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돌봄은 자유의 조건이다

by 남재준

<돌봄의 정치학>이 출간되었다. 돌봄사회, 돌봄국가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 나온 것은 보았는데, 그러한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도 '돌봄국가(Caring State)'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고립과 은둔, 배제, 극단화 등 사회 해체의 위험이 가시화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 가계경제의 회복에서부터 공존하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위해 '돌봄'의 철학과 정책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돌봄의 정치학>은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희강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등 주로 사회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 돌봄이라 하면 보육, 요양, 의료 등 복지국가와 사회보장을 떠올리니 그럴만도 하다. 정책적으로 압도적으로 중요한 1순위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지만, '사람 본위의 사회와 국가', '포용사회' 만큼은 앞으로도 반드시 계속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다.


하지만 좋은 정책도 보다 깊은 철학적 맥락이 필요한 법이다. 현재까지 전개되어온 담론에서, 돌봄은 아직까지도 사적 영역에서 사회정책의 영역으로 이동한 정도이고 정치이념의 차원까지는 오지 못했다. 패러다임 전환의 큰 조류가 있어야 돌봄국가를 형성하고 구성하는 요소들이 되는 정책 이니셔티브가 추력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돌보는 자유주의(Caring Liberalism), 생활자 중심 자유주의, 아시아적 자유주의를 중시하며 종래의 서구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버전의 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기존의 신자유주의 사회경제구조와 다가오는 AI 시대의 인류 근원적 차원의 사회변동에 응전하려면 더욱 필요하다.


철학자 버지니아 헬드(Virginia Held, 1929-, 미국)가 쓴 <The Ethics of Care : Personal, Political, and Global>을 읽고 있다. 아직 앞부분인데, 돌봄의 윤리에 관한 철학적 이해를 돕는다. 사회계약론, 칸트주의, 공리주의, 공동체주의 등과의 대비를 통해서. 돌봄의 윤리는 종래의 이성과 추상, 단독자로서의 개인이나 효용 등을 넘어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여성적' 바이브로 전면적으로 철학을 재편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종래의 남성적 시각에서) '감성은 위험하다'라는 주류적 전제에 도전한다. (*헬드도 유사한 취지로 언급하지만, 당연히 이는 감정적 행동이 모두 정당화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덕윤리적 사고와 판단에서 감성을 무시하거나 부수적 고려 요소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이성과 감성을 함께 중요 기준으로 두면서 항상 그 사고와 판단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Liberal)이긴 해도, 사실 처음 사회계약론을 들었을 때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인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을 본위로 하는 이기주의에 대해 들었을 때에도 그랬다.


내 생각은 그냥 개인의 영역과 자율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되기 위해 생활 속에서부터 직장과 정치에 이르기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가까웠다.


사회의 구성 원리가 개인의 '계약'이어야만 그로부터 자신의 자유의 권리를 청구하고 타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게 되는 것일까?


나는 자유, 정확히 말해 다수나 집단으로부터의 소수나 개인의 보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사상을 위해 반드시 계약이나 이기와 같은 전제를 인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인간이 합리적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이미 사회에서 꽤나 이단아로 취급 받았으면서도 끊임없이 교단에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고 관용론을 설파했던 볼테르는 무엇이 되는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는 서로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이 있다. 시민으로서 국가를 경계해야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이건 자기 이익에 대한 손해가 될 수 있다.


인간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건 인간 본성의 단면에 지나지 않고, 그 자체로는 반드시 규범적으로 정당화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자기 이익의 추구가 어느 정도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구체적인 관계나 맥락,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돌봄의 윤리는 이러한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헬드는 자유주의를 다소 협소하게 전제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상은 꽤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다. 헬드가 '정의의 윤리'와 '돌봄의 윤리'는 정의적으로는 거리를 두면서도 실천적으로는 합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사회계약론이나 무지의 베일 같은 자유주의적 가정들을 보면, 인간이 마치 서로에게 익명이고 아무 관계라고는 없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이는 절대적/추상적 윤리를 도출하기 위한 사고실험 비스무리하지만 실제의 사회 형성이라던가 현실적인 사회적 관계를 배제한 채 도출한 윤리가 어디까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돌봄의 윤리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다. 영유아기와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돌봄을 받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또 인간은 대개 본인도 누군가를 돌보는 주체가 된다.


하지만 이제까지 이 중요한 점은 충분히 주목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돌봄은 '여성성에서 연원하는 여성의 일', '사적 영역의 일'로 생각되어 왔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경우,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의 이해를 중시하나 이는 전통이나 종교 등을 빼 놓을 수 없게 한다. 그러다 보면 보수적으로만 흐를 수도 있다.


돌봄적 사고라는 건 기본적으로 여성주의(Feminism)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의 관계, 공감, 배려, 내러티브(그 사람의 입장과 경험) 등을 중시하는 것은 더는 여성만의 가치나 성격이나 행동이 될 수 없고, 사적인 영역에만 속할 수도 없다.


가장 극단적(?)으로, 군사 행동 여부를 결정할 때 국가안보라는 추상적이고 합리적이며 공동체적인 것만 생각할 수는 없다. 제일 중요한 건, 전쟁은 개인의 생명이라는 가장 본위적 가치에 대한 침해라는 점이다.


무조건 전쟁을 피하라는 말로 귀결되는 논변은 아니다. 다만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있다'와 같이 개인을 무시하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는 아니 된다, 전쟁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닥치는 거대한 사회적, 실존적 재난이라는 점이 반드시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고에선 '국가안보가 경각에 달렸는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생각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관계, 공감, 배려, 내러티브 등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사고이고, 이런 방식의 사고는 이제까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그리고 현재에도 상당히) 인류사회를 지배해 왔다.


역사학적으로 보면,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인류는 원시적 공동체에서 신석기 혁명 이후 농업 생산량의 증대와 잉여 생산물의 발생으로 본격적으로 신분제를 시작했다. 시스템은 진화했지만 근본적으로 인류가 '개인'과 '자유'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식하게 된 건 투쟁을 통한 근대의 개막 후의 일이다.


인간이 자유를 청구하고 보장 받아야 하는 이유를 국가나 사회의 구성 과정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 안에는 이기성과 이타성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자유주의 사회가 되려면 그 둘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타인에게 배려하는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사회 전체적으로 자유가 보장된다.


인간소외 현상은 사회적 고립이나 은둔 그리고 극단화 등 새로운 차원에서 개인을 몰아가고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어느 극단이 아니라, 그 사이의 가운데에 있는 '관계적 개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계약 때문이라기 보다도 결국 타인과의 상호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자유를 청구할 수 있고 배려를 이행할 의무가 있게 된다. 타인이 없으면 자유란 무의미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배려란 있을 수 없다. 자기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자유만 요구하는 행위는 타인에게도 같은 행위로 이어지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확산되면 최종적으로는 누구도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돌봄은 자유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실존적 차원에서 확실해질 수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지미 카터의 '인문자유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