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 개악이냐 혁신이냐의 기로에서

by 남재준

"교수도 못 푸는 문제 왜 내냐고요?" 수능 내부자 12명의 고백


1. 교육에 관한 논의에 필요한 차원

우리나라와 같이 ‘레드오션 경쟁’이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단순히 순수하게 ‘AI시대의 역량’, ‘창의적, 통합적 역량’ 같은 것만 논의해서는 시험과 제반 교육제도나 구조의 평가와 대안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없다. 거국적으로 구조를 봐야만 교육의 실태와 현황을 알 수 있고, 이걸 알아야만 최소한 또 다른 왜곡이 없는 교육정책이 나올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무언가를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을 찾거나 하려면 문제의 이유를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의 당연한 상식이다.


2. 탐구력보다 노하우가 더 중요한 한국교육

나는 국제고를 졸업했는데, 주로 일반사회과(사회문화, 정치, 경제. 법학)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특히 응용성이 있는 분야라서 매력을 느꼈는데, 실제로 대학에서 결국 정책학과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유행의 상승세를 타고 있던 학생부종합전형이 아니라, 재수 즉 정시를 통해 대학을 갔고 그마저도 처음에는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다가 졸업한 학부로 옮겼다.

고등학교 때, 일반사회과의 과목들조차 내신 시험은 잘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사회문화 과목의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 노골적으로 사회계층과 불평등 단원에서 주로 출제되는 통계 문제가 거의 1/3 이상이 되고 주관식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물어보니 ‘가르쳐 줬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수능특강에서 다루는 몇 개의 통계 문항 정도를 다룬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는, 가르친 정도에 비례해 평가 문항이 출제되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대학에서의 통계학은 물론이거니와 고등학교 수학과의 통계 파트와 직접 연계된 것도 아닌데 통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가상 시뮬레이션’ 기반 ‘숫자 장난’을 사회문화에서 이렇게 많이 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깊었다.

이는 정치 파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능 법과 정치(2011 개정 시절이었다)에서 1등급을 맞긴 했지만, 이 과목에서 킬러문항은 다름 아닌 선거통계 문항이었다. 그것도 실제 통계가 아니라, ‘가상의 국가’에서 통계적 기반 없는 산수 노하우 중심으로 선거제도의 변화에 따른 정당별 유불리라던가 정부 구성 등 효과를 예측하는 계산 등을 하는 것이었다.

일반사회과를 포함한 사회과는 기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지향한다. 시민성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는 구성 자체는 좋은 편이라고 본다. 정치, 경제, 법 위주로 구성된 다른 나라와 다르게 ‘사회학, 문화인류학’을 다루는 독자적 과목이 있다는 건 중요하다. ‘비정치’, ‘비경제’, ‘비법’과 독립적인 사회적 차원 그리고 사회를 보는 이 여러 차원을 통합적으로 볼 줄 아는 시각은 필요하다.


그런데 앞서 내가 언급한 그런 문제 유형들이 정말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역량일까? 일반시민이 젠더 간 임금 격차에 대한 통계 계산을 해야 하고, 선거제도를 바꿨을 때의 정당 유불리 계산을 해야 하고 그럴까? 상식적 견지에서 보는 일반인이라면 그 답이 자연히 나올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중요한 부분과 역량과 시험적 의미에서의 중요한 부분과 역량이 나누어져 있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전자를 아예 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있어도 내신이나 수능에서의 킬러문항에는 속수무책이다.


과학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수능 화학은 그냥 논리퍼즐 비스무리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보았다.


