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살아가기 위한' 지적 재료로서의 인문학

by 남재준

어떤 의미에서, 특히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이론이나 연구보다 깨달음, 진실, 실천 이런 것들을 위해 존재한다. 서양철학만이 아니라 동양철학도 그렇다. 유교, 불교, 도가는 모두 유일신 같은 것을 믿는 종교라기 보다도 기본적으로 우주와 세계, 인간을 이해하는 세계관이며 동시에 인간과 세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의 규범적/실천적 지침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좋건 싫건 지성적 동물(?)(인간이 배타적으로 특별히 대우받아야 하는 존재/생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다.)로서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체계적인 생각 비스무리한 거라고 본다.


[진정성을 추구하는 데 반드시 지성이 필요하다면 배운 사람들만 진정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역사 속에는 달리 배움이 없어도 자신의 자유(가 단순히 선택의 그 자체보다도 '선고'된 것이라는 진실)를 인정하려고 노력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반대로 하이데거처럼 실존주의 '이론'에 전문가면서 반유대주의의 비진정성에 무너져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에 가입한 사람도 있다.

(...)

철학이 다른 학문과 똑같은 학과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깊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철학의 기반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인에 따르면 철학을 공부하는 일의 핵심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철학을 공부하는 일의 핵심이 학위 획득에 있다고 여기면서 깨달음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_ 게리 콕스 (Gary Cox, 1964-, 영국, 버밍엄대 철학과 교수),「How to Be an Existentialist」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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