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모욕과 폭력의 경계에서

by 남재준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37859


솔직히 교육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인문사회 계열 교과들이 제 역할을 했나 하는 생각이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문과의 천시와 입시 훈련인 우리 중등교육의 문화ㆍ구조의 탓이 크겠지만..


사실 보수냐 진보냐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지만, 중요한 건 자기가 인식하거나 지지한다고 하는 게 정확히 뭔지 그 실체를 얼마나 아느냐 하는 데 있다.


구조적ㆍ문화적으로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성장하는 존재이기 보다 그냥 계도 받고 입시 준비 훈련을 열심히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정치사회로부터 '격리'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사각지대가 만들어진 면이 있다.


아이를 책임지는 건 어른과 세상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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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역시 이러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근본적 이유로 ‘재미’를 꼽았다. “그냥 재밌다. 노래를 만들고 그걸 듣다 보면 중독성이 있다.” 이는 노무현 밈을 즐기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반대 집회에 나가본 적이 있다는 세화고등학교 1학년 A는 자신이 ‘MH(무현) 세대’라면서, “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고인을 비방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노무현의 팬클럽 느낌으로 하는 것이고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좋아해서 그런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학생들이 정치 밈에 열광하는 심리의 밑바닥에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하거나 금기시되는 대상을 조롱하는 행위는 10대들에게 그 자체로 짜릿한 해방감을 안긴다. 연신중학교 1학년 Q는 “원래 높으신 분들을 공적인 자리에서 비꼬는 건 해서는 안 될 일이다”라면서도 “몰래(그런 말을) 하면서 희열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을 우습게 만드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가, 기성세대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일종의 장난감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나는 이전부터 노무현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인을 희화화하는 것을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적 담론장이 그다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상 '자연인'으로서의 정치인 개인을 모욕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건 정치인이라는 한도에서 그쳐야지, 그것이 쉽게 개인의 인격 차원에서의 린치로 가도록 놔 두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정치인이고 공인이기 전에 자연인, 풍자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인격을 존중 받아야 할 한 사람의 개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는 정책 리더십이라는 맥락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정치인 개인에 대한 인격과 관계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에 대해 부시의 푸들이라는 놀림감(?)이 된 토니 블레어는 그의 인격보다 정책이나 결정에 대한 비판 취지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을 희화화한 걸 보면 그냥 개인적 인격의 모욕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은 특히나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그 어느 정치인보다 심각한 모욕을 받아 왔다. 노무현이 권위주의적인 정치를 했거나, 또는 어떤 정책 실패를 한 것을 가지고 희화화된 것이 아니다. 이런 건 풍자라고 할 수 없다. 애초에 노무현에 대한 모욕은 노무현 개인의 자살 등 개인의 인격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다. 백 번 양보해서, 노무현의 검찰 수사 관련 의혹들을 사실관계로서 인정한다고 해서 그런 모욕이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이런 건 풍자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생각, 즉 '내가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재미있어서'라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교육의 실패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 아이들이 풍자와 개인에 대한 모욕을 구분하지 않고, 이런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일괄적으로 규제해야 하느냐 하면, 그건 별도의 문제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또 교육적으로, 정치인 개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생각과 반성, 성찰을 하는 능력을 기르자는 태도와 사고가 확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나 노무현재단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노무현이 가장 심하게 표적이 된 이유도, 비극적이지만 가장 표현의 자유와 반권위주의를 강하게 지향했고 비엘리트 출신이었던 것이 노무현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그 자체로 당연히 '존경 받아야' 해서 '풍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정치인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풍자가 인격의 모독이라는 폭력의 영역으로의 선을 넘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표현의 결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내재적으로 그것이 인격적 침해 등 폭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이미 내포하고 있으며, 발화자라던가 표의자 등은 그러한 점에 관하여 고려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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