수능에 이르게 되면, 과목당 고작 20문항에 시험지 분량 제한까지 있다. 이미 영어과에서도 ‘과연 이렇게 호흡이 짧은 영어독해연습이 도움이 될까 싶다.’라는 한 영어 선생님의 말을 들었었다. 영어보다는 문제당 지문이 대강 2배 정도 되지만 국어과의 경우에도 시름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하물며 사회탐구영역에선 글은 고사하고 문단이라고 말하기도 약간 민망할 만큼 지문이 짧다. 내가 수능 때 선택한 또 하나의 과목은 윤리와 사상이었는데, 이 과목과 더불어 생활과 윤리까지 도덕윤리과에서 1등급을 맞기 위해서는 몇 마디를 교묘하게 꼬아놓은 것을 어떤 사상가인지 맞출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3. 레드오션 구조의 중요한 단면


사실 이 모든 현상의 진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 출제와 응시의 구조 자체가 변별력과 입시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특목고는 성적 차원에서 ‘이미 걸러진’ 아이들을 모아 놓는 곳이다. 대입이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상위권 이상의 학생들이 모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설상가상으로 외고와 국제고들이 수능 준비나 열심히 시키는 학교가 되었다는 비판이 있은 지 1~2년쯤 지나 본격적으로 수행평가나 동아리 활동 및 대회 등의 활성화가 이루어진 때였다.


수행평가는 나름 도움이 되었다. 고3 때 생활과 윤리를 이수했는데, 과목에서 주로 다룬 건 아니었고 그다음 개정 교육과정에서 주로 다뤄지기 시작했지만 당시에 윤리 선생님은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프로젝트나 토론 수업을 열었다.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몇 년 뒤인 지금 보니 그때 사색을 처음 하게 된 건 큰 도움이었다.


하지만,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의 비중이 거의 비등했다. 또 과목별로 수행평가 부담이 커지는데 비교과 활동까지 챙겨야 하고, 지필평가 2-3주쯤 전에 시험 모드로 돌입하지만 이 시험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살인적 난이도를 자랑했다. 평가의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의 사고 내지 역량을 동시에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재수를 할 때에는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전공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니 일단 높은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하다.’라는 조언을 들었다. 국어-수학-영어의 감옥 속에 날개가 꺾인 듯한 나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별 수 없었다. 내 성적으로는 더 높은 대학을 가려면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그 뒤에 전과를 했다. 이런 현상은 많이 발견된다. 편입도 그렇고.


불합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내가 아니라 진정으로 영어학이나 영문학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한 사람이 내 자리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수능 이후에도 LEET, PSAT 등 최소한의 ‘자격’, ‘적성’을 본다는 시험 우후죽순 생겨났다. 평가제도개혁에 대해 토론하면 어떤 사람의 경우 본인이 소위 ‘급’으로는 나보다 낮은 대학이면서도, 다시 말해 현행 체제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상당하면서도 대수능이 그래도 기초 역량을 보지 않느냐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물며 제도의 수혜를 입은 승자들은 그 제도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해도 개선의 의지가 약하거나 없게 된다.


LEET의 경우, 재작년엔 생각보다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극악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난이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리트 시행 이후 대강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애초에 이 시험은 그전의 상위권이나 최상위권을 중심으로 극상위권을 선발하는 것 비슷한 식이 되어 있다. 더구나 변호사라는 전문직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인센티브와 수요가 있는 곳에 비즈니스가 있다고, 사교육이 자연히 고도화된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모의고사와 집중적 노하우 훈련을 출제진이 전부 감당해내는 건 어렵다.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AI의 등장은 이런 상황을 더 악화했다.


4. 그렇다면 수능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돌아와 수능에 국한해서 볼 때, 그렇다면 수능을 쉽게 할 것인가? 또 수능을 폐지할 것인가? 내가 단언컨대 그럴 수는 없다.


역대 교육과정평가원장이나 중등교사, 교육학자 등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듯이 수능이 놓인 구조와 맥락은 주체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렵게 출제해야만 하는 운명으로 시험을 끌고 간다. 학벌과 학력 인플레 그리고 수십 년간의 출제 자원 소모, 그럼에도 계속되는 레드오션 경쟁 등을 상기해보자. 이 구조나 환경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쉬운 수능’은 ‘상위권 고밀도’를 만들고 이는 소수점 아래에서 결정되는 식으로 수험생 입장에서는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상 유지를 전제로 할 때, 고난이도 수능은 ‘필요악’ 같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식으로 영어, 사회/과학 등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All or Nothing’ 즉 수능의 전체적-근본적 개혁과 그 배후의 구조 등을 바꾸지 않는 한, 그런 부분적인 변경은 오히려 해악이 된다.


