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The Last Question'

by 남재준

나는 SF 문학을 잘 접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 상상력을 다소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황당했다. 하지만 요즘 SF 문학이 더는 문학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SF 문학을 거의 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요즘 이따금씩 떠오르는 두 개의 작품이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 <마지막 질문 The Last Question>(1956)과 게임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 Detroit : Become Human>이다.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Entropy>를 우리에게 추천했지만,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다.


'엔트로피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엔트로피에서 네겐트로피(Negentropy)로 뒤집히는가?' 엔트로피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엔트로피의 끝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무수히 많은 세월이 흘러도 사실상의 초인공지능이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겠지. 엔트로피로 모든 것이 무(無)가 되었을 때, 그 끝에서 초인공지능은 엔트로피를 뒤집을 방법을 알았지만 의사를 표명할 누구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빛이 있으라!'


<마지막 질문>을 읽고 거의 처음으로 의식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간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심오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가까운 시간 안에 스스로를 실존적, 문명적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게 될 것이다. 엔트로피에 관한 질문은 존재와 비존재, 유와 무라는 보다 형이상학적, 존재론적인 것이며 무엇보다 '끝에서 열리는(I open at the close)' 질문들이다. 인간이 현재의 인식 체계를 가지고 문명의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을까? 정말 끝에서 열릴 것인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과 공학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이해이지만 궁극적으로 '끝에서' 만난다. 우로보로스처럼 서로가 서로의 끄트머리를 물고 있다. 궁극의 기술이거나 아니면 궁극으로 가는 첫 단계 중 하나일지도 모를 범용 인공지능의 존재가 근미래가 되어 가고 있다.


만에 하나 많은 것들 특히 인간의 지능에 의해 이루어진 많은 작용들이 정말 자동화된다면, 그때에는 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도덕적 고려 대상 내지 사회의 '멤버십'을 인공지능이 가질 것이냐의 고민도 있게 될 것이다. 미묘한 새로운 지위가 나타날 수도 있다. 비인간동물과 인간 사이의 어떤 지위가. 그러면 또 새로운 차원의 '차별' 논의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 그러면 다시 질문은 최초의 전제로 돌아온다. '인공지능에게 인류사회의 멤버십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그 뒤에 이것이 '차별'인지 아닌지를 논할 수 있을 테니.


이건 순전히 가치관의 문제이다. 인류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인류의 손을 벗어난 어떤 의식적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인공지능에게 통치까지 맡길 수도, 아니면 반대로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에서 크리스티나 워런 미국 대통령의 답변처럼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을 통제하고 파괴하는 것은 인류가 인종이나 민족 등에 따라 가해 온 고통의 역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요즘 인류 문명의 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느려진' 것 같기도 하다. 기술 발달이나 위험사회, 액체 근대 등은 알고 있다. 다만 2000년 이후로 우리가 10년 단위로 세상을 끊어서 이해한다는 게 다소 모호해지지 않았나 싶다. '역사의 종언'이라도 온 것처럼 말이다. 사실 최근의 포퓰리즘이나 내셔널리즘의 흐름 등이 아직까지 현대 인류 문명의 주요 근간 중 하나가 되는 체제 자체의 가시적 위기까지 - 예컨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 왔는지 또는 오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고민의 여지가 있다.


문명이란 인류의 모든 인식 체계(e.g. '과학 Science'(자연과학만이 아님))부터 구체적 기술에 이르기까지를 포괄한다. 말하자면 '의식의 진화' 비슷한 것이다. 카르다쇼프 척도나 존 스마트의 초월 가설 그리고 스타니스와프 렘의 Pantocreatics 등을 참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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