 가져오지 못하고 패배했다. 노무현은 김대중과 별도의 비주류 영남민주계였지만 독자적으로 급부상한 말 그대로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보수 진영이 박근혜로 재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 이명박 덕분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정당을 먹여 살리니까.


노무현과 문재인의 시기에 사회갈등이 심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나쁘게만 볼 일인지, 그리고 두 사람의 리더십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가 많다. 물론 결과적으로 정치 리더십으로서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책임은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리더십은 두 가지 불가분인 양면을 가진다. 사회가 자유화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법과 세계관과 라이프스타일 등이 병존하게 됨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갑자기 공존이 되지는 않는다. 또 공존에 성공한다 해도 영구적이지도 않다. 달리 말하면, 자유주의 사회는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대가로 커지는 갈등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모두 ‘자율성’과 ‘통합’을 양립시키려고 했지만 어려웠다. 애초에 리더십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리더십은 리더십 주도로 권위를 통해 통합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고 된다 하더라도 다소 자기모순적인 것이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헤매더라도 사회가 스스로 자율적 통합을 향해 가는 길을 학습해가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그 스스로가 혁신적 사고방식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싶어하는 입장이었고, 문재인은 그 반대로 최대한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급적 대통령이 확전의 촉매가 되는 일을 피하려는 입장이었다. 어느 쪽도 통합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분열을 수습하진 못했어도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건 애매한 면이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스스로 분열을 최소한 미필적 고의로 자극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사회문화가 그것을 그렇게 받은 것인가?


예를 들어, 노무현이 ‘탄핵이냐, 사과냐’의 기로에 놓였을 때 정말 사과를 하고 그냥 탄핵을 모면했으면 그게 꼭 타당한 선택이었을까? 여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 개입에 적극적이었던 전임 대통령들, 그리고 노골적으로 당무나 선거에 개입할 의사를 은근히 보였던 후임 대통령들에 비교할 때 명확히 당정분리를 선언하면서도 대통령도 당원이고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중립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건 기만이라고 주장하는 게 근본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인가?


또 다른 예를 들면, 문재인의 ‘적폐청산’이 단순히 정적에의 ‘보복’이라고 일각에서 주장하지만, 인적 청산은 협의의 청산일 뿐 구조적 적폐(본인이 언급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와 연관하여)의 청산이 본질이었다는 점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박근혜에 대한 수사는 이미 박근혜 정부 말기에 시작된 것이고, 박근혜를 사면한 장본인이 문재인이었다는 사실은 왜 기억하지 않는가? 그리고 박근혜나 이명박을 사면하면 친정인 진보 진영이 난리를 치고 사면하지 않으면 보수 진영이 난리를 치므로 어느 쪽이건 통합은 요원할 것이라는 딜레마에 대해선 왜 언급하지 않는가?


또 두 사람이 보수 진영의 차기 주자를 잡아넣거나 한 일이 있었는가? (BBK 특검은 여당에서 쏘아 올린 스캔들이 아니라, 유력 차기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내부 대선 경선에서 튀어나온 의혹에서 이른 귀결이었다. 그나마도 이명박에 대한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 야당 탄압 운운했지만, 실질적으로 보수야당의 주요 주자 중 기소된 사람이 있었나? 윤석열은 대선 주자여서 제재를 받은 게 아니라 검찰총장으로서 제재를 받은 것이 대권주자로의 부상에 기여를 했고, 황교안이 시위대를 끌고 국회로 들어온 일까지 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는 말자.)


노무현과 문재인이 선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국에 대한 옹호라던가 이명박에 대한 수사라던가 여러 논란이 되는 선택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개별 선택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었을지언정, 애초에 노무현이나 문재인 자체가 이미 처음부터 분열자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던 상황에서 행동이나 선택이 달랐으면 뭐가 달랐을 것처럼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시끄러움’을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데 익숙지 않다. 그러니 차라리 이전의 권위주의적 ‘조용함’이 나았다는 식으로 가게 되지만, 실은 그건 퇴보이다. 선진 사회란 권위주의적 조용함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주의적 시끄러움을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통합하고 학습하는 방향으로 진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끄러움을 만들어낸 이들을 탓하는 건 미숙하다.


한편, 이재명은 노무현과 문재인에 비하기 어렵다. 그 스스로가 사고, 스타일, 언행 등 여러 면모에서 그다지 합리적 이유이나 변론을 대기 어려울 정도의 극단성이 많았다. 그런데다 더 중요한 건, 이재명은 거의 단 한 번도 비주류적 입장에서 손해를 입어 본 적이 없다. 비주류였을 때 친노-친문 주도 민주당 하에서 주류 핵심인 전해철을 상대로 경기도지사 공천을 잘만 받았다.


주류로 올라선 이후에도 그 리더십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만한 조직화된 당내 반대 세력도 없었다. 이재명에 대한 수사와 재판, 그리고 테러 심지어 계엄 등은 오히려 이재명이 그만큼 큰 존재가 되어 있다는 점을 방증하기도 한다. 이 행동들을 한 자들은 악의적이거나 망상적이지만, 이재명이 권력적 존재라는 건 그때도 지금도 사실이다. 2022년부터 현재까지 이재명은 대통령직만 제외하고 다 가진 입장이었고 지금은 대통령직까지 접수했다. 사실상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여지가 여론 외에는 없다. 그나마도 이걸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고.


이재명은 좀 더 온건하지만 성향이 뚜렷했던 노무현이나 문재인과 달리, 본래 좀 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진보 운동가적 행정가였다가 최종적으로는 방향이 모호한 포퓰리즘적 정치인으로 귀결된 케이스이다. ‘비주류 같은 주류’와 ‘행운아인 주류’는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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