실제로 영어과는 절대평가화가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많아졌다. 다소 모호한 위상의 과목인데 또 분량도 많고 난이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과목이 이전처럼 주요 변수의 하나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상대평가 전제로 볼 때, 과목이 적정하게 많은 건 포트폴리오 비슷하게 본다면 리스크 분산 같은 효과가 있다. 말하자면 한 과목이 약간 약해도 다른 과목으로 상쇄한다던가. 하지만 과목이 적어지면 그만큼 그 과목들에서 삐끗하면 큰일 난다는 출제진과 수험생의 두려움이 극대화된다. 결국 공부량만 봐서는 영어를 절대평가화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없다.


또 수능에서 과목을 줄이면 그나마 전공적합성을 측정하는 타당성도 더 떨어진다. 수능에서 사회문화를 선택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사회학과는 물론이고 예컨대 경영학과나 행정학과의 조직론을 맛보기로나마 경험해 본 셈이다. 또 아주 얕고 제한적이지만 ‘그 분야의 사고법’을 겪어본 것이다.


그러니까 수능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과목으로 탐구 영역이 약화하는 경우 그나마 보던 약간의 전공적합성 요소도 확실하게 약화된다. 더구나 내 기억이 맞다면, 본래 통합사회 과목에선 그 과목의 본질적 특성상 창의적, 융합적 사고를 요하므로 지식 암기 등이 기반이 되는 객관식 위주인 종래의 평가 방식만을 고수하지 않도록 교육과정에서 권한다.


수능을 폐지할 수도 없다. 해외나 이론에서의 모든 좋은 제도들은 ‘한국화’되는 순간 왜곡된다. 제도는 문화나 행태를 반드시 반영해 도입되어야 한다. 수시란 본래 학생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면서 남긴 자취들을 모아 평가하는 것인데, 평가 위주 과정이 되다 보니 거꾸로 일부러 자취를 남기기 위해 이미지를 만드는 식이 되었다.


통합적 인재니 하는 건 좋은 말이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환경상 그 말이 입시제도로 변경되면 이전보다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수능이나 자격시험 등 필기시험에서 노력 비례 성과가 본위가 되는 지식 위주 시험이 아니라 도구적이고 추상적인 ‘적성’을 위주로 재편된다면 노하우나 시험 당일의 컨디션 그리고 운 등이 부분적으로라도 유의미하게 작동하게 된다.


또 수시에서 전공적합성이 아니라 통합적 인재를 뽑겠다는 건 다른 차원에서 외피를 벗겨내고 보면 그냥 ‘범용 고지능자’, ‘엄친아 모범생’을 뽑겠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더 중요한 건, 이러한 모호함과 지능의 세계에 불평등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학진학률이 이미 매우 높아진 상황에서, 레드오션 경쟁이 전제된 시험은 어떤 형태이건 타당성이 크게 하락하는 등 불합리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수험생 입장에서는 도전해야 하는 시간이나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스트레스 등이 커지는데, 이를 오래 버티는 건 부모의 재력 등 가정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


수능에서도 사교육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적어도 수능은 어떻게든 자기 능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성질이 수시보다는 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능은 ‘재도전’, ‘뒤늦은 도전’을 허용한다. 학생부는 한 번 닫히면 영원히 ‘업데이트’할 수가 없다. 그러니 학생부 중심 전형은 재도전이나 뒤늦은 도전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수능은 타당성(측정 대상의 정확한 측정 정도)이 떨어지는 시험이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와 문화가 지속되는 한 수능은 그래도 존재 의의가 분명히 있다. 이 ‘필요악’을 없애는 방향은 안 된다.


5. 교육개혁에서 교육개악으로, 다시 교육혁신으로


근본적으로 어디부터를 바꿀 수 있고 어디부터를 바꿀 수 없을까. 예컨대 학벌은 문화적 요소도 크게 작용하므로, 내일 갑자기 ‘이제부터 서울대와 숭실대는 학벌 차원에서 급이 같다.’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입시 경쟁이 적정히 분산되고 학벌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정을 개정해야 할까? 하지만 교육과정은 그 자체로만 보면 나름 괜찮게 구성된 편이다. 최근 개정에서의 기초(국수영) 50% 상한 같은 제도는 잘 도입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문제는 현실적 맥락에서 그것이 어떻게 운용되느냐이다. 앞서 언급했듯, 평가가 과정을 지배하니까.


