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의 '인문자유주의'

by 남재준

'미국적인 것'이 마초성이나 외향성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개척자 정신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지미 카터처럼 담백하고 소박한 시민 정신을 강조하는 미국의 모습도 있다. 미국이 이러한 리더십을 지녔을 때에는 규범적 차원에서 국제사회를 주도할만한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 민주당의 역사를 볼 때, 카터는 독특한 위상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었다. 전후 민주당의 역사는 FDR이 만들고 트루먼-케네디-LBJ로 이어지는 뉴딜 자유주의의 흐름 그리고 빌 클린턴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오바마-바이든으로 이어지는 신민주당(New Democrat)의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카터는 이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전후에 남부 출신 대통령에는 LBJ, 카터, 클린턴이 있었다. LBJ는 텍사스 출신이었지만 민주당 상원 대표로서 정국을 오랜 세월 강력하게 틀어쥔 인물이었다. 클린턴은 젊은 아칸소주지사로서 12년 간 이어진 레이건-H.W.부시 행정부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성공했다.


그러나 카터는 조지아 출신으로 같은 딥 사우스(Deep South)였으나 완벽한 비주류 출신이었다. 해군과 농업인 경력 정도가 있었고 워싱턴 정가 밖에서 조지아주 상원의원과 조지아주지사로 공직 경력을 축적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각각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일으키며 민심이 정치 엘리트에 매우 피곤해하던 차에 카터는 참신한 선택으로 다가왔다.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 지역 출신이면서도 반대로 진보 진영에 서면서 지역적 편견을 극복하려고 했으나 비주류 대통령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이 떠오르기도 한다.)


비주류라는 점은 가벼이 볼 만한 것이 아니다. 비주류와 소수자(=권력의 열세에 처한 사람)의 입장에 서 본 사람만이 자유주의적 가치의 소중함을 체득한 것이다. 특히 그가 딥 사우스 그것도 전원 출신이라는 점은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공업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남북전쟁에서 국가 권위 차원의 우위를 점한 북부, 그리고 패자와 권력상 열위에서 군정 등을 감당하고 폐허 위에 복구해야 했던 남부의 입장은 크게 달랐다.


1960년대에 민권운동이 활성화되고, 1970년대부터 선 벨트가 형성되면서 인종주의와 농업주의 등 남부의 정치 성향은 미묘하게 바뀌어 갔다. 카터를 비롯해 1970년대에 등장한 남부 주지사들인 신남부민주당(New South Democrat)은 이러한 '새로운' 남부적 정서와 가치를 대표했다.


그들은 남부가 보존한 전쟁이나 인종문제에 대한 기억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를 원했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보다 고도화되면서 이전보다는 리버럴한 정서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카터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신앙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합쳤다. 전통적인 소박함, 성실함, 공감 등의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시에, 이러한 포용적 정서를 비백인 인종, 여성,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 많은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보장 진전과 통합해냈다.


국방 강화를 중시하되 팽창주의를 지양하며 이를 바탕으로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타결 등을 중재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카터 이전의 남부는 FDR이 가져온 뉴딜의 바람에 동참하면서 엉성하게 인종문제 등을 덮어버렸고, 이후의 보수주의민주당은 1994년 공화당 혁명 이후 아예 공화당으로 완전히 전향했다.


카터는 기묘하게도 보수주의적 정서와 자유주의적 정서를 절묘하게 배합해 다소 위태로운 연합을 이루어낸 마지막 남부 출신 대통령이었다. 그는 온건한 신자유주의자였지만 자신 이후 클린턴이 만들어 낸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해 그다지 동참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뉴딜 자유주의에 대해 동의하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1890년대~1920년대 우드로 윌슨 등이 만들어낸 민주당의 첫 진보적 흐름 즉 진보 시대(Progressive era)의 정서와 맞다고 인터뷰에서 표현하기도 했다.


경제성장은 침체되고 에너지 위기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어 스태그플레이션을 마주하게 된 국면에서, 그는 신자유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영기준예산제도(Zero-Based Budgeting, ZBB)를 도입해 균형재정으로의 이행을 추구했고, 항공 산업 규제완화를 단행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의료비본인부담상한제(Catastrophic Health Insurance), 메디케이드(Medicaid) 확대, 연방 교육부 독립 신설, 소외 계층을 위한 교육 지원 확대, 공교육 교육과정 개선 등 질적 제고,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 보조(Mental Health Systems Act of 1980)와 정신질환자 탈시설 등 포용사회를 향한 진전을 도모했다.


민주당의 도시 엘리트들은 카터의 '신앙적' 성격의 가치 중심 리더십과 '남부적 가치'에 대한 강조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여러 불운이 겹쳐 카터의 임기는 4년 만에 끝났고, 로널드 레이건이 '위축과 혼란'의 시대를 넘어 '글로벌 리더'로서의 미국의 위상과 '아메리칸 드림과 자유시장'을 '되살렸다'.


하지만 카터의 족적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았다. 카터가 1979년의 '신뢰의 위기(Crisis of Confidence)' 연설에서 남긴 메시지는 어쩌면 미국이 아직까지도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 진실들을 진지하고 진솔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회자유주의자(Social Liberal)이면서도 루스벨트의 뉴딜 자유주의(New Deal Liberalism)와 클린턴의 제3의 길(Third Way)에 모두 동감하기 어려웠던 내 입장에서 볼 때, '인문자유주의(Humanist Liberalism)'라고도 할 수 있는 카터의 철학과 정책은 매우 깊이 다가온다.


["이는 신뢰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는 우리 국민적 의지의 심장과 영혼과 정신의 핵심에 충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위협은 일상적인 방식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중 너무 많은 이들이 자기 탐닉과 소비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더 이상 그가 무엇을 하였는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가졌는가에 의해 정의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삶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갈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왔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상품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는 것이 목적이나 확신 없는 우리 삶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배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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