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민주당을 지지했을 적에는 개인적으로 가장 큰 호감을 가진 정치인 중 하나였다. 민주당이 소수파이던 시절, 그는 보수적 권위와 다수에 지지 않고 자신의 올바름을 끝까지 관철하려고 꿋꿋하게 걸어나갔다. 그로 인해 적도 동지도 많이 생겼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는 신념의 정치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사회운동가에서 정치인/행정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리더로서, 국정 역량 있는 수권정당으로 민주당계 정당을 만들어 나가는데 큰 공헌을 했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계 정당이 민주화 운동 야당에서 현대적 수권정당으로 여기까지 온 역사를 그 한 몸에 담고 있는 이이다.
그는 '국민과 더불어 민주화를 이룬 정당'을 넘어 보수정당으로부터 '자연스러운 여당'의 지위까지 가져오겠다는 신념이 강했다. 오늘날의 민주당은 학계, 관료, 금융인, 법조인 등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기성 정당이 되었다. 이것이 그의 유산이면서 또한 우리 후세대에게는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과 혁신'이라는 숙제라고 본다.
그는 '공적 사고'를 강조했다. 정치인은 '퍼블릭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를 정치공학적 전략가로 보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수단적 역량이었을 뿐 그에게는 뚜렷한 의리와 신념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에 끝까지 남았고 민주통합당 대표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위해 과감히 던졌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민주당계 정당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단점의 산 증인이었다. 찰스 라이트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 번역을 맡아보기도 했다.
여느 정치인처럼, 그는 정책이나 처신에 있어서의 실책도 많이 범했다. 교육부장관을 하면서 '이해찬 세대'를 만들어내는 등 오명을 쌓았고 이 덕분에(?) 민주당은 중등교육을 건드릴 생각은 지금까지 꿈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나 민주당계 정당의 잘못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오만하게 보이기도 했고, 언론이라던가 정신질환자 그리고 정적들에 대한 부적절하고 거친 언어 사용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말년에는 유튜브 시청을 적극 권하고 비판 없이 이재명을 적극 지지하는 등 오늘날 민주당의 구조적/문화적 적폐를 만든 근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의 세를 확장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문화의 기반을 민주당이 선거제도개혁 등을 통해 판을 바꾸겠다던 그의 구상은 실패로 끝났다. 그가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의원총회에서 한 말처럼 민주당이 만들어낸 바이브는 '트렌드'가 되었지만, 그의 정치는 정작 더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구조화'라는 정치적 대의에는 역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 완고한 태도는 그가 언급한 정치적 대의와 반대로 한국정치 특히 민주진보진영이 점점 민주당 중심으로 획일화되고 민주당의 성향이 제대로 된 원칙이나 목적 없이 강경해지는 데 기여했다.
이해찬은 오늘날까지 민주당의 발전과 적폐를 고스란히 체현한 이 중 한 명이었다. 민주당이 그의 죽음을 단순히 '큰 어른'의 죽음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혁신을 위한 경종으로 생각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