필기고사가 아닌 학생부 전형을 골라야 할까? 하지만 학교마다 인프라가 다르고 개인마다 계층적 배경 또는 정보력 등이 다르다. 이는 결과를 가지고 통계적으로 보정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보정은 어렵다.


물론 어떤 도구라도 경쟁이 적정 수준이면 도구 자체로는 이론상 기대되는 기능이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학벌이나 그와 연계된 레드오션 자체를 강제로 분산하거나 큰 규모의 분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인센티브를 교육정책이나 교육제도 자체 내에서 찾거나 고안해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교육과 긴밀히 연결되는 고용 차원에서의 학력이나 숙련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국 다시 수능으로 돌아온다. 수능을 혁신하고, 이를 전제로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능의 내용과 방식 등이 바뀌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실제 교수학습 현장, 그리고 대학입시와 최종적인 학생 구성 어쩌면 학사제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까지 주로 연구 대상이 되어 온 수능 개편 모델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도 이 시험을 주목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국의 A-Level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시험 모두 대체로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바칼로레아는 종합적이고 일반적인 교양을 강조하고 A-Level은 전공 중심의 심화 학습을 강조한다.


바칼로레아는 논술 시험이 위주이면서 동시에 구술시험이 존재하고, 공부 과목의 개수가 5-7개 정도라고 하고, 시험 기간이 보통 1-2주라고 한다.


A-Level도 논술 시험이 위주인데 구술시험은 회화 등이 중시되는 특성을 가진 외국어 과목 등 과목 특성에 따라 존재 여부가 다르고, 공부 과목의 개수가 3-4개 정도라고 하고, 시험 기간이 바칼로레아보다 긴데 모듈형(Module exam, 전체 과목을 여러 단위(unit)로 나누어 시험)으로서 대강 한 달 정도가 걸린다.


우리나라는 공통필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공통은 심화와 구분되므로 공통이 심화만큼 어려우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공통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공통과목을 앞세워 부당하게 난이도를 높이는 기만을 오래 세월 보여 왔다.


공통과목은 교육과정에서건 시험에서건 대학 교양이나 대학원 입시에서의 영어 성적 정도의 역할만 해야 한다. 정시에서도 절대평가, 입시 지원 자격의 P/F라던가 하는 정도의 역할만 해야 맞다고 본다. 에컨대 사회학과에서 독해나 작문 역량이 필요한 건 맞지만, 그걸 직접 보는 것도 아닌 객관식 시험이 혼자서 40% 가까이 차지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어과의 독서 영역의 경우 사회학적 사고와 그에 따른 통상의 문법이나 글의 전개 방식 등이 담긴 글만 보는 게 아니거나 심지어 그 분야가 출제된다는 보장조차 없다. 설령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어도 마찬가지이다.


경쟁이 계속 치열하다고 전제할 때, 여러 과목을 가로지르는 공통필수까지 논술 차원에서 열심히 준비해야 하고 이를 1~2주간 집중적으로 본다고 하면 공부량 부담이 너무 심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구성에서 반드시 공통필수를 줄일 필요는 없지만, 결정적으로 수능에서 공통필수를 너무 많이 요구하는 건 온당치 않다.

한편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볼 때, 구술 시험은 논술 시험보다 공정성 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냥 지식 설명 능력 같은 것을 묻는 거라면 꼭 구술일 필요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어떤 ‘창의적’ 답변 같은 것을 보겠다면 그건 면접관의 주관이 작용하게 된다


A-Level의 경우, 3-4개 정도의 과목을 평가하므로 상대적으로는 부담이 덜하다. 모듈형 시험으로 한 달 정도 기간을 두고 시행되는데, 단계적 시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1주차 Paper 1은 기초와 핵심(The Fundamentals, 앞부분 단원 위주) - 2주차 Paer 2는 심화와 연결(Specialization, 뒷부분 단원 위주) - 3주차 Paper 3은 통합과 에세이(The Synoptic paper, 과목 전체에서 광범위한/통합적 주제)를 다루는 식이라고 한다. 과목별로 시험 기간이 다르므로 자기가 선택한 과목에 맞추어 응시하면 된다.


