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 시대 도래의 임박과 기성세대 정부의 헛다리

현대차 분규는 이재명의 'AI 주도 성장'이 가져올 결과의 일부일 뿐이다

by 남재준

현대차 노조, 로봇과 전면전... “노사합의 없이 1대도 안 돼”


이건 표면적으로는 노사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부와 공공에 경종을 울리는 사안이다. 실질적으로 노동의 자동화 문제가 수면 위로 아주 구체적 형태를 가지고 부상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정부와 정치권들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AI 주도 성장'의 결과는 바로 이런 것이다. 생산 효율은 증가하지만, 정작 안 그래도 위태로운 가계의 소득과 소비는 제대로 곤두박질친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내놓은 대안이라는 것이 '창업'이니 하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90년대 세기말 패러다임의 재탕이다.

(기술 발달을 중지해야 한다는 대안을 반드시 시사하고 있는 게 아니므로 그 지점을 언급하는 경우 논점 일탈이다.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러면 실천적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과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뭘 위한 성장이고 기술 발달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빅 테크 기업가라던가 금융인, 자산가, 지식인 등은 편하게 떠들어 대지만 과세 부담을 더 질 생각은 없고, 정치권과 정부는 정치적 후폭풍이 무서워서 증세 등 제반 구조개혁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한다. 되레 트럼프 행정부처럼 부채와 적자의 책임을 서민 가계에 돌리고는 부자 감세에만 열중하거나 유럽의 상당수 정권들처럼 이미 사지로 내몰린 서민 가계에 긴축을 강요한다.


또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경우들을 들고 와서는 (정말 이 근본적 전환/변화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기득권들은 놔두고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기득권 저항'이라고 프레이밍할까 두렵다.


AI와 로봇공학기술은 이전의 어떤 산업과도 다르다. 정규직이냐 아니냐 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를 거론하는 건 논점 일탈이다. 고용이 빠르게 자동화되는데 버니 샌더스의 언급처럼 세계적으로는 선진국들조차 AI를 기술 규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크고 사회경제에선 IT 기술 도입 때처럼 그냥 피할 수 없는 적응의 대상이라고만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 '적응'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행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한다고 하는 경우,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부분의 서민 가계는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으니까. 90년대-2000년대의 IT 기술도 실질적인 육체노동이나 지식노동 등을 온전히 대체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안은 그게 가능한 시대가 이미 거의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는 인류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자신의 삶과 세상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실존적 문제로도 직결된다. 말하자면, 'AI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거나 있게 될 거라는 건 객관적 진실이다. 그러면 그 이후의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적응', '직업의 소멸' 등을 태평하게 거론하는 사회경제 지도층은 정작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과 대책에 대한 언급은 없다. 결국 또다시 서민 가계에 대해 책임과 희생을 요구할 것인데, 현재 넘실거리는 포퓰리즘의 흐름이 보여주듯 그렇게까지 임계점으로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경우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에 관한 세계적 차원의 논의는 더는 SF 영화에나 나올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2000년대까지나 유의미했던 패러다임과 문제를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비용 구조 개편을 통한 비용 절감은 당연한 거니까. 노동이 저항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가계 입장에서는 생계 기반의 붕괴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정부와 공공이 최종적으로 뭔가 결단해야 하는 사안이고, 어쩌면 '의도된 비효율'이 정말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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