A-Level도 상향 평준화 문제가 있고, 또 법학과처럼 인기 학과에선 LNAT같은 적성시험을 따로 치르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모든 시험은 어차피 응시자의 적응이라는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어렵더라도 적어도 희망 전공에 맞는 과목 내에서 어렵게 낸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하는 한 경쟁이 치열하거나 시험기간이 긴 것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진로에 대한 결정 강요나 통합적 사고에의 역행을 지적할 수도 있다.

진로에 대한 생각은 원래 결정하기 어려운 것인데, 애매하고 불합리하게 공통 기초를 듣거나 수많은 과목의 학습량을 억지로 부담한다고 해서 진로가 결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진로가 결정되어도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 여러 선택의 여지를 주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게 하며 변경을 가능하게 하는 한 선택 위주로 해도 타당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예컨대 지금 고교학점제를 두고 학생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건 내 생각으로는 고교학점제 자체에 내장된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교육 풍토상 학생들이 자유롭게 여러 경험을 하거나 자기 개성과 생각을 유연하게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성인들도 선택을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10대 후반임에야? 고교학점제가 아니라도 그 시절의 고민은 본래 크다.


또 현행 수능 탐구 영역과 같이 짧은 객관식을 강요당하지 않는 한, 기초 역량도 반사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 사회학적 입문을 사회학의 방법론적 특성에 맞게 평가할 수 있는 한, 그 사람은 그 분야에 맞는 독해 역량의 유형이라던가 작문 역량의 유형 같은 것을 반사적으로 습득한다.


통합적 사고에 관해서는, 본래 학문의 구분이란 이해를 위해 임의적으로 나눈 것이고 운용하기에 따라 통합형 사고도 같이 볼 수 있다. 생물학에서는 생물공학과 관련한 철학을 다룰 수 있고, 심리학에서는 생물로서의 인간과 의식으로서의 인간 등을 복합적으로 살핀다.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선택을 중심으로 통합/확장하는 편이 낫다.


이상이 현실에 그냥 들어오는 경우 접합이 아니라 파열이 난다. 사실성(Facticity)을 도외시한 외양만 그럴듯한 자기기만은 뒤틀림과 불행을 낳는다.


전 국민이 고민해 볼 수 있는 대입 시험이라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우리나라에서 그런 시험은 결국 공부량 부담과 새로운 차원의 공정성 논란을 가져올 것 같다. 수능과 학생부 전형 그리고 수많은 적성시험이 그랬듯이.


경쟁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도 없다. 하지만 경쟁을 그래도 좀 더 합리적으로, 타당하게 유도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내가 제안한 대안은 단지 그러한 논의에서의 대안 중 하나에 불과하다.


6. 한국교육, 자기기만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무섭도록 인간의 실체에 대해 직시하며 진술하는 실존주의에서는 ‘자기기만’을 강조한다. 인간은 주체이며 구분이 없는 시간이라는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선택한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인간이 만들어낸 정책이나 제도, 문화라고 해서 다를까? 인간은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아니 의미가 없기 ‘때문에’ 주체로서 자신과 미래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거기에서 삶의 의미와 무의미가 나오는 것이다. 정책이나 제도, 문화 역시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마주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체로서 미래에의 선택을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한다.


교육은 인간이 그러한 실존적 선택을 해 나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제가 되지만, 오늘날의 교육은 되레 자기기만만을 촉발하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벌이라던가 이와 직결되는 직업의 평판이라던가 소득과 부라던가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엔 나를 타인에게 단지 평가받음으로써 비로소 유의미한 존재로 만든다.


이러한 교육을 넘어,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근본적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용기와 힘을 길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 평가와 입시를 비롯한 제반 교육혁신의 기초 철학도 이런